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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 1기 이장 못했다고 위약벌금 50억원 내라는 것은 가혹"
법원 "조정으로 정했어도 공서양속 위반…무효"
2016-01-11 12:00:00 2016-01-11 12:00:00
단순히 분묘이장 기한을 넘겼다는 이유만으로 50억원의 위약벌을 물리는 조항은 '무효'라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1부(재판장 전현정)는 A건설회사가 B종중을 상대로 낸 청구이의 소송에서 "B종중에게 위약벌 지급의무는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고 11일 밝혔다.
 
A사는 B종중과 2012년 5월 종중 소유의 땅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토지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또 묘지이장비 잔금에 대해 B종중을 채권자로 해 근저당권을 설정해줬다. 당시 양측은 'B종중은 계약 체결일부터 6개월까지 분묘를 모두 이장하지 않으면 A사에 손해배상금조로 50억원을 지급한다'는 약정을 맺었다.
 
그러나 B종중은 기한 내 분묘이장을 이행하지 않은 채 2013년 5월 '토지 처분에 관해 종중총회의 결의가 없었다'며 A사를 상대로 해당 토지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말소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 과정에서 '분묘이장 기한은 2014년 12월31일까지, B종중은 기한 내 묘지 23기를 전부 이장하지 않을 경우 A사에 위약별로 50억원을 지급한다'는 조정이 성립됐다. 또 매매대금도 증액했다.
 
이후 B종중은 2014년 6월 묘지 현황 파악을 시작해 2014년 12월28일까지 묘지 이전을 마쳤다. 하지만 A사가 이듬해 1월9일 실사를 한 결과 묘지 1개가 이장되지 않았다. 그 무덤은 주위에 큰 나무가 쓰러져 있었고 예상했던 지점과도 일치하지 않아 구분이 어려운 상태였다. B종중은 결국 기한일로부터 12일이 지나서야 묘지 이장을 완료하게 됐다.
 
A사는 올해 1월 B종중에게 '기한 내 묘지 23기 이장을 완료하지 않았다며 위약벌 50억원과 지연손해금에 따른 채권을 증액 변경된 B종중의 60억원 매매대금 채권과 상계한다'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반면, B종중은 과거 A사와 합의했던 조정조서에 대한 집행문 부여를 신청을 해 지난 3월 집행문을 부여받았다. 이에 A사는 지난 4월 매매대금 잔액 60억원에서 위약벌 50억원 및 지연손해금을 뺀 나머지 금액 9억6000여만원을 서울중앙지법에 공탁한 후 이번 소송을 냈다.
 
재판 과정에서 A사는 "B종중은 기한 내 묘지 23기 이장을 마치지 않았다"면서 "조정조항에 따라 매매대금을 모두 지급해 조정조서에 기한 강제집행을 허용해선 안 되며 B종중은 근저당권설정등기의 말소등기절차를 이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B종중은 "묘 1기가 기한 안에 이장되지 않았으나 A사의 이의를 받고 즉시 이장해 줬다"면서 "조정조항이 정한 묘지이장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맞섰다. 또 "위약벌 50억원도 과도해 무효"라며 반박했다.
 
재판부는 "조정조항에서 'B종중이 2014년 12월31일까지 묘지 23기 전부를 이장하지 않을 경우'란 일반적으로 '분묘이장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이를 게을리해 묘지 전부 또는 일부를 이장하지 못한 경우' 또는 '그런 잘못으로 인해 기한을 지킬 수 없었던 경우'를 의미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묘지를 찾아 이장하려고 노력했으나 그 중 일부를 찾을 수 없어 일부 분묘의 이장을 기대하기 힘든 예외적인 경우에까지 위약벌 지급을 약속한 것으로는 볼 수 없다"며 "B종중이 묘지 22기를 이전했으나 1기를 찾지 못해 기한 내 이장을 하지 못한 경우까지 50억원을 지급하기로 정한 위약벌 조항은 A사의 이익과 비교해 약정된 벌이 과도하게 무거우며 위약벌 전부 또는 일부가 공서양속에 반해 무효로 봐야 한다"며 B종중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사진 / 뉴스토마토
 
신지하 기자 sinnim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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