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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남·북의 대화 의지는 확인됐다…강하지는 않지만”
당국회담 내달 개최 결정, 8·25 고위급합의에 따른 대화 불씨 살려
전문가들 ‘내년 5월 북한 당대회, 향후 남북관계 변수될 것’ 전망
2015-11-29 11:07:35 2015-11-30 11:18:18
“남·북 모두 8·25 합의에 의해 어렵게 마련된 대화의 판을 깼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 한다. 대화 의지를 따지는 것은 ‘물이 반밖에 없느냐 반이나 있느냐’를 따지는 것과 같다.”
 
지난 26일 열린 남·북 실무접촉에서 내달 11일 당국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하면서 남·북 양측에 대화하려는 의지가 얼마나 있는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대화국면을 유지하거나 발전시킬 의지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향후 남북관계가 안정될지, 아니면 ‘가다 서다’를 반복해온 최근 7~8년의 상황이 되풀이될지를 전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무접촉 결과를 토대로 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리지만, ‘남·북 누구도 먼저 판을 깨지는 않을 것 같다’는 진단은 대체로 일치한다.
 
김기웅 통일부 남북회담본부장과 북측의 황철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부장이 수석대표로 나선 26일 실무접촉 후 발표된 공동보도문의 내용은 2항에 불과했다. 1항에서는 제1차 당국회담을 개성에서 개최하기로 했다며 ▲수석대표는 차관급이고 ▲당국회담의 의제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현안 문제”로 하기로 했음을 명시했다. 2항은 “당국회담 개최를 위한 기타 실무적인 문제들은 판문점 연락사무소를 통해 협의하기로 했다”는 기술적인 내용이었다.
 
이같은 발표 내용은 기존의 예상을 깬 것이었다. 실무접촉이 열리기 전 예상됐던 양대 쟁점이 다른 쪽으로 결론이 나거나 봉합됐기 때문이다. 첫 번째 예상 쟁점은 당국회담 수석대표의 ‘격’ 문제였다. 남측은 홍용표 통일부 장관과 북한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수석대표로 나오는 ‘장관급회담’을 제안하는 반면, 북측은 김양건 부장 대신 조평통 서기국장을 수석대표로 내세울 것으로 점쳐졌다. 그러나 결론은 회담 자체를 ‘차관급’으로 낮추자는 것이었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우리측이 차관급으로 하자고 제의했고 북한도 부상급을 단장으로 하자고 제의했다”며 “(양측 모두) 처음부터 그렇게 나왔기 때문에 큰 이견이 없었다”고 밝혔다. 수석대표의 격이라는 형식적인 문제로 갈등하지는 말자는 공감대가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 예상 쟁점은 당국회담이 열릴 경우 무엇을 얘기할 것이냐 하는 ‘의제 문제’로, 실제로 이번 접촉에서 신경전이 벌어졌다. 정 대변인은 “우리는 남북관계의 모든 문제를 폭넓게 협의하는 채널이니 포괄적으로 하자는 것이었고, 북한은 ‘좀 더 구체적으로 하자’는 입장이어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우리측은 ‘이산가족 문제의 시급성을 근본적인 문제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북한은 ‘금강산관광 문제가 당면한 문제’라고 주장했다”고 소개했다. 이같은 줄다리기 끝에 남·북이 도달한 결론은 “의제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현안 문제로 한다”는 일종의 봉합이었다.
 
이같은 접촉 결과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정 전 장관은 수석대표의 격 문제에 대해 “통-통 라인(남측 통일부 장관-북측 통일전선부장)을 고집하면 접점이 만들어지지 않을 것으로 판단해 융통성을 발휘했다”라며 “당국회담이 열리면 어차피 남측 대표단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북측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기 때문에 수석대표의 격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이어 “남·북 모두 8·25 합의를 깼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도 “이번 실무접촉에서는 ‘합의하지 않기로 합의한’(agree to disagree) 셈으로 쟁점을 뒤로 미룬 것”이라며 “대화 의지가 강해 보이지는 않지만 양측 모두 판을 깨지 않으려 한다는 것 자체로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이어 “북한은 36년 만에 당 대회를 여는 내년 5월까지는 남북관계를 비롯한 대외환경을 관리하려 할 것”이라며 “북한이 그렇게 나온다면 남쪽에서 일부러 판을 깰 수 없으니 낮은 수준이라도 뭔가를 합의해 진행시키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런 마당에 남측이 더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이룰 것이 많겠지만 정부에 그런 의지가 있는지는 불명확하다. 적극 나서라고 주문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반면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다소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정 실장은 “장관급회담과 차관급회담은 타결할 수 있는 사안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번 실무접촉 결과는 남·북 당국에 강력한 대화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을 드려냈다”라며 “차관급이라도 열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현안을 다루기로 한 점은 다행이지만 향후 북한이 차관급으로 내세울 인물에 대해 남한이 차관급이 맞다고 간주할 수 있을지도 문제로 남는다”고 말했다.
 
누구를 차관급으로 간주할 것이냐의 문제를 해결한 후 예정대로 당국회담이 열릴 경우 ▲의제를 무엇으로 할 것이며 ▲각 의제별로 어떤 합의를 도출할지를 두고 본격적인 줄다리기가 벌어진다. 남측은 전체 이산가족의 생사 확인과 상봉행사 정례화 등을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이 확실시된다. 반면 북측은 금강산관광 재개를 최대 목표로 두고 회담에 임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은 위원장의 치적으로 포장되고 있는 강원도 원산의 마식령스키장 사업을 살리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남북 당국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이 열린 26일 판문점 북측 지역인 통일각에서 남측 수석대표인 김기웅(오른쪽) 통일부 남북회담본부장과 북측 수석대표인 황철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부장이 악수하고 있다. 사진/통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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