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입장에서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한반도 진출의 파일럿 프로젝트이다. 본계약이 성사되고 사업이 추진될 경우 러시아는 확신을 가지고 대북사업에 한국이 참여하는 구도를 적극적 만들어 갈 수 있다.”
러시아산 유연탄 등을 러시아 하산과 북한 나진항을 잇는 54㎞ 철도로 운송한 후 나진항에서 화물선에 옮겨 실어 국내 항구로 가져오는 복합물류 사업인 나진-하산 프로젝트. 한·러 정상들이 직접 보증했지만 본계약 체결이 미뤄지고 있는 이 프로젝트를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러시아 전문가인 신범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15일 발간한 ‘북한경제리뷰’ 12월호에 실린 논문 ‘러시아의 신동방정책과 동북아 지역정치’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신 교수는 “북·러 관계의 긴밀화 모멘텀을 남·북·러 삼각협력으로 발전시키는 계기로 승화시키는 (한국의) 대러 외교가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나진-하신 프로젝트를 구체화하고 가속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러시아가 이 프로젝트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한국의 삼각협력 의지에 대한 시험대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프로젝트는 박근혜 대통령이 제시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으로 박 대통령은 2013년 11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공동성명을 발표하며 이를 장려했다. 지난 7일까지 세 차례에 걸친 시범운송 사업이 이뤄졌으나 포스코·코레일·현대상선으로 구성된 한국측 컨소시엄과 러시아 사업자 사이의 협상이 길어지고 있다. 한국측 컨소시엄은 수익성이 낮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 사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 의지가 부족한 것이 계약 지연의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지난 17일 관훈토론회에서 ‘본계약 체결이 언제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북한 리스크라는 부분이 있고, 그 리스크로 인해 기업들이 부담을 느끼기 때문에 정부도 필요한 지원을 해야겠다는 입장”이라고 답했다. 그간 정부의 지원이 충분치는 않았음을 인정하는 것으로도 해석되는 말이었다.
신 교수는 논문에서 “이 사업에 참여하는 기업들에게 주는 정부의 신호가 불명확하면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나서기 힘들 것이 분명하다”라며 “(한국은 민간, 북·러는 정부라는) 사업 주체의 비대칭성으로부터 나타나는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협력과 역할 분담의 구도를 만들고, 분쟁을 조정하고 위험을 분산할 수 있는 체제를 정부가 나서서 만들어 주는 것이 향후 삼각협력을 비롯한 대북 경제협력에서 중요한 관건”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이 프로젝트는 경제적 이익은 물론이고 외교·안보적인 가치도 뚜렷한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냉전적 대립구도가 최근 재연되는 상황을 언급한 신 교수는 “한국은 물론 지역국가들의 미래지향적 관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한국과 같은 중견국에는 매우 불리한 조건을 창출할 가능성이 높다”며 “경쟁적인 구도가 동북아에 출연해 정착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지역외교를 펴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현재의 동북아 및 한반도 상황을 대립 구도 속에서만 파악하기보다 국가안보의 본질적인 속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창의적인 러시아 활용 외교를 추진해볼 필요가 있다”며 “남·북·러 삼각협력은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고 동북아의 안정화에도 기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서동주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도 ‘북한경제리뷰’에 실린 별도의 논문에서 러시아의 안보적·경제적 가치를 정리했다. “안보적 측면에서는 북핵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긍정적인 역할을 기대할 수 있으며, 한반도 평화통일을 지원하는 우호세력이 될 수 있다. 경제적으로도 러시아는 향후 극동시베리아 개발 과정에서 우리의 자본, 기술, 경영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기회의 땅이자 도전을 창출하는 신개척지에 해당된다. 크게 보면 중국의 부상에 따라 점증하는 미·중 경쟁구도 속에서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역내 균형과 안정을 달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즉, 러시아와는 기존 ‘대륙세력 대 해양세력’ 사이의 경쟁적 구도를 넘어 역내 국가들의 공유 이익에 대한 합의를 전제로 하는 지역협력 모델을 가꾸어 나갈 수 있다. 광역두만강개발계획(GTI), 남·북·러 삼각경협, 남·북·러·중 4자경협 등이 이에 해당된다.”
최수영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한·중 협력방안을 논하는 글에서 한국의 중장기 발전전략인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중국의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구축) 전략을 연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유라시아 국가간 협력을 통해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의 기반을 만들고 북한의 개방을 유도한다는 박 대통령의 구상이다. 최 연구위원은 두 전략을 연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업으로 한·중 협력을 통한 동북아 고속철도망 연결 시범사업, 한·중 열차페리 도입, 북한 나선지대 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역외가공지대 설치 등을 제안했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나진-하산 프로젝트 3차 시범사업의 일환으로 러시아산 유연탄 3만9500톤을 실은 중국 선적 화물선 인니엔호가 지난 11월 24일 포항신항에 입항해 하역 대기 중에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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