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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개성공단 중단 진짜 문제는 ‘신뢰의 붕괴’”
시스템 안정성·예측가능성 무너져…정상화 돼도 ‘투자 못할 곳’ 인식 퍼져
개성공단 전문가 오기형 변호사 “정부 조치 법적 근거 밝혀야”
2016-02-14 14:16:50 2016-02-14 14:22:43
더불어민주당에 영입되어 현재 광주에서 총선을 준비하고 있는 오기형 변호사는 한·중 통상문제에 정통한 법률가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중국 상해사무소 대표를 역임했다. 또 개성공단의 모델이 된 중국 심천경제특구의 법과 제도를 연구하고 개성공단 법규와 해설자료를 미국에 소개한 개성공단 전문가이기도 하다. 2003년 대북송금 특검 때는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측 변호인으로 활동하며 남북관계에서 대통령의 ‘통치행위’는 어디까지 인정되는지를 지켜봤다.
 
정부의 개성공단 중단 선언과 북한의 인력 추방,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한반도 배치 협의 따른 중국과의 갈등, 중국의 경제적 보복 가능성 등 최근 터져 나온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해 남다른 견해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력의 소유자다.
 
오 변호사는 13일 인터뷰에서 “개성공단 폐쇄로 인한 진짜 문제는 신뢰의 붕괴”라며 개성공단 투자에 대한 신뢰, 입주기업에 대한 거래처의 신뢰 등이 모두 무너져 버렸다며 안타까워했다. 아울러 그는 정부의 공단 중단 조치가 법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설명하며,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국회에 나와서라도 어떤 법률에 근거해 중단 조치를 내렸는지를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인터뷰의 주요 내용이다.
 
-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대해 중국은 그 이전보다 북한에 단호한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이번 4차 핵실험과 로켓 발사에 후에는 대화와 협상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입장으로 돌아간 것 같다. 현재 중국의 대북정책을 진단한다면.
 
“2013년 시진핑 주석이 들어서면서 북한을 혈맹으로만 볼 수 없다는 논의가 중국에서 있었다. 그러나 북한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가건, 그 근저에 깔린 것은 중국의 국가 이익이다. 미국과의 동북아 질서 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경제를 안정적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중국의 국가 이익이다. 그런 맥락에서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기조는 ‘한반도의 안정’이다. 2013년에도 북한을 견제하는 것처럼 했지만, 한반도 안정이라는 기조에 따라 북을 완전히 고립시키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 기조가 변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특히 최근 미국이 일본과 동맹을 강화하고 한·미·일이 중국과 대립하려 하면서 중국이 북한의 손을 놓는 것은 오히려 어려워졌다.”
 
- 한국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어떻게 진단하나. 한·미가 사드를 주한미군 기지에 배치하는 문제를 공식 협의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에 대한 중국의 태도가 상당히 강경해졌다.
 
“중국이 어느 하나의 사안을 두고 한국에 강하게 나오거나 그렇지 않거나 하지는 않는다. 작년까지만 해도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서 ‘한중관계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다가 지금 중국까지 감시할 수 있는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하는 문제가 이슈가 됐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드 배치가 옳으냐 그르냐에 대한 우리 내부의 논쟁은 있어야 하지만 중국이 반대하니까 배치하면 안 되고, 중국이 별 말을 안 하면 배치해도 된다는 식으로 논쟁이 흐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중심을 잡고 우리의 국익에 비춰볼 때 사드 배치가 필요한지, 군사적으로 유효한지 등을 논의해야 한다. 미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 그러나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적 보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닌가. 최근 중국 정부가 전기차 배터리 보조금 지급 대상을 고시하면서 주로 중국 업체들이 생산하는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주기로 해 삼성과 LG가 배제된 것도 보복성 조치라는 해석이 나왔다.
 
“전기차 배터리 보조금 문제를 한국 기업에 대한 차별이라고 단순화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건 중국 정부가 자기네 기업을 지원하면서 결과적으로 한국 기업이 빠졌다고 봐야 한다. 사드나 한중관계 때문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물론 사드 배치 움직임이 본격화하면 중국도 여러 외교적인 수단이나 다른 수단을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중에 한국에 대한 경제적인 보복성 조치가 취해진다면, 얼마나 피해를 입는지에 대한 전문적인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 지금은 상황을 가정해서 이런 저런 얘기가 오가는데, 위기의식만 불러올 뿐이고, 중국과 각을 세우면 안 되는 것처럼 얘기가 흐르는 면도 있다.”
 
- 개성공단 중단의 진짜 문제는 ‘신뢰의 붕괴’라고 주장했다. 왜 그런가.
 
“개성공단은 남북이 함께 만드는 매우 독특한 곳이다. 개성공업지구법과 그 하위의 규정들은 남쪽에서 만들어 주고 북한의 입법기구가 발표한 북한의 법이다. 개성공단관리위원회도 남쪽에서 사람을 파견해 행정과 투자를 맡는다. 북한은 공단의 치안만 담당한다. 이런 독특한 시스템은 남이나 북 어느 한 쪽이 사고를 치면 무너지게 되어 있다.
 
북한이 2013년 일방적으로 근로자를 철수함으로써 공단이 5개월 동안 중단됐던 사건은 북한의 최대 패착이었다. 그 순간에 필요했던 정치적·군사적 이해관계를 해결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개혁·개방을 안 하겠다’는 식의 메시지를 대외적으로 보낸 셈이었다. 사회시스템의 안정성, 예측가능성,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지역에 투자할 기업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단 5개월 후 우리 기업들은 ‘정세와 관계없이 개성공단을 유지한다’는 남·북의 합의를 믿고 다시 개성공단에 들어갔다. 그건 북한을 신뢰해서가 아니었다. 남측 정부가 정치적 위험에 대한 보상을 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2년 넘게 지나면서 서서히 신뢰를 회복해 가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우리 정부가 먼저 전면 중단 결정을 내려버렸다. 이제는 개성공단에 관계된 모든 측에서 남과 북 정부를 모두 믿지 못하게 된 것이다. 입주기업 관계자들이 12일 더불어민주당에 찾아와서 “이제는 우리나라의 거래처들도 개성공단에 있는 우리 기업에 발주를 안 하려고 할 것이다”라는 말을 많이 했다. 개성공단이란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입주기업들도 신용을 잃어버린 것이다. 손해배상을 해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피해가 있다면 보상하겠다’고 하지만,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개성공단을 죽였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
 
- 더불어민주당 한반도경제통일위원회는 “개성공단 중단은 법적 근거가 없는 조치로 전면 무효”라고 주장했다. 법적인 문제를 개괄적으로 설명해 달라.
 
“정부의 적법한 조치로 인해 개인의 재산권이 침해됐다면 ‘손실 보상’을 해야 한다. 예컨대 정부가 어느 지역을 개발하기 위해 토지를 수용할 때, 그것이 적법하더라도 재산권이 침해당하는 피해를 본 사람에게는 정당하게 보상해야 한다. 정부의 개성공단 중단 조치가 적법한지, 법률적인 근거가 있는지를 따져 봐야 한다.
 
과거 김영삼 대통령이 금융실명제를 실시하기 위해 긴급 재정경제명령을 내렸는데, 헌법상 법률로서의 효과를 발휘한 것이었다. 이번 개성공단 중단 조치가 그런 것이었다면 괜찮을 수 있는데, 이번에는 그런 긴급 재정경제명령이 없었다.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른 조치가 있을 수 있는데, 정부는 남북교류협력법상 무슨 근거가 있는지도 말하지 않고 있다. 그 근거가 없다면 헌법과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위법한 조치가 될 수 있다.
 
만약 정부가 위법한 조치를 한 것이라면 국가 배상의 법리에 따라 손해배상을 해줘야 한다. 국가 배상의 법리에 따르면, 이러한 정부 결정에 관여한 공무원이 고의나 중과실로 한 것이었다면 국가 손해배상의 상당 부분을 그 공무원이 책임져야 한다. 국가가 공무원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조치가 위법한 것인지 적법한 것인지를 가리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 정부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나와서 법적 근거를 분명히 밝혀야 하고, 그게 맞는지 국회가 분명히 따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고려할 수 있는 것은 ‘통치행위’ 논리다. 통치행위가 일반적으로 인정되느냐에 대해 헌법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많다. 나는 대북송금 특검 당시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의 변호인으로 기소 때부터 3심까지 관여했다. 당시 대법원은 ‘대통령의 행위라도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된다’고 판단했다. 대통령의 지시라고 해서 위법한지 아닌지를 따질 수 없는 것이 아니고, 대통령의 행위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이뤄진 것인지를 심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통일부 장관은 중단 조치의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평가를 받아야 한다.”
 
- 개성공단의 가치는 무엇인가.
 
“핵과 미사일에 북한의 미래가 있지 않다. 소련이 붕괴한 게 핵무기가 없어서가 아니다. 북한이 경제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남한도 북한의 변화를 전제로 상호 협력하고 더불어 살 수 있는 경험과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 그래야만 군사적 긴장이 실질적으로 완화된다. 중국과 대만의 경험을 보면 알 수 있다. 경제 교류를 꾸준히 하면서 마음만 먹으면 상하이와 타이베이를 비행기로 오갈 수 있는 상태가 됐다. 수백만의 대만 사람들이 중국에 살고 있다. 그러면서 대만 사람들은 이제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함께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다. 경제적으로는 사실상 통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남과 북도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다. 북한이 변해야 하지만, 우리의 경제적 규모가 훨씬 크기 때문에 북한이 변할 수 있는 공간을 일관되게 만들어 주고 북한을 끌고 가야 한다. 군사적인 관점으로만 한반도를 바라보는 북한의 일부 사람들과 똑같은 사고를 하니까 현 정부가 개성공단 폐쇄 조치를 취한 것이다.”
 
- 김종인 비대위 대표가 12일 개성공단 중단에 대해 "무조건 반대할 게 아니라 박 대통령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답을 요구하고 설명할 시간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런 인식에 동의하나.
 
“양비론적으로 접근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개성공단 폐쇄는 잘못됐다. 한반도의 미래인 개성공단을 조속히 정상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8년 동안 북한과 대화를 안 하고 버텼는데 아무런 성과가 나지 않았다. 그런 평가의 연장선에서 본다면 개성공단 폐쇄는 잘못됐다는 입장을 가져야 한다. 정부는 필요하면 곧바로 재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그건 2013년 군사중심적인 북한의 사고 수준과 똑같은 것이다. 개성공단 폐쇄를 비판하는 것은 국론 분열을 야기한다고 보는 건 잘못된 것이다. 대한민국 미래를 고민하는 대다수 국민들은 정부의 조치가 잘못됐다고 보고 있다.
 
이번 기회에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18년 간의 대북정책과 동북아정책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와 평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 평가에 기초해 합리적인 다수의 의견을 형성하고, 그 입장에 따라 중장기 전략을 만들고 정권이 바뀌어도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는 정책 기조를 잡아야 한다. 그래야만 북한도 남남갈등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오판을 하지 않게 될 것이고, 중국이나 미국도 한국의 기본 입장에 대해 이해할 것 같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오기형 변호사가 지난달 14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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