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모란봉악단이 중국 공연을 몇 시간 앞두고 철수해버린 사건은 현재 북·중 관계의 성격을 보여준다. 겉으로 보기에 북한은 중국의 심장부에서도 불만이 있으면 예정된 큰 행사를 박차고 나갈 수 있다는 ‘강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한 꺼풀만 들춰 보면, 이제는 옛날 방식이 통하지 않음을 인정해야 하는 북한의 처지가 나온다. 북·중 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가는 마지막 고개를 넘고 있다.
모란봉악단은 단순한 공연단이 아니다. 2012년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시로 창단됐고, 현재도 그가 직접 챙긴다. 김 제1위원장은 지난해 6월 “모란봉악단의 창조기풍을 따라 배워 예술 창작 창조활동에서 혁신을 일으켜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이들을 아꼈다. 이번 베이징 공연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면 지난 10월 중국 공산당 서열 5위 류윈산 정치국 상무위원의 방북을 계기로 시작된 양국 관계의 회복 발걸음은 더 빨라졌을 것이다. 특히 이번 공연은 내년 상반기로 예상되는 김 제1위원장의 첫 방중에 앞서 분위기 띄우기용으로 추진되었다. 김정은 방중 준비팀이 악단 일행과 함께 중국에 들어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모란봉악단이 지난 12일 공연 몇 시간을 앞두고 돌연 평양으로 돌아간 데 대한 소식통들의 전언과 보도를 종합하면 몇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우선 공연 내용이 문제였다. 인공위성 발사 장면 등을 담은 영상이 대형 스크린에 나오고 김 제1위원장을 찬양하는 내용 때문이란 설명이 가장 많다. 거기에 김 제1위원장의 ‘수소폭탄 보유’ 발언이 10일 공개되면서 중국은 공연을 그대로 둘 경우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묵인하는 의미로 비춰지는 것을 우려해 수정을 요구했다. 그밖에 대만 <중천TV>는 김 제1위원장이 백두산에 오른 사진이 스크린에 등장하며 백두산을 북한의 영토로 묘사하는 장면을 중국이 바꾸라고 요구하면서 갈등이 벌어졌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로이터>는 공연에서 부를 노래의 '반미 가사'가 문제였다고 18일 보도했다. 이같은 공연 내용 갈등에서 북한은 중국의 요구를 끝내 거절했다.
공연을 관람하는 중국 측 고위인사의 ‘급’을 두고도 신경전이 벌어졌다. 북한은 서열 2위인 리커창 총리 정도는 나오기를 원했지만 중국은 문화부 부부장(차관급)을 내보내려 했다. 신경전 끝에 공산당 정치국원(지도자급)이 관람하는 쪽으로 중국이 양보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평양에서 공연 내용에 관한 갈등 상황을 보고받은 김 제1위원장이 철수를 지시한 것이다. 북·중 교류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 전·현직 부장들이 숙소로 달려갔지만 상황은 돌이킬 수 없었다.
철수 당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업무상 소통에 원인이 있었다”고 짤막하게 보도했다. 이후 중국은 관련 보도를 통제하고 포털사이트 검색을 차단하는 등 여론관리에도 나섰다. 14일 <환구시보>가 관영언론으로는 처음으로 이 문제를 사설로 다뤘는데, 철수 사건에도 불구하고 북·중 관계의 근간에는 영향이 없을 것임을 강조했다. 중국으로서는 사태를 키울 생각이 없다는 메시지였다. 눈길을 끈 것은 북한의 태도다. 철수 이후 이 문제를 일절 거론하지 않고 있다. 대차게 철수를 강행하는 모습은 옛날 그대로였지만, 그 후의 대응은 전과 같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북·중 관계가 새로운 정상상태라는 뜻의 ‘신창타이’, ‘뉴 노멀’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실상 마지막 진통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혈맹이란 표현으로 상징되는 과거의 특수관계에서 정상적인 ‘국가 대 국가’ 관계로 바꾸자는 것이 신창타이이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은 “여기서 중요한 것은 중국은 강대국이고 북한은 약소국이라는 정체성의 확립”이라며 “약소국이 핵·미사일 개발로 강대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 약소국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강대국을 연루시켜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하는 행위를 한다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중 신창타이로의 이행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취임한 2013년 이후 본격화했다. 그해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에서부터 올해 10월 류윈산 방북까지 2년 8개월가량 중국은 신창타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북한을 압박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유화정책을 일부 가미하기도 했다. 김 소장은 “작년 11월을 전후로 중국 내부 회의에서 북한을 지나치게 압박하는 전략은 중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대북 유화정책을 병행하게 됐다”며 “유화정책은 2015년 각종 실무접촉을 통해 북한을 설득하고 김정은 제1위원장을 중국 전승절 행사에 초청하는 것 등으로 현실화했고 류윈산 방북으로 결실을 맺었다”고 말했다.
북한은 중국의 신창타이 추구를 때론 거부하고 때론 받아들였다. 모란봉악단이 중국이 거북해 하는 내용을 베이징 공연에서 보여주려 한 것은 양국 관계를 옛 상태로 돌려보려는 어쩌면 마지막 시도였다. 그러나 중국의 답은 ‘노’였다. 북한은 공연단 철수라는 ‘옛날 방식’으로 대응했지만, 평양으로 돌아가서는 입을 굳게 닫았다. 중국 우위의 양국관계가 거의 자리를 잡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북한은 고심할 수밖에 없다. 중국과의 새로운 관계를 결국 수용할지, 아니면 미사일 발사 움직임을 보이는 식으로 중국과의 ‘위험한’ 기싸움에 나설지. 침묵의 길이는 고민의 깊이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북한 모란봉악단 단원들이 지난 12일 중국 베이징 공연을 취소한 후 숙소인 민족호텔에서 빠져나오고 있다. 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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