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3.8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5일 광화문에서 열리려던 한국여성대회는 갑작스런 비로 서울 시청 8층 다목적 홀에서 열렸다. 1호선 시청역에서 내려 4번 출구 쪽으로 나가자 ‘한국여성대회 가는 길’하고 적힌 표지가 보였다. 곳곳에 보랏빛 두건을 두른 중년 여성들이 보였다. 그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진/바람아시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보라색 조끼를 입은 자원 봉사자들이 <제32회 한국여성대회>라고 적힌 팸플릿과 보라색 두건을 나눠주었다. ‘인간의 존엄성’을 상징하는 보라색은 한국여성대회의 드레스 코드 색상이다. 두건에는 한국여성대회의 슬로건‘희망을 연결하라’와 함께 ‘모이자! 행동하자! 바꾸자!’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부산스러운 틈을 뚫고 홀 안으로 들어가자, 보랏빛 물결이 나를 반겼다. 전국에서 모인 여성 관련 단체 1000여명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여성민우회, 서울여성노동자회, KTX 열차 승무지부 등 다양한 단체가 참여했다. 10대부터 60대까지 참여자들의 연령대는 다양했지만, 하나같이 ‘보라색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었다. 두건을 머리에 두른 사람, 손목에 묶은 사람, 머리띠를 한 사람. ‘I’m a FEMINIST’라고 적힌 보라색 후드티를 입은 사람들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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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으로 가는 길’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자‘성매매 여성 비범죄화’라고 적힌 카드를 든 사람들이 보였다. ‘우리는 해고된 KTX 여승무원입니다.’라고 적힌 글귀를 등에 붙인 사람들도 있었다. 세 번째 줄에 앉아 행사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1시에 시작될 예정이었던 행사는 조금 늦어졌다.
본격적인 행사는 1시 12분부터 시작됐다. 오프닝‘우리가 만들어요.’에서는 ‘32 WOMENS DAY’슬로건을 들고, 모두가 음악에 맞춰 율동을 따라 했다. 여성들은 일어서서 즐거운 표정으로 율동을 따라 했다. 사회를 맡은 방송인 김미화가 등장하자 환호 소리는 커졌다. 그녀는 자신이 방송인이자, 여성연합 홍보대사라고 소개했다. 수화 통역사가 옆에서 보라색 두건을 두르고 그녀의 말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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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가 무르익자, 사회자는 슬로건 외치는 연습을 제안했다. “제가 ‘희망을 연결하라’고 외치면 여러분은 ‘모이자, 행동하자, 바꾸자’고 외치는 겁니다.”사람들은 환호했다. 그녀가 ‘희망을 연결하라’고 외치자, 행사장을 가득 채운 여성들은 “모이자! 행동하자! 바꾸자!”고 다함께 외쳤다.
1시 28분, 시상식이 시작됐다. 먼저 한국사회의 성 평등에 ‘걸림돌’이 된 사람들을 시상하는 성평등 걸림돌부터 시상을 시작했다. 김미화는 “걸림돌 상을 수상하는 건 절대 좋아할 일이 아니다.”는 농담을 던져 웃음을 자아냈다. 성평등 걸림돌은 박근혜 정부의 3대 정책(성교육표준안, 노동계약 정책, 양성평등정책), 양성평등기금을 폐지한 홍준표 경남도지사, 데이트폭력 사건 판결에서 ‘가해자의 미래’를 걱정해 벌금형을 선고한 광주지방법원, 여성 노조지부장을 집단적으로 괴롭힌 인천성모병원 등이 수상하게 됐다. 사람들은 ‘우’하고 야유의 목소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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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 디딤돌 시상식에는 자림성폭력대책위, 평화나비네트워크, SNS에서 일었던‘#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선언 운동, 전국여성노동조합 인천지부 연세대 국제캠퍼스 기숙사 분회, 여수 유흥업소 여성사망사건 제보 여성 9명이 수상했다.
여수 유흥업소 여성사망사건 제보 여성 중 한 명의 소감을 광주여성인권센터 ‘언니네 상담소’가 대신 전했다. “이 상을 받아 마땅한지 고민했다. 우리는 그냥 언니만 생각하고,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다. 지금도 많이 무섭고 두렵지만, 우리가 한 일에 대해 한 치의 후회도 없다. 언니도 하늘에서 우리를 보며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눈물을 글썽였다. 사람들은 보라색 두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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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운동 특별상은 KTX 열차승무지부가 수상했다. KTX 열차승무지부는 여성 노동자에 대한 차별,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10년이 넘게 싸워오고 있다. KTX 열차승무지부 김승아 씨는 “감사드린다. 지난 3월 1일이 투쟁한지 10년이 되는 달이었다. 단식, 삭발, 철판농성 안 해 본게 없는데 아직도 많이 부족한가보다.”며 울먹였다. “많이 지치지만, 용기를 주는 분들이 많아 감사하다. 앞으로 더 힘을 내겠다.”말을 마치자 여기저기서 박수소리가 터졌다.
3.8 여성선언을 낭독하기 전에, 사회자는 아까 배부한‘희망을 연결하라’ 손수건을 들어줄 것을 부탁했다. 사람들은 다 같이 보랏빛 손수건을 들었다. “성평등은 모두를 위한 진보다, 성평등 가치 실현하라!”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과 차별을 반대한다!” “역사왜곡 굴욕외교 일본군 위안부 합의는 무효다!”목소리가 터질 때마다 사람들의 박수소리와 함성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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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우리가 이제 움직일 시간입니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야 되겠습니까?”참가자 전원이 일어났다. 음악소리가 홀 안을 가득 메웠다. 여성들은 다 같이 일어나 춤을 췄다. 그녀들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담겼다. 보랏빛 물결 사이에서 나도 스카프처럼 목에 두건을 두르고 함께 춤을 췄다. 흡사 축제를 떠올리게 했다. 여성들의 축제였다.
한 시간에 걸친 홀에서의 행사는 끝이 났다. 이제는 종로 일대로 나갈 차례였다. 3.8 퍼레이드 행진은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까지 이어진다고 했다. 모두들 보랏빛 우비를 입고 밖으로 나갔다. 아까와 다르게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번개가 쳤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밝았다. ‘여성들의 축제’에서 여성은 크게 외칠 수 있었다. 주인공으로써 존재할 수 있었다. 그들은 당당하게 걸어 나갔다. 폭우는 그들을 가로막을 수 없었다.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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