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스토리)찬바람 부는 실리콘밸리…유니콘 멸종 위기?
다운라운드·구조조정 속출…스타트업 미래 예측하며 기업가치 따져야
2016-03-01 12:00:00 2016-03-01 12:00:00
지난 1월 미국 주식시장에서는 단 한건의 기업공개(IPO)도 이뤄지지 않았다. 월별 기준으로 IPO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금융위기 여파가 한창이던 2009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IPO를 통한 대박을 꿈꾸던 스타트업 기업들이 흔들리는 시장 상황에 몸을 사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말부터 스타트업 몸값에 거품이 끼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점도 실리콘밸리 기업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스타트업 거품론이 커지면서 최근에는 스타트업의 가치가 얼마나 떨어졌는지를 추적하는 웹사이트까지 생겼다. CB인사이트가 만든 '다운라운드 트래커(Downround Tracker)'에 따르면 2015년 이후 가치가 하락한 스타트업은 50곳이 넘는다. 외신들은 닷컴버블이 꺼지던 2000년대 초반 다운라운드 트래커와 비슷한 사이트가 있던 점을 거론하며 "유니콘이 멸종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닷컴버블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스타트업이나 투자자 모두 제대로 된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일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그리운 옛날이여…공모가격 밑도는 스타트업 가치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의 대표 주자로 꼽히던 모바일 지급결제서비스 업체 스퀘어는 지난해 당초 예상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상장했다. 상장 준비 당시에는 주당 11~13달러를 예상했지만 실제 공모가는 9달러에 불과했다. 현재 스퀘어의 시가총액은 34억달러 수준으로 상장 전인 지난 2014년 당시 기업가치 60억달러에 비해 절반으로 떨어졌다.
 
스퀘어의 기업공개가 있던 지난해 11월19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잭 도시(왼쪽) 스퀘어 최고경영자(CEO)와 짐 맥켈비(오른쪽 두번째) 공동창업자가 증시 개장을 알리는 벨을 울리고 있다. 스퀘어는 예상보다 훨씬 낮은 공모가에 상장하며 스타트업 거품론에 불을 지폈다. 사진/로이터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2014년 이후 증시에 상장한 스타트업 48개 중 35개가 공모가 아래에서 거래되고 있다. 일부 스타트업과 투자자는 공모가가 특정 가격 이하로 떨어지면 상장을 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투자자에게 추가 지분을 제공하는 조건을 걸고 투자를 진행하기도 한다. 로펌 펜윅앤웨스트에 따르면 지난 4분기 자금조달을 한 유니콘의 절반이 해당 조건을 단서로 붙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3분기에는 이 비율이 35%에 불과했다.
 
비상장기업의 사정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사진공유 앱 서비스 업체 스냅챗의 경우 지난 3개월 동안 두번이나 가치가 평가절하 됐다. 최대주주인 피델리티인베스트먼트는 작년 3분기 스냅챗의 지분가치를 25% 상각한데 이어 12월에 또 2%를 낮췄다. 포춘 등에 따르면 피델리티는 올 1월에만 드롭박스와 제네피트 등 19개 스타트업의 가치를 상각했다.
 
기존 평가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서 주식을 발행하는 '다운라운드(down round)'도 실리콘밸리에서 흔한 일이 됐다. 위치기반 SNS인 포스퀘어는 지난 1월 이전 가치보다 69%나 낮은 가격으로 자금을 조달했다. 배달전문스타트업 도어대시(DoorDash)도 지난달 기존보다 16% 낮은 가격에 자금을 모집했다. 다운라운드 때문에 도어대시의 기업가치는 10억달러 아래로 떨어졌고 유니콘 클럽에서 빠지게 됐다. 다운라운드는 스타트업이 추후에 자금조달을 할 때 기업의 값을 깎을 뿐만 아니라 스톡옵션으로 인센티브를 받는 직원들의 사기도 꺾어버리는 문제가 있다.
 
구조조정 칼바람도 매섭다. 매시지 앱 업체인 탱고미는 최근 인력을 20% 축소했으며 온라인 데이트 주선 업체 주스크는 지난 1월 인력 40명을 감축했다. WSJ는 지난해 11월 이후 12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수백명의 직원을 해고했다고 보도했다. 유니콘의 파산 사례도 들려온다. 한때 기업가치가 27억달러에 달하던 영국의 모바일 지급결제 스타트업 포와(Powa)는 지난달 파산신청을 하며 311명의 직원 중 74명을 해고했다.
 
수익구조에 대한 불안감도 고조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심리는 전반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컨설팅업체 프라이스워터파우스쿠퍼스(PwC)는 지난해 4분기 스타트업에 투자된 벤처캐피탈 자금이 113억달러로 전분기보다 32% 줄었다는 조사결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투자회사 제너럴애틀랜틱은 향후 6~9개월 동안 인터넷 스타업의 기업가치가 매달 5%씩 증발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심리가 얼어붙은 데에는 글로벌 주식시장의 불안이 큰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WSJ도 "지난 2월5일 기술주 급락사태 이후로 벤처캐피탈의 투자심리가 급격히 경직됐다"고 지적했다. 이날 미 나스닥지수는 하루동안 146.41포인트(3.2%) 하락하면서 2014년 10월 이후 최저치로 떨어진 바 있다. 당시 페이스북과 구글의 모기업인 알파벳 등 대형 IT 기업들의 주가가 모두 폭락했다. 중국 등 국제 경제가 둔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경제마저 다시 힘들어질 기미가 보이자 고성장 하던 대형 IT 기업뿐만 아니라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에도 보수적인 성향이 나타난 것이다.
 
또한 스타트업들이 이익창출 규모보다는 자금조달을 통한 몸집 불리기에 집중하고 있는 점도 거품론을 확산시켰다. 몸집은 큰데 수익구조는 불안한 기업들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유니콘 중 가장 덩치가 큰 우버도 예외는 아니다. 우버는 현재 중국시장에서 현지업체와 경쟁하면서 연간 10억달러의 손실을 보고 있다. 하지만 트래비스 칼라닉 우버 최고경영자(CEO)는 이를 만회할 자금조달 능력이 있다며 투자유치를 계속 하고 있다.
 
알짜 스타트업 찾으려면 '미래'를 계산하라
 
스타트업에 흘러드는 돈줄이 말라가면서 투자의 양극화도 심화되고 있다. 자금난을 겪는 스타트업이 속속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도 우버는 기업가치를 비상장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인 600억달러 이상으로 높였다. 증강현실 스타트업인 매직립(Magic Leap)은 제품이 출시되기도 전인 지난달 초 7억9400만달러의 투자를 받으며 기업가치를 45억달러로 높였다.
 
안정적으로 커나갈 수 있는 스타트업이라고 여겨지는 쪽에 돈이 몰리는 것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도 최근 파이낸셜타임즈(FT)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스타트업 사이에서 선별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며 "지난 2년간은 눈을 감고 기술기업에 투자했다면 이제는 눈을 뜨고 기업을 잘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스타트업 가치를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라고 설명했다. 스타트업의 경우 참고할만한 과거 성과를 내는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또 최근 급증한 인터넷 스타트업의 경우 유형자산을 가지고 있는 곳이 적고, 비교할만한 기업이 많지 않다는 점, 성장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르다는 점도 과거의 평가 기준을 적용하기 힘들게 만든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소개한 '첨단 기술기업의 가치 산정법' 역시 미래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맥킨지는 IT스타트업의 가치를 산정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래의 시장 규모를 예상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먼저 미래의 시장 규모를 예측한 뒤 기업이 벌어들일 수 있는 영업이익이나 투자자본 대비 이익률 등을 계산하고 그 다음에 이를 현재의 성과와 연결해 계산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과거와 현재의 데이터에서 시작하는 기존의 기업가치 평가 순서를 뒤집은 방식이다.
 
맥킨지는 미래를 볼 때 현재와 비교해 상황이 얼마나 달라질지를 예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스타트업도 결국에는 성장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에 해당 산업과 기업의 성장속도가 안정적인 단계에 진입할 때의 모습을 그려봐야 한다는 것이다. 맥킨지는 스타트업이 초기의 성장속도를 유지하는 기간은 10~15년에 불과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장기전망의 경우 불확실성이 큰 만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각도에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수경 기자 sugy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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