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극장정치가 안보위기 불러”
보여주기 아닌 '문제 해결하는 정치' 필요…사드 배치하면 외교·안보 비용 높아질 것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포퓰리즘서 북핵 개발만 진전”
2016-02-21 13:25:22 2016-02-21 13:40:44
박근혜 정부는 냉전·대결적 대북 태도를 가졌지만 적어도 말로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버리지 않아왔다. 그러나 북한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16일 국회 연설은 이제 그마저도 버리겠다는 선언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 변화를 이끄는 방법으로 제시한 것은 그동안 문제 해결 실적을 내놓지 못한 ‘압박’뿐이었다.
 
국제정치학자로 현실 문제에 대한 발언을 적극적으로 해오고 있는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는 안보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이며, 북핵을 중단시키고 문제를 푸는 길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극장정치’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안식년을 맞아 일본 게이오대 초빙교수로 도쿄에 머물면서도 페이스북 등을 통해 한반도 문제에 대한 발언을 멈추지 않고 있는 이 교수와 20~21일 이메일로 인터뷰를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안보 상황에 대해 연설하던 지난 16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방송을 통해 실황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뉴스1
 
-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을 ‘안보 포퓰리즘’으로 규정해왔는데, 어떤 점에서 그러한가.
 
“북핵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은 고통스럽고 인내가 필요한 정책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통쾌하고 기분 좋고 정의감을 느끼는 정책만을 구사했다. 즉 전문가라면 해결책이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만을 사용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핵개발 진전 상태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북한은 수시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시험을 예고해 왔다. 미국의 정보 자산을 공유받으면서 북한에 대해 매우 자세하게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여러 차례의 양자 및 다자 제재에도 불구하고 핵개발이 진전되고 있었음을 알고 있었을 텐데, 핵실험이 없을 때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다가 핵실험이 있으면 벌을 주어야 한다는 여론에 맞춰 제재만 가하고, 다시 손을 놓는 정책이 반복됐다.
 
국민들에게 보기 좋은 안보정책만 택하고, 곤혹스럽고 고통스러운 과정이 수반되는, 별로 모양새가 안 나오는 안보정책은 아예 손도 대지 않았다.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핵개발의 진전을 막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채널을 구축해놔야 하는데, 나쁜 놈에게 벌을 주는 ‘정의의 심판자’ 모습만을 국민들에게 보여준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다. 그 사이에 북한의 핵개발은 계속 진전되고 있었다. 지금도 계속 진전되고 있을 것이다.”
 
- 남한도 북한과 마찬가지로 ‘극장정치’를 하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극장정치란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만을 보여 주는 정치를 의미한다. 정권에 불리한 것은 가리고, 유리한 것만 부각시킴으로써 일종의 ‘허구의 작품’을 만들어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정치를 의미한다. 북한이 반제국주의나 ‘주체’와 관련된 선전선동을 다양한 상징을 통해서 보여주는 극장정치를 한다면, 남한도 언론통제와 적절한 연출을 통해 ‘정치극장’을 만들어 왔다.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강대국의 수반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멋지게 연설하는 장면만을 편집해 보여주고, 시장에서 서민들과 국밥 먹는 장면을 연출하고, 지하벙커에서 회의하는 장면을 연출하고, 약자를 위해 눈물을 보이는 장면들이 연출된다. 이는 나라가 돌아가는 실제의 모습이 아니라, 보여주고 싶은 것만을 보여주는 연출된 극장정치이다. 이 극장 안에서만 정치를 하게 되면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가 아니라 문제를 가리는 정치, 직접 사람을 만나 협상·협의하는 정치가 아니라 구도만 만드는 정치를 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문제는 계속 커지고 남아 있지만, 다음 정부로 넘기기만 하면 된다. 계속 쌓이다보면 위기가 터지기도 한다.”
 
- 새누리당의 ‘남한 핵무장론’에 대해 북한이 구사하는 핵무장의 논리와 같다고 주장했다. 왜 같은가?
 
“핵무기의 위협으로부터 자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것은 바로 북한이 말하는 논리인데, 집권 여당과 보수언론 일부에서 남한 핵무장론을 꺼내며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 위협을 준다는 핵무기가 어느 나라의 핵무기인지만 다를 뿐이다. 핵무기를 가져야 핵감축 및 폐기 협상을 할 수 있다는 핵무장론자들의 논리도 북한이 계속 주장해 오는 논리다. 북한은 미국과의 핵감축 협상을 제기해왔다. 핵무기 개발은 주권적인 사항이라는 논리도 북한의 논리와 다름이 없다. 자국의 핵은 억지력을 위해서만 필요하지 선제공격을 위해서 갖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남·북한이 공히 주장하는 논리이다. ‘우리의 핵은 특정 국가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주장도 북한의 논리와 남한의 논리가 같을뿐더러 공히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6일 국회연설 등을 통해 드러낸 북한과 국제정세를 보는 관점을 진단한다면.
 
“북한에 대한 시각은 ‘대결’이라는 냉전인식의 연장이라고 본다. 그리고 힘의 우위를 통해 제압해야 되는 상대라고 보는 것 같다. 그래서 북한은 힘을 통해 봉쇄하고, 결국 붕괴시켜 냉전에서 서방 진영이 이겼듯 우리도 이겨야 한다는 믿음이 있어 보인다. 통일도 붕괴에 이은 흡수통일을 염두에 두고 있고, 그것을 평화통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즉 쌍방 간에 전쟁을 하지 않고 통일을 한다면 그게 평화통일이라는 인식이다. 소련도 핵이 있었지만 결국 서방에게 냉전에서 진 것이 그 예인데, 문제는 냉전 이후 소련이 미국에 의해서 접수되거나 흡수통일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일 그러한 시도가 있었다면 미·소 간에 핵전쟁을 방불케 하는 엄청난 긴장이 조성되었을 것이다. 미국의 승리는 소련의 체제만 바꾸었을 뿐 소련의 국가 안보 그 자체를 건드리지 않았다. 소련과 동구의 변화는 자신들이 다 수행했고, 어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점령·약탈·식민지화하는 식으로 안보를 건드린 경우는 없다. 독일의 경우에도 서독이 동독을 점령·흡수한 것이 아니라 동독 주민의 의사에 따라 선거를 실시해 통일됐다.
 
지금 붕괴까지 생각하는 우리 정부의 대북 인식은 북한이라는 국가를 접수하고 점령하고 통일한다는 식이어서 북한의 안보를 직접 건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이 핵에 매달리게 되는 것인데, 북에 대한 붕괴나 통일을 의도하면 할수록 핵에 대한 북의 집착은 더욱 강해지는 결과가 생긴다. 따라서 북한에 대한 냉전의 승리는 근본적으로 미·소 냉전에서 미국이 승리했던 것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북한이 힘 앞에 백기 항복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은 이라크나 리비아 등을 보면서 핵이 있으면 백기 항복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 정치군사적 측면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의 비용과 편익을 따져본다면.
 
“사드는 고고도의 종말단계에서 미사일을 미사일로 맞춰 떨어뜨리는 무기체계이다. 북한의 핵탄두가 무거워 그런 핵탄두를 달 수 있는 노동미사일을 발사각을 높여 쏴 남한에 투하할 수 있다는 가정에서 사드를 들여오는 것인데, 이는 북한 미사일에 대한 방어, 그리고 중국의 미국에 대한 억지력 무효화라는 두 가지 면에서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일단 북한이 남한을 공격할 때 주로 쓰는 무기체계는 장사정포와 재래식 단거리 미사일이라 사드로 막을 수 없다. 즉 사드는 북한의 수도권 공격에 대해 보호 장치를 주지 않는다. 설사 북한이 노동미사일에 핵을 달아 남한을 공격해도 미사일의 숫자만을 늘리면 사드를 뚫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핵미사일은 한발만 뚫려도 방어의 의미가 없다. 늘어나는 미사일에 대비해 사드의 도입을 늘린다면 천문학적인 돈이 들 것이고, 그렇게 들여와도 북한의 수많은 미사일에 대해 사드가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면 방어의 의미가 없다. 사드를 들여와 만족하고 있는 사이에 북한의 핵기술이 계속 발달해 단거리 스커드미사일에 달아 쏠 수 있게 된다면 그야말로 최악의 시나리오가 되는 것이다. 북한 핵에 대한 최선의 방어는 협상을 통해 더 이상 핵이 발전하지 않도록 빨리 동결시키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화채널을 열어 놓는 것이다.
 
중국의 억지력과 관련해서는, 중국은 미국이 중국에 공격할 경우 미국과 미군 기지에 대한 보복타격(2차 보복능력)으로 미국에 대해 억지력을 걸어 놓고 있다. 그런데 사드는 중국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을 고고도의 종말단계에서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중국의 억지력을 상쇄하는 기능을 하게 되고, 따라서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위협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엑스 밴드 레이더 문제로 사드 논란이 왜곡되는 경향이 있는데, 문제는 이 레이더의 탐지범위 그 자체가 아니다. 이미 미국은 다양한 정보자산으로 중국의 곳곳을 보고 있다. 사드 레이더의 탐지범위는 미사일이 날아오는 것을 탐지하는 범위이다. 즉 레이더가 중국까지 미친다면 중국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을 추적해 떨어뜨리는 기능이 있다는 얘기이다. 중국으로서는 억지력이 없어지는 것이 가장 큰 위협이다. 이를 고려해 볼 때, 사드라는 무기를 들여오는 것보다 기존의 억지력과 협상을 통해 북한의 핵기술과 위협의 증대를 빨리 동결시키는 것이 비용 효율적인 정책이다.”
 
- 중국이 사드에 대한 반발로 한국에 경제적 보복조치를 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은데.
 
“중국은 미국과 함께 세계의 리더로 자리매김을 하려는 국가 비전을 가지고 있다. 신형대국관계라는 표현도 그렇고, 최근 기후변화협약이나 국제경제 관련 글로벌 거버넌스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그러한 의도를 반영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드에 대한 반발로 이러한 글로벌 거버넌스의 원칙에 위배되는 일방적인 보복은 가급적 피하려 할 것이다. 2000년 마늘파동 때와 같이 한국산 주요 품목의 수입을 중단하는 조치를 취하거나, 2010년 센카쿠열도 문제로 일본에 희토류 수출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던 식의 극단적인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예전에 비해 많이 준 것이다.
 
하지만 남·북의 긴장을 이유로 남한을 ‘관광 주의 국가’로 지정한다거나 하면 자국의 안전조치를 취한 것이기 때문에 책임 있는 국가로서의 모습인데, 한국에 대한 경제적 영향은 금융시장의 신용을 포함해 엄청날 것이다. 중국에는 한국 간의 신뢰에 실제로 금이 간다면 유형무형의 골칫거리를 계속 만들 능력이 있다. 경제뿐만 아니라 안보 측면에서도 부담을 줄 것이고, 그러면 우리의 안보비용과 외교비용이 올라갈 것이다. 그 결말은 결국 경제적 부담이 될 것인데, 이는 정권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사안이다.”
 
-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지난 7년여간 쿠바·이란·미얀마 등 오랜 적국들과 관계를 개선했다. 북한과의 관계만 풀지 못한 근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한국에 계속 무기를 팔기 위해 북한을 나쁜 나라로 놔두고 있다’는 전통적인 설명은 유효한가?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북한이 아직 미국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이고, 당사자인 한국이 주도적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햇볕정책이나 6자회담을 통해 한국이 주도적으로 뭔가 해보려 했지만, 지금은 한국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 마당에, 잘 풀리지도 않고 미국 국내정치적으로도 부담만 되는 북한 문제에 미국이 개입할 이유가 크지 않다. 당사국인 남한이 안 하는데 미국이 왜 먼저 나서겠나. 이에 비해 쿠바와 이란은 미국의 직접적 이해관계와 결부된 문제이다.”
 
- 한국의 역할은 언제나 중요하지만, 2017년 대선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식 대북정책을 펴는 정부가 들어선다고 해도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풀기는 쉽지 않을 것도 같은데
 
“6자회담 틀을 복원하는 것이 어렵다면 보다 중립적인 중재국이 주재하는 다른 형태의 회담을 고려해 볼 수도 있다. 가장 가능한 시나리오는 유럽연합(EU)이 중재하는 새로운 회담을 여는 것이고, 여기에서 한국이 다시 주도적으로 로드맵을 만들어 일단 북한의 핵을 동결시키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김정은도 스위스 유학 경험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유럽을 더 편하게 생각할 수 있고, 미·중 관계도 유럽이 중재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포맷을 바꾸어 주면 미국도 움직일 것이라 생각한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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