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토마토칼럼)노장은 살아있다
2016-03-29 06:00:00 2016-03-29 06:00:00
하는 일이라고는 강아지 옆에 누워서 쉬는 것뿐이다. 채팅창에 글을 올려주는 시청자들과 잠시 소통을 하는 듯하지만, 이내 "아후 힘들어"라며 드러눕는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지만,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줘야한다는 사명감은 전혀 엿보이지 않는다. 이쯤 되면 개그맨으로서 직무유기다. 그런데 시청자들은 그런 그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보내고 있다. '신개념 예능 프로그램'을 탄생시킨 주인공은 데뷔 36년차의 베테랑 개그맨 이경규다.
 
이경규는 지난 19일과 26일 방송된 MBC '마이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했다. 유명인들의 인터넷 생방송을 담아내는 이 프로그램에서 이경규는 반려견 뿌꾸가 낳은 새끼 강아지 6마리를 공개했다. 강아지의 귀여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것 외에는 특별히 한 일이 없었지만, 이경규는 함께 출연한 방송인 김구라, 격투기 선수 김동현 등을 제치고 시청률 1위에 올랐다. 이후 이경규는 인터넷상에서 '갓경규', '예능대부' 등의 수식어를 얻으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들이 선정적인 콘텐츠를 담아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방송 채널이 다양화되면서 프로그램 간의 경쟁이 치열해졌고, 선정적인 콘텐츠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은 웬만한 자극에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조미료 없는 '착한 예능'은 안 통한다"는 것이 방송가의 통설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극적인 요소 하나 없는 콘텐츠로 이경규가 거둔 성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경규에 앞서 박명수, 정준하 등 인기 개그맨들이 '마이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했다. 이들은 방송을 앞두고 많은 준비를 했다. 박명수는 DJ쇼를 선보였고, 정준하는 방송 중 물풍선을 맞는 등 몸을 사리지 않았다. 하지만 시청자들로부터 기대 만큼의 호응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평소 이경규는 입버릇처럼 "예능의 끝은 다큐"라고 말하곤 한다. 자극적이고 인위적인 콘셉트의 프로그램보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아낸 프로그램이 결국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경규는 '마이리틀 텔레비전'을 통해 이를 증명해 보였고, 이는 오랜 시간 예능계에서 활약해온 이경규의 관록과 경험, 트렌드를 읽을 줄 아는 통찰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경규는 이 프로그램에서 10~20대 시청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베테랑들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세상이다. 경영인들은 비용 문제 때문에 베테랑들을 고용하기를 꺼리고, 이 때문에 능력은 있어도 일할 곳이 없는 베테랑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능력 있는 베테랑들에게는 비용을 메우고도 남을 관록과 경험, 통찰력이 있다. 50대 중반의 개그맨 이경규가 이를 증명했다. 노장은 살아있다.
 
문화체육팀 정해욱 기자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