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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옷장 속 잠든 재화가 현재 가치로…'키플'의 공유경제
미국 '트레드업'에 주목…단순교환에서 모바일 결제까지 '신뢰 프로세스' 구축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 만족시키는 신뢰와 시스템 구축이 공유경제의 숙제"
2016-04-07 10:50:44 2016-04-07 15:14:50
"소유의 시대는 끝났다"는 제러미 리프킨의 예언이 현실이 되고 있다. 공유경제(Sharing economy)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기존 소유의 개념이 무력화되고 있다. 경제적 부담과 공동체로의 복귀 등 함축하는 철학적 의미는 '함께'(with)다. 미국의 지역 기반 차량 공유 서비스인 ‘집카’, 소셜 민박 네트워크인 ‘에어비엔비’ 등이 공유경제의 대표적 상품이다. 최근에는 국내에도 공유경제 바람이 불고 있다. 대학생과 젊은 직장인들의 월세 걱정을 덜어주는 홈 쉐어에서부터 카 쉐어링 등 분야도 넓어지고 있다. '키플'(Kiple)도 공유경제 모델에 도전하는 주목할 만한 업체 중 한 곳이다. 키플은 개인의 잉여물품에 대해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재분배 대안을 제시하는 사회혁신기업이다. 2013년 서울시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키플은 ‘공유’를 통해 옷장 속 잠든 가치가 지갑 속 현재 가치로 치환되는 서비스 제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불필요한 소비를 억제하고, 잉여물품을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재분배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 건전한 소비문화를 정착시키고 환경과 공동체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것도 키플의 지향이다.
 
[뉴스토마토 이지은기자] 키플은 아이가 자라서 입을 수 없게 된 옷을 패키지 단위로 묶어 회원들끼리 교환하는 모델에서 출발했다. 개인적 쓰임을 다한 재화를 내주고 다른 사람의 것을 가져오는 교환 방식으로, 일종의 물물교환을 중계하는 서비스다.
 
하루 평균 200개 정도의 물건이 등록되고 150개 정도의 물건이 새 주인을 맞이한다. 2012년 1월 키플 시즌1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총 16만개의 물건이 등록됐으며, 15만개 정도가 판매됐다.
 
이성영 키플 대표는 "기존에 중고물품 거래 사이트 등 공급자와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채널이 있었으나 서로의 신뢰가 부족해 품질, 가격 등 기준이 명확치 않았다"며 "키플은 공정한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동일 판단기준을 제시해 공급자와 소비자를 서로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성영 키플 대표. 사진/키플
 
미국 '트레드업' 벤치마킹…아동의류 교환 방점
 
키플의 롤모델은 미국의 '트레드업(ThredUp)'이다. 트레드업은 아이가 자라서 더 이상 못 입게 된 옷을 대여 또는 거래할 수 있게 하는 웹사이트로, 2009년 만들어졌다.
 
이 대표는 "미국은 옷 가격이 싸지만 중고 옷에 대해 엄마들이 교환하는 문화가 있다"며 "국내 환경을 살펴보니 지엽적으로 벼룩시장이 활성화돼 있었고, 중고나라 등 인터넷 카페에서 거래하는 방식도 활발해지고 있어 트레드업을 벤치마킹 모델로 점찍었다"고 설명했다.
 
키플은 트레드업과 마찬가지로 아동의류 판매에 중점을 뒀다. 이 대표는 "미국에서는 트레드업뿐만 아니라 자동차, 집 등의 아이템을 통해 공유경제가 확산되고 있었지만, 이는 자본적으로 도전하기 힘든 영역이었다"면서 "보다 적은 자본으로 유통 가능한 아동 의류에 집중하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덧붙였다.
 
트레드업을 벤치마킹한 키플은 수익구조도 동일한 형태를 채용했다. 플랫폼을 제공해 개인이 교환하도록 하는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꾸러미(옷 10벌)를 주고받는 중개 수수료 5000원이 키플의 주된 수익원이다. 꾸러미 교환은 상호성의 원칙에 따른다. 꾸러미를 1개 내놓으면 다른 꾸러미 1개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
 
키플 사이트에서 판매될 아동 의류들. 사진/키플

사이버머니·모바일 결제서비스 도입…"키플은 성장중"
 
수수료를 통해 사업을 유지하다 보니 큰 비즈니스로 이끌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대표는 "수수료로 돈을 벌다 보니 한 달에 100건이면 50만원, 1000건이면 500만원이 수익으로 발생했다"며 "이 수익으로는 인건비, 회사 유지비용 등을 도저히 충당할 수 없어 수수료 모델이 아닌 회사가 중간에서 유통에 직접 관여하는 모델을 선보이게 됐다"고 말했다. 키플 시즌2의 시작 배경이다.
 
그는 키플 시즌2에서 사이버 머니를 도입했다. 수거된 물품의 종류, 품질상태, 브랜드 등을 평가해 평가 금액의 70%를 회원들에게 사이버 머니로 적립해주는 형식이다. 수수료를 통한 1차원적 수익 구조에서 벗어나 제품 유통을 통해 또 다른 수익 구조를 만든 것이다.
 
적립금을 받은 회원들은 다른 엄마들이 제공한 물품 중에 내 아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선택, 구매할 수 있다. 시즌1에서 거래 당사자들끼리 제품을 검수하고 교환하는 과정을 거쳤다면, 시즌2에서는 회사가 신뢰 프로세스를 구축해 공급자와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 대표는 "꾸러미가 아닌 필요한 낱개 옷을 거래할 수 있게 되면서 개개인의 선호와 취향에 부합하는 장점이 생겼다"며 "회사가 제3자 입장에서 검수하다 보니 양질의 옷이 늘어나 사이트가 활성화되는 효과도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는 지속가능한 기업을 만들기 위함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대표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일에 대해 적절한 보상을 하는 것도 기업의 덕목 중 하나"라며 "시즌1에서 시즌2로의 변화는 사업 영위를 통해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수익을 창출하고,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기업을 만들기 위한 필연적 선택이었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2014년 2월 키플 시즌3로 또 한 번의 도전에 나섰다. 사이버 머니의 환금성을 강화하기 위해 각종 기획전을 열어 소비자 눈길을 끈 것이다.
 
그는 "키플은 0-13세를 대상으로 사업이 진행되는데, 이 연령대를 벗어난 소비자들은 기존 적립금을 사용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었다"며 "이를 해결하고, 사이버 머니의 범용성을 확대하기 위해 키플 적립금으로 일반 도소매 제품이나 산지직송 농산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기획전을 8개월 정도 진행했다"고 말했다. 키플 적립금을 다른 물품 구매에 있어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지난해 9월부터는 시즌4를 진행하면서 모바일 결제 서비스도 도입했다. 플랫폼을 보다 다양화해 소비자의 편의를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이 대표는 "그간 안정적인 사업을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해왔다"며 "올해 안에는 기존 아동옷, 책 등에서 장난감으로 제품군을 확대해 다양한 소비자를 끌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어 "지금은 중고 상품 위주지만 시즌3 기획전처럼 적절한 채널을 발굴해 적립금의 현금화에 대한 부분도 실행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키플 사이트에서 판매될 아동·출산·육아 관련 책들. 사진/키플
 
"공유경제 활성화의 제1 요건은 신뢰"
 
사회적기업이자 공유기업인 키플을 이끌고 있는 이 대표는 공유경제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공유경제를 통해 얻게 되는 재화든, 경험이든 신뢰할 만한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앞으로 공유경제를 담당하는 업체들이 지녀야 할 숙제"라고 조언했다.
 
그는 신뢰 프로세스를 잘 구축한 기업들이 늘어난다면 공유경제는 훨씬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세대가 젊어질수록 공유경제에 대해 긍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도 공유경제 확산의 중요한 환경적 변화로 바라봤다.
 
이 대표는 "최근 카 쉐어링 서비스인 '소카'나 인터넷 중고장터를 이용하는 젊은 세대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며 "중고에 대한 인식이 합리적 소비로 바뀌어 가고 있어, 공유경제의 대상과 이를 소비하는 사용자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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