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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하나의 유럽' 흔들
EU, 창설 15년만에 해체위기 직면…경제난·이민자 문제 등 원인도 다양
2016-01-28 13:11:16 2016-01-28 13:11:34
투자의 귀재 조지 소로스는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유럽은 현재 5~6개의 위기에 동시다발적으로 노출돼 있다"고 말했다. 소로스가 지목한 위기 요인은 저성장·난민·브렉시트(영국의 EU 이탈) 등 이었는데, 이들의 상호작용으로 유럽 공동체가 와해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며칠 전 스위스 다보스에서 막을 내린 제46차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유럽연합(EU)이 붕괴 직전에 있다"고 언급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난민 문제는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예견한대로 유럽을 망가뜨리는 촉매제가 될 것이고, 지난 몇 년간 유럽 경제의 발목을 잡았던 그리스 문제 역시 그리스가 유로존을 벗어나지 않는 한 재자 반복될 것이라고 소로스는 전망했다. 또한 최근 다시 불거진 브렉시트의 경우 현실이 된다면 EU의 힘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럽 공동체가 잇따른 이탈 움직임으로 와해될 위기에 처했다. 사진은 작년 여름 그렉시트 위기가 고조됐을 당시 그리스 의회 앞에서 유로존 잔류를 주장하는 시위대의 모습. 사진/뉴시스·신화
 
하나의 유럽을 지향하는 유럽 공동체 유럽연합(EU)가 창설 15년 만에 해체될 위기에 직면했다. 그리스, 포르투갈, 영국, 핀란드, 덴마크 등 EU 혹은 유로존을 떠나겠다는 뜻을 시사하는 곳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아직까지 공동체 이탈이 현실화 된 사례는 없지만 유럽 국가들의 결속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반복되는 경제위기에 독자생존 모색
 
이같은 움직임의 근원에는 경제 문제가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EU 내 국가들의 격차가 더 확대됐는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동체를 벗어나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나 핀란드가 대표적 사례다. 두 나라 모두 경제 회복을 위해서는 유로라는 단일 통화 사용을 포기하고 이전의 자국 통화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쪽에 무게를 뒀다.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려 했던 '그렉시트'는 지난해 여름 그리스 정부와 국제 채권단이 860억유로 규모의 3차 구제금융 협상을 타결함에 따라 일단락 됐지만 핀란드의 유로존 이탈 논의는 현재진행형이다.
 
북유럽 강소국의 전형이었던 핀란드는 4년째 마이너스 성장을 벗어나지 못하는 유로존의 병자로 전락했다. 대표 기업인 노키아의 몰락과 EU의 제재로 주요 수출상대국인 러시아로의 수출길이 막힌것이 결정타가 됐다. 작년 3분기 핀란드의 경제성장률은 -0.6%를 기록했는데, 유로존에서 성장률이 마이너스인 나라는 그리스와 에스토니아 뿐이다. 심각한 경제난으로 유로존을 떠나 과거의 마르카화 체제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유로를 사용하지 않는 이웃국가 스웨덴이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점이 이 주장의 근거가 됐다. 핀란드 연정 다수당 중앙당의 파보 바이리렌 의원은 "마르카화 체제로 돌아가 유로화 대비 마르카화 가치를 떨어뜨려야 수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며 "지금이 유로본 잔류 여부를 논의할 적기"라고 말했다.
 
실제로 핀란드는 지난달 초 5만명의 시민들이 서명한 '핀란드의 유로존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 청원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핀란드 의회는 멀지 않은 시일 내에 국민투표를 실시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앞서 EU 여론조사기구 유로바로미터의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64%가 유로존 체제를 지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1년 전의 지지율은 69%였다.
 
난민 해결책 둘러싼 이견도 분열 촉발
 
최근에는 난민 문제가 유럽 공동체 분열을 유발하는 새로운 원인이 되고 있다. 난민 수용을 두고 나라마다 입장이 달라 불협화음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덴마크는 사법권 독립이라는 강경 노선을 선택했다. 지난달 3일(현지시간) 유럽국제형사경찰조직 유로폴 탈퇴 여부를 놓고 실시한 국민투표에서 53%가 찬성을 한 것이다. 이슬람국가(IS)의 파리 테러 이후 북유럽 지역까지 공포가 확산됐지만 유로폴이 뚜렷한 대처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감이 분출된 결과다.
 
국민투표를 주도한 덴마크 연립여당 국민당과 시민단체는 "덴마크가 유로폴 회원국임에도 특별한 혜택은 커녕 의사결정 과정에도 참여할 수 없다"며 "그럼에도 시리아에 EU 경찰 병력을 파견하거나 국경을 넘나드는 테러 작전을 벌일 때에는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모순적인 상황을 지적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EU 내 난민 수용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카드라고도 해석하고 있다. 의도야 어떠하든 현재로서는 EU가 덴마크를 설득할 만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덴마크의 유로폴 탈퇴는 현실이 된다. EU 체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겠지만 수 십년간 진행된 유럽 통합에 충격파가 될 것이란 분석이 뒤따른다.
 
영국, 브렉시트 카드로 EU 압박
 
한동안 잠잠하다 다시 불거진 영국의 EU 이탈 '브렉시트'는 경제와 난민 문제가 모두 얽혀있다. 영국에서 브렉시트가 처음 언급된 것은 2012년이다. EU의 재정위기가 심화되면서 경제 위기에 몰린 회원국을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 늘어나자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진 것이다. 이와 동시에 EU 회원국 간의 자유로운 인력 이동이 가능한 탓에 이민자가 크게 늘어난 것도 EU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확산시키는 요인이 됐다. EU 편입 이후 노동력이 풍부한 다른 회원국들로 공장이 이전한 바람에 일자리가 줄어든 반면 주변국 이주민들이 증가하면서 실업률이 크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2014년 기준 영국 내 순 이민자 수는 31만8000명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치에 달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파리 테러와 독일 쾰른에서 발생한 난민 성추행 사건은 브렉시트를 주장하는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이달 초 실시한 유로저널의 설문조사에서 EU 탈퇴에 찬성하는 응답자(42%)가 잔류를 희망하는 응답자(38%)보다 많게 나타났는데, 찬성 의사를 표한 사람 중 3분의 1가량이 최근 일련의 사건들이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작년 5월 치러진 영국 총선에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이 브렉시트 국민투표 공약을 앞세워 승리한 이후 브렉시트는 초미의 관심사로 급부상했다.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는 것이 확정될 경우 유럽은 물론 전세계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또한 영국이 이탈한 EU의 글로벌 영향력 약화로 UN을 비롯한 주요 세계 의사결정기구에서 외교 역량이 감퇴될 수 있고, EU 내 독일과 프랑스 간 힘의 균형이 깨질 수도 있다. 영국의 분담금이 사라지는 것 역시 부담거리다. 영국을 만류하기 위한 분주한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도 이때문이다. 엠마 마르체갈리아 이탈리아 경제인연합회장이 "유럽 분역주의는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고 일격을 날리는 등 다보스포럼은 브렉시트를 규탄하는 성토의 장이 됐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지난 21일 엘리제궁에서 가진 자국 대사들과의 신년회에서 "브렉시트에 대한 영국과의 협상에서 방심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도 "영국이 EU에 머무르는 것이 유럽과 영국 모두의 이해에 부합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기업들도 나름의 이해관계에 따라 상반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오데이 애셋매니지먼트 등 영국 헤지펀드 빅5 중 두 곳은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보트 리브(Vote Leave)'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EU를 탈퇴해 금융규제를 적용받지 않으면 매년 2억5000만파운드의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일본의 자동차 메이커 도요타도 영국의 강한 제조인력과 우수한 부품·공급체인을 이유로 브렉시트가 현실화되고 공장 철수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반면 골드만삭스·JP모건체이스 등 금융회사들은 글로벌 금융 허브인 영국이 EU를 나갔을 때의 파장을 우려해 브렉시트 폐기를 목표로하는 캠페인에 수십만 달러 규모의 기부금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혼란 속에서도 영국은 느긋하다. 오는 6월 경 국민투표를 계획하고 있는 영국 정부는 우선 다음달 EU 정상회의에서 탈퇴 여부를 결정짓는 협상을 시작한다. 영국이 요구하는 사항은 크게 네가지로 지금처럼 영국을 EU의 예외로 인정해주면서 특별 대우도 해달라는 것이다. 그 중 EU 시민권자가 영국에서 근로에 기반한 복지 혜택을 받으려면 최소 4년을 기여해야 한다는 내용에 반대가 가장 크다. 유로존 단일 시장에 대한 접근을 보장하고 법무·내무 사안과 관련한 영국의 '옵트 아웃(선택적 적용)'을존중해 달라는 내용도 이견이 많다. 캐머런 총리가 "협상 타결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만큼 전문가들은 "브렉시트가 현실화되기 보다는 영국이 EU 내의 지위를 높이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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