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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세이)중국·일본 진출도 '도전'이라 하는 시대
대표팀 축구와 리그의 역학 관계는 깨진 지 오래
2015-12-18 14:35:49 2015-12-18 14:35:49
[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월드컵에 나서면 '아시아 최강'이란 수식어가 꼭 따라붙는다. 1986 멕시코월드컵부터 '월드컵 8회 연속' 진출이 그 근거다. 아시아 국가보다는 유럽이나 남미 국가 중 어디까지를 대표팀이 꺾을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자연히 중국이나 일본의 국제무대 위상은 우리보다 한 수 아래인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최근 국내 축구의 기세가 꺾였다. 슈퍼리그(중국)와 J리그(일본)에 진출하는 선수나 지도자들 인터뷰에서 '도전'이란 단어가 서슴없이 튀어나올 정도로 국내 축구의 위상이 말이 아니다.
 
축구대표팀 경기를 하면 "중국과 일본 정도는 이겨야지"라고 모두 얘기하지만 이미 대표팀의 뿌리이자 근간인 K리그는 그들에게 밀린 지 오래다. 우리보다 한 수 아래로 여기면서도 그 나라의 리그로 갈 때는 "선수생활이나 지도자로서의 도전"이라 표현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지난 1월 호주에서 열린 아시안컵 당시의 축구대표팀. 기성용, 곽태휘, 손흥민, 이정협, 한교원(왼쪽부터). 사진/아시아축구연맹 홈페이지
 
최근 K리그에서 뛰던 김승대와 윤빛가람(이하 연변FC)이 중국 무대로 떠나고 김승규(울산)와 정성룡(수원) 등이 일본 무대와 연결되는 등 선수 유출이 심하다. 모두 촉망받는 선수들이며 넓게 보면 대표팀의 현재이기도 했다. 이들 중 누구하나 유럽 모 구단에 갈 것이란 소문이 돌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잠재력과 기량을 지녔다.
 
이 가운데 홍명보 전 국가대표 감독 또한 자신의 첫 번째 프로 감독 데뷔 무대로 중국 항저우 그린타운FC를 택했다. 애초 또 다른 슈퍼리그 구단과 J리그 몇몇 구단을 놓고 저울질을 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실상 국내 리그 복귀는 크게 고려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의 리베로라고 불리며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 실패 이후 재기를 노리는 축구계 유명 인사의 선택도 중국 슈퍼리그다. 축구대표팀과 리그의 역학 관계가 더욱 깨져버렸다.
 
곱씹어보면 객관적 지표는 뛰어난데 실상이 그렇지 않아 더 안타깝다.
 
아시아에서 한국 축구의 위상은 여전하다.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지난 10일 발표한 47개 회원국 중 한국이 1위를 차지했다. 대외적으로 여전히 높은 수준에 올라있음이 증명됐다. AFC 회원국 순위 전체를 보면 5위 일본과 7위 중국이 눈에 띈다. 한·중·일 3국 중 한국 축구의 객관적인 지수가 크게 앞선 모습이다.
 
이 점수는 70점 만점의 클럽 포인트와 30점 만점의 국가대표 포인트로 산출됐다. 한국은 70점 만점 중 클럽 포인트 61.911점과 국가대표팀 포인트 27.926점을 더해 총 89.833점을 따냈다. 이 총점을 일본(74.959점)이나 중국(65.364)과 비교하면 차이가 확연해진다.
 
여기서 짚어볼 게 클럽 포인트의 비중이다. 이 비중이 70%에 이른다는 것은 그만큼 K리그의 수준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AFC 챔피언스리그 성적이 뛰어나다는 것의 또 다른 예다.
 
AFC는 지난 4년간의 성적을 합산해 이런 평가 결과를 내놨다. 그때를 돌아보면 울산이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2012년)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서울이 준우승(2013년)을 차지했다.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지난 10일 발표한 47개 회원국 순위 중 10위권. 사진/AFC 홈페이지 캡쳐
 
하지만 객관적인 지표와 현실 사이엔 괴리감이 크다. 여전히 이적 시장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선수들의 중국과 일본 진출 얘기다. 그마저도 몇 년 전 유행했던 중동행이 잠잠해진 것과 비교하면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선 역시나 '돈'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당장 지난해 프로축구연맹이 내놓은 K리그 연봉공개만 보더라도 국내 선수 1위인 이동국(전북)이 11억원을 받았다. 외국인 선수 1위인 몰리나(서울)는 13억원으로 책정됐다. 이게 K리그가 현재 소화할 수 있는 선수 연봉의 최대치인 셈이다. 그마저도 최근엔 재정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며 선수단 몸집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고 하니 미래를 낙관할 수만은 없는 게 현실이다.
 
데얀의 사례를 보자. K리그 득점왕 출신인 그는 요즘 K리그 복귀를 모색하고 있다. 데얀의 연봉을 추정해보면 약 26억원 이상이다. K리그의 현실을 뻔히 알고 있는 데얀도 "연봉을 반으로 깎겠다"며 K리그 복귀에 대한 의지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앞서 연봉 공개에서 얻은 11~13억원을 생각해보면 여전히 13억원에 달하는 데얀을 선뜻 영입할 수 없는 게 K리그 구단의 현실이다. 초고액 선수이다 보니 따질 게 많아지는 셈이다. 없는 살림에는 돈을 쓰더라도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계산할 게 많아지는 법이다.
 
이런 상황을 유추해보면 지금 중국이나 일본으로 막 떠난 선수들의 연봉과 원소속 구단의 협상 과정이야 말할 것도 없다.
 
축구팬들은 "연봉 공개가 선수 유출을 가속화 하고 있다"고 연맹의 정책을 비판 중이다. 연맹과 축구계 일부 인사들은 "어차피 돈과 돈으로 맞붙을 수 있는 차이를 넘어섰다"며 "리그 투명성과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선 더 세세한 연봉공개가 있을 예정"이라고 예고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미 K리그가 선수를 키워서 높은 이적료를 받고 파는 '셀링 리그'로 전락했다는 소리도 나온다. 올해도 매년 똑같은 '위기'라는 진단 속에서 겨울 이적시장의 추운 한파가 몰아칠 태세다.
 
임정혁 기자 koms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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