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굴의 도전정신이 만든 자동차·조선·…아산 일생은 '무'에서 '유' 창조 과정
2015-11-24 15:55:56 2015-11-24 15:59:19
25일은 현대그룹을 세운 ‘아산’ 정주영 회장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가 세상을 떠났지만 ‘왕회장’으로 불릴만큼 많은 사업을 거느렸던 정 회장의 영향력은 아직도 한국경제에 살아 숨쉬는 듯하다.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중공업, 현대그룹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한국 경제에 초석을 세운 정 회장의 기업가 정신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의 수많은 어록 중 현재까지도 가장 많이 회자되는 명언이 "이봐 해보기나 했어"이다.
산업기반 시설 등이 부족했던 1970년대 자본도 기술도 없던 한국경제가 자립하기 힘들다는 인식이 퍼져있었지만 아산은 '한번 해보자'는 도전정신으로 한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아산 정주영 회장의 불굴의 도전정신은 기업가 정신의 표상으로 불리고 있다.사진/현대차그룹
 
강원도 통천군의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난 정주영은 16살 때 아버지가 소를 판 돈 70원을 들고 무작정 상경했다. 아산이 도전정신만 가지고 지금의 글로벌 기업을 일궈 놓은 것은 아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기던 일에 과감히 부딪혀 현실로 만들어 낸 것에 주목해야 한다. 1972년 정 회장이 현 세계 1위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을 창업할 때의 일화는 유명하다.
 
정 회장은 거북선이 새겨진 500원짜리 지폐 한 장에 울산 미포만의 모래사장 사진과 5만분의1 지도 각각 한 장을 들고 영국 컨설턴트회사를 찾아가 5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보이며 "우리는 영국보다 300년 앞선 1500년대에 이미 철갑선을 만들었다"고 말한 것이다. 이를 통해 차관을 빌려와 세계 1위 조선소의 꿈을 이뤘다.
 
아산은 현장경영의 대표적 기업인으로 손꼽힌다. 아산은 산업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머리'가 아니고 '현장'임을 강조했다. 도전정신 하나로 시작한 건설. 백사장 사진만 들고 영국 컨설턴트회사에 찾아가 닻을 올린 조선소. 자동차산업의 시동을 거는 등이 그의 도전정신이 이룩한 결과다. ‘불도저’식으로 일단 시작하고 보는 정 명예회장의 추진력은 현재까지 ‘현대맨’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통한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선친의 이 같은 근면성실함을 그대로 물려받아 동분서주한 현장경영을 실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재벌 오너라고 뒷전에 있지 않고 틈만 나면 공사 현장과 생산시설을 찾아 현장 노동자들과 호흡하며 문제점을 파악해 바로 잡았다. 현장 경영을 통해 '현대 신화'를 이룩한 것이다.
 
1976년 6월 고 정주영(왼쪽)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사우디아라비아의 나와프 왕자와 주바일 산업항 공사 계약을 따낸 후 활짝 웃고 있다.사진/현대차그룹
 
통일을 염두에 둔 대북사업 또한 아산이 물꼬를 텄다. 1998년 6월 16일 황소 500마리를 실은 흰색 트럭 50대가 줄줄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으로 넘어갔다. 이어 아산은 분단 이후 민간인으로는 처음으로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그가 2차례에 걸쳐 1001 마리의 소 떼를 이끌고 판문점을 통과해 북한으로 걸어간 모습은 민족사에 기록될 명장면으로 꼽힌다.
 
그가 말년에 물꼬를 튼 대북사업은 현재에도 남북 경제협력의 사실상 유일한 창구로 남아 있다.  
 
김종훈 기자 fu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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