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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여성 일·가정 양립, 법만 제대로 실천하면 어렵지 않아요"
이은경 한국여성변호사회장
"똑똑한 여성들 육아가 발목…마음 놓고 일하도록 국가가 아이 키워야"
2016-02-04 06:00:00 2016-02-04 06:00:00
“이제는 아이를 국가가 키워야 합니다. 여자들도 마음 놓고 아이를 낳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합니다. 법은 대부분 준비되어 있어요. 지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은경(52·사법연수원 20기) 회장은 이른바 ‘경단녀(경력단절여성)’ 등 기혼여성들의 사회 진출을 위해 국가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판사 출신으로, 지난 1월23일 제9대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다섯 아이를 둔 다둥이 엄마이기도 하다. 첫째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했고 막내는 이제 초등학생이다. 그는 제갈공명도 풀기 어렵다는 여성들의 육아와 일 사이의 갈등 문제에 대한 대책을 조심스럽게, 그러나 매우 명쾌하게 짚어냈다. 이 회장은 “육아휴직 등 필요한 법안 상당수는 이미 마련되어 있다”며 “’법을 지키자’는 무브먼트가 우선 진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출산에 대한 세제 인센티브를 늘려 민간기업에 다니는 출산 여성들도 법에 의한 복지를 받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장으로서는 종전까지 활동해온 아동·성폭력 사건에 더해서 ‘왕따’문제를 본격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왕따’는 범죄”라고 규정짓고 법률로서 해결 가능한 여러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또 오해와 편견으로 처우의 사각지대에 놓인 후배 여성변호사들의 권익신장을 위해서도 진지한 각오를 보였다.
 
이은경 한국여성변호사회장.
 
활발한 대외활동이 유독 눈에 띈다.
 
국가인권위 위원, 법무부 범죄피해자보호위 위원, 대검찰청 사건평정위 위원 등으로 일해왔다. 물론 변호사 본 업무에도 충실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외부적인 활동을 많이 하는 건 종교적 신념이다. 법대 진학을 하고 그 무렵 ‘고아와 과부를 돌 보겠다’고 고백했고,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 때는 여자들이 법조계에 진출하는 것이 드물었다. 그래서 그게 늘 마음의 빚이 됐다. ‘빚진 마음’으로 법조인으로서 이 포부를 펼쳐 보고 싶 었다. 판사는 주어진 사건을 가장 공정하는 게 판단하는 일이 업무다. 반면 변호사는 제약이 없다. 2002년 개업해 이제는 변 호사를 14년, 판사 11년 보다 더 오래 했다. 인권분야 활동이 두드러진다.
 
기억에 남는 활동은 무엇인가.
 
모든 일들이 중요했다. 현재는 인권위 비상임 위원으로 즐겁게 일하고 있다. 인권위는 법률 이슈를 다루는 기관 중에서도 가장 최첨단에 있는 것 같다. UN 등 세계적 트랜드와 맞물려서 권고도 많이 하고 있다. 여기서 다뤄지는 이슈들은 사상의 자유 라든지, 동성애라든지 하는 가장 기본적 인권에 맞닿아 있으면 서도 아주 예민한 이슈들이 많다. 그 이슈들을 어떤 기준으로, 어떤 가치관으로, 어떻게 접근할 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다섯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벅찰 때는 없는가.
 
첫째는 대학교를 졸업해 지금 취직했다. 막내 딸은 아직 초등학생이다. 어려웠다. 저희 시대는 정말 일 위주로 살았다. 일과 가정을 균형있게 양립해가면서 살지 못한 게 사실이다. 끊임 없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다. 친정 어머니라든지 베이 비시터라든지. 그렇게 하면서 오늘까지 온 것 같다. 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또 빚을 졌다.
 
이은경 한국여성변호사회 신임회장이 지난 1월 취임식을 갖고 기념 케익 커팅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한규 서울지방변호사협회장, 이명숙 전임 회장, 이은경 회장, 하창 우 대한변호사협회장. 사진/한국여성변호사회
 
기혼여성 입장에서 현 시대 의 문제점을 지적해달라.
 
우리나라 여성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여성들이다. 대학진학률도 1위고 문맹률 없기로도 1위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교육을 받은 여성 들이 사회에 진출을 못 하고 있다. 애를 낳고 키우면서 일도 잘 하는 것은 양립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슈퍼스타K7에 출연했던 '중식이밴드'도 ‘아이를 낳고 싶다니’라는 노래로 최근 세태를 풍자하지 않았나. 이제는 국가가 아이를 키워야 한다. 탁아소를 현재 보다 10배 이상 늘려야 한다. 여자들도 마음 놓고 아이를 낳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이것은 공립학교를 통해 해결이 가능하다고 본다. 학교마다 병설유치원을 둔 것처럼 탁아소를 두는 것이다. 요즘 초등학생 수가 줄면서 남는 교실도 많다. 아이디어를 내고 잘 개발하면 어렵지 않은 문제다. 땅값이 비싸서 유치원을 만들 곳이 없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학교에서 맡아 준다면 다른 곳 보다 신뢰도 더 갈 것이고, 줄어든 선생님 TO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인 해결방법은 무엇인가.
 
육아휴직 등 필요한 법안 상당수는 이미 마련이 돼 있다. 문제는 이 법들을 안 지키고 있는 것이다. ‘준법을 합시다!’라는 무브먼트가 우선 진행되어야 한다. 두 번째는 사회 환경이나 제도적으로 강요만 할 수 없기 때문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이 필요하다. 국가공무원이 출산휴가를 떠나면 국고로 지원이 되지만, 사기업은 그게 안 된다. 더구나 고임금이라면 육아휴직을 떠나 있는 동안 회사가 몇 천 만원을 부담해야 할 수도 있는데, 이 때문에서라도 여성을 덜 채용한다. 출산에 대한 세제 인센티브는 늘려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어야 겠지만 우선 순위의 문제가 있다. 하지만 출산에 대한 문제는 먼 과제가 아니다. 여성변호사회 회장으로서 준법운동과 더불어 이러한 크고 작은 제도를 만드는 무브먼트를 해보고 싶다.
 
사회문제의 원인으로 ‘도덕적 붕괴’를 지적했다. 어떤 의미인가.
 
도덕은 법의 최소한이고, 도덕과 법은 무관하지 않다. 과거에는 ‘사람을 죽여선 안 된다’는 것처럼 인간이라면 누구나 옳다고 승인하는 자연법의 힘이 강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원화 사회로 가면서 일부 도덕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얼마 전 통과된 ‘웰다잉법’도 사실 아직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 법 도입의 취지는 좋지만 악용의 여지 때문인데, 도입 당시 조금 더 심도 깊은 성찰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도덕 문제는 법률가의 문제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퍼블릭 모럴 운동을 펼치는 것도 법조인으로서 의미가 있다.
 
 
회장으로서의 우선 과제는 무엇인가.
 
미성년자 성보호를 위해 의제강간죄 처벌연령 상향법안 통과, 이 것은 꼭 됐으면 좋겠다. 기본적으로 여성변호사회는 그동안 아동에 대한 많은 일들을 해 왔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변호사를 파견해 300건 가량의 사건을 처리했다. 아동학대에 대해서는 가장 가까운 현장에서 뛰어다니며 알게 모르게 많은 일들을 해왔다.
제 임기 중에는 여기에 ‘왕따 문제’도 포함시킬 계획이다. 왕따는 범죄이다. 현대사회의 무한경쟁 문제와도 맞물려 있다. 경쟁 속에서 상대방의 약점과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약자에 대해서는 벌떼처럼 일어나 공격하면서도 자신은 도태 될까봐 실수를 잘 인정하지 않는다. 마음이 아프다. 이 문제도 법률로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많다. 현재 여러 방안을 고민 중이다.
 
여성변호사들에게 전할 비전은 무엇인가.
 
여성변호사회는 NGO는 아니지만, 대외적 공익활동을 많이 해왔다. 이것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나 크다. 이제는 소속 회원 들을 위한 이익활동에 균형을 잘 맞추는 것도 필요하다. 최근 여성 법조인 수가 많이 늘어 우리나라의 여성인권이 크게 높아진 것처럼 보도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과 다르다. ‘개척자’ 소리를 들으며 건전한 경쟁을 했던 우리 세대와 다르게 갓 법조계에 진출한 후배들은 무한경쟁으로 내몰려 있다. 회장으로서 한 사람 한 사람 손을 붙잡아주고, 자신의 기량과 역량을 잘 발휘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숙제이다.
 
 
 
방글아 기자 geulah.b@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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