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바둑기사 이세돌 9단이 오늘 구글의 인공지능 컴퓨터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첫 번째 대국에서 186수만에 ‘불계패’했다. 불계패란 기사가 경기 도중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고 기권한 경우를 뜻한다. 현존하는 인류 최강 바둑기사의 패배 소식에 지금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는 상금 100만 달러를 걸고 3월 9일, 10일, 12일, 13일, 15일 총 다섯 번 승부를 겨룬다. ‘인간의 자존심이 걸렸다’는 이 대국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상태다. 이 9단은 20년 넘게 프로바둑기사로 활동하고 있는 베테랑으로 한국뿐 아니라 세계 바둑계에서 명실상부한 ‘천재 기사’로 인정받는 이다. 그래서 대국 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9단이 다섯 판 모두 무리 없이 이길 것이라 예상했고, 이 9단 본인 역시 인터뷰 때마다 변함없는 자신감을 보여 왔다.
하지만 오늘 대국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알파고의 완승으로 마무리되었다. 대국 초반 이 9단은 흐트러짐 없는 알파고의 모습에 조금 당황했으나, 중반으로 갈수록 판세를 유리하게 이끌며 최정상급 기사다운 여유를 보였다.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막상막하의 경기가 펼쳐졌고, 경기 시작 후 두 시간 즈음 알파고가 던진 완벽하게 계산된 강력한 수로 인해 승패가 자명하게 갈렸다.
오늘 경기는 구글 딥마인드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전세계에 생중계되었다. 사진/바람아시아
오늘 대국은 이 9단이 지금껏 두어 왔던 승부들과는 크게 달랐을 것이다. 본래 바둑은 시합장에서 만나는 상대의 기세와 분위기, 그리고 한 수 한 수에 대한 모든 반응이 승부의 중요한 요소로서 작용되는 심리 싸움이다. 또한 대국 시간이 길기에 기사는 체력과 집중력 배분에도 지속적으로 철저하게 신경써야한다. 하지만 인간 기사가 아닌 알파고는 대국 중 발생한 어떤 상황에서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 ‘기계적인’ 면모를 보였다.
경기 초반, 이 9단이 둔 일곱 번째 수는 그가 한 번도 둔 적 없던 낯선 전략이었다. 1국의 중계를 맡은 박정상 9단은 그 수를 두고 ‘아마 바둑계 역사상 처음 두어지는 수일 것’이라며 놀라움을 표했다. 알파고의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어 있지 않을 만한 생소한 수를 택해 혼란을 야기하려는 이 9단의 전략이었다.
하지만 알파고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냉정하게 맞수를 두기도 하고, 102번째 수에서는 우변 흑집에 침투하는 강력한 승부수를 던져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승세를 잡기도 했다. 중간에 실수도 몇 번 있었지만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반면 평소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한 이 9단은 오늘 경기에서 머리를 긁적거리며 난처해하거나, 좌절하여 얼굴을 감싸는 모습을 보였다.
경기 전날인 8일, 이 9단은 기자회견에서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적인 실수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간적인’ 면이 완벽하게 배제된 컴퓨터 프로그램과의 첫 경기에서 그는 바둑판 가운데로 돌을 던져 기권을 표시할 수밖에 없었다.
인공지능 컴퓨터와 인간의 대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7년 IBM사의 슈퍼 컴퓨터 ‘딥 블루’가 러시아의 체스 세계 챔피언 카스파로프를 꺾었던 일이 있다. 최초로 기계가 인간 두뇌를 앞질렀던 상징적인 사건이다. 그로부터 약 20년이 흐른 2016년, 인공지능 업계는 이번에는 체스보다 훨씬 복잡한 바둑에 도전장을 던졌다. 가로 19줄, 세로 19줄의 바둑판 위에서 흑과 백이 각각 180개의 돌을 사용하여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하면 약 10^170가지이다. 학자들이 관측 가능한 우주 전체의 소수 원자 수를 10^80개로 이야기하는 것과 비교해 보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둑 경우의 수 그래픽. 사진/구글 딥마인드 유튜브 영상 캡처
최근 인공지능 분야는 혁신적인 변화를 겪었다. 바로 ‘머신 러닝’의 등장 덕이다. 불과 4,5년 전까지도 인공지능 분야는 IT업계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으나, 머신 러닝의 등장 이후로 현재 가장 뜨거운 이슈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이전까지의 방식은 인간의 기호를 기계에 주입하는 것이었기에, 컴퓨터는 단순 연산은 문제없이 계산할 수 있지만 문장을 번역하거나 얼굴을 인식하는 등의 정교한 작업들은 명료하게 처리하지 못했다. 기계는 인간의 사고 체계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머신 러닝 방식에서는 기계에게 ‘인간의 기호’가 아닌 ‘인간의 학습 방식’을 적용시킨다. 인간 뇌의 사고 체계를 모방한 ‘알고리즘’을 기계에 입력하여, 그 방식을 따라 프로그램이 수십억 개의 저장된 데이터를 스스로 처리하고 결과를 도출하게끔 하는 것이다.
이 방법을 통해 앞으로 개발될 인공지능 프로그램들은 인간의 뇌를 모방하여 무한대로 성장할 수 있다. 알파고는 바로 이러한 머신 러닝 알고리즘 체계를 적용시킨 프로그램이다. 알파고는 병렬처리 방식으로 연결된 1200여 개의 CPU(중앙처리장치)를 ‘풀 가동’시켜 바둑돌 한 점을 둘 때마다 최적의 결과를 내어 놓는다.
머신 러닝 방식을 도입한 인공지능 로봇 ‘페퍼’. 사진/SBS뉴스 캡처
알파고는 작년 10월 중국의 프로 기사 판후이 2단과의 대국 때까지만 해도 지금과 같은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 판후이와의 대국을 지켜본 바둑기사들은 ‘알파고는 아마추어 고수 정도의 실력을 갖췄으며, 결코 프로는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알파고는 삼천만 개의 데이터를 한 달 안에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인간이라면 천 년 이상 걸리는 학습량이다. 오늘 경기가 있기까지 지난 5개월간 알파고는 저장된 수천만 개의 프로 기사들의 바둑 기보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루에 3만 번 가상 대국 트레이닝을 하며 이 9단과의 대국을 대비해 왔다. 이는 이 9단의 모든 기보 역시 저장되어 있기에 대국 전 알파고는 이미 그의 머릿속 모든 수법을 간파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대국 중 근심어린 표정의 이세돌 9단. 사진/SBS뉴스 캡처
이번 경기는 단순 상금을 걸고 하는 게임이 아니다. 알파고는 구글이 주력하고 있는 인공지능, 그리고 빅 데이터 기술의 집합체다. 그래서 이 경기는 알파고의 ‘자가 테스트’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변칙적이고 노련한 기술이 주특기인 이 9단을 선택한 이유 역시 정형화된 트레이닝을 거친 알파고에게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려 볼 수 있는 좋은 훈련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경기가 총 다섯 판이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9단과의 대국이 끝날 때마다 알파고는 이 9단의 수법을 저장, 복사한다. 즉 판을 거듭할수록 점점 강해진다는 것이다. 오늘 대국에서는 작은 실수를 하기도 했지만, 알파고는 결국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한 초 고수가 될 것이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구글에게는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치 않다. 대국을 통해 이 9단의 뇌를 ‘러닝’하는 것 자체가 이미 큰 수확이다. BBC는 이번 승부를 ‘이세돌이 인류를 지키기 위한 한 판’으로 묘사했으며, 알파고의 개발자이자 구글 딥 마인드의 CEO인 데미스 허사비스는 이번 대국을 ‘인류의 달 착륙’에 비유하며 높이 평가했다. 2016년 3월 대한민국 서울시 종로구의 한 호텔에서 벌어지는 이 경기가 인류 발전의 현주소를 파악하는 역사적인 이정표가 되는 셈이다.
인류는 탄생과 동시에 쉴 새 없이 발전을 향해 달려왔다. 18세기 증기기관의 발명은 인류의 발전에 날개를 달아 주었다. 기계의 발전은 인간이 직접 해야만 했던 육체 노동을 대신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능력 밖이었던 많은 것들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증기기관이 가져온 물질적인 대량생산은 인류가 ‘어떻게 하면 오늘 당장 먹고 살 수 있을까’라는 오랜 숙제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도록 해 주었다.
산업혁명 당시를 나타낸 그림. 사진/바람아시아
18세기 이후 물질적, 육체적 대량 생산의 시대가 열렸던 것처럼 알파고의 승리는 21세기 ‘지적 대량 생산 시대’의 개막을 의미한다. 가공된 물건들이 공장에서 무한대로 찍어져 나오는 것과 같이, 지금껏 인간의 두뇌만이 할 수 있었다고 여겨졌던 ‘지적 능력’마저도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무한히 찍어낼 수 있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인공지능은 머지않아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여 인류 역사의 한 부분에 자리를 잡을 것이다. 어쩌면 아예 인간을 밀어 내고 그 자리를 차지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 날이 오면 현존하는 대부분의 직업이 필요 없어질 것이다. 물질적 대량 생산 시대가 열리면서 육체노동을 도맡았던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사라졌듯이, 다가올 지적 대량 생산 시대에는 지적노동을 담당하던 화이트칼라 지식 노동자들이 역사책 속으로 하나 둘 사라질 차례다. 곧 ‘지속가능하지 않은 것’ 후보 중 하나에 ‘인간의 뇌’가 포함될지도 모르겠다.
덧붙여, 인공지능은 인간의 마지막 전유물로 묘사되는 ‘감성 영역’으로의 침투마저 이미 시작했다. 지난 설에 방영된 MBC ‘미래일기’에서는 독거노인으로 분장한 출연자 안정환과 함께 ‘반려 로봇’이 등장했다. 섬세하게 움직이는 눈, 코, 입을 가진 반려 로봇은 안정환과 함께 웃기도, 그를 위로하기도 하며 감정적인 동반자 역할을 해 주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아이폰의 ‘Siri’ 역시 가벼운 농담을 던지거나, 상황에 맞춰 기쁨, 당황 등의 감정을 느끼는 모습을 제공하며 유저들의 감성적인 면을 건드린다.
사진/MBC ‘미래일기’ 방송 장면 캡처
아이폰 siri와의 대화. 사진/바람아시아
이번 대국은 인류에게 던져진 새로운 고민거리다. 이세돌 9단은 승부 전 기자회견에서 ‘이번 승부에서는 내가 이기더라도 언젠가는 인간이 패배하리라고 본다. 그것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데 어쩔 수 없는 부분’ 이라며 우려를 드러낸 바 있다. 그의 말처럼 많은 것을 기계에게 내어주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순리로 여겨지는 오늘날이다. 인류는 이제 스스로를 굳건히 지켜내기 위해, 빼앗기는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을 생산하는 데에 신경 써야 할 것이다.
앞으로 알파고와 네 번의 대국이 남았다. 이 9단이 인간이기에 보일 수밖에 없는 ‘인간적인’ 모습들은 ‘기계적인’ 면모로 무장한 알파고 앞에서는 무참한 실수가 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 남은 승부들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될 것 같다.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