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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스토리)기술의 진보, 허용범위는 어디까지
텔레그램, IS 관련 채널 78개 폐쇄…사생화 보호 vs 공공 안보 가치 대립
대안 금융서비스, 테러 자금원으로 악용…MSB로 최소한 규제
2015-11-24 15:00:11 2015-11-24 15:00:11
1876년 '노벨의 안전화약'이란 이름으로 판매된 다이너마이트는 기존의 폭약보다 훨씬 더 강력하면서도 안전해 채굴이나 건설 산업에서 널리 사용됐다. 그러나 동시에 인명 살상 용도로도 자주 사용돼 노벨에게 '죽음의 상인'이라는 오명을 씌웠다. 인류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 발명된 물건이 되레 해를 끼친 대표적 사례다. 다이너마이트로 축적한 부에 죄책감을 느껴 재산을 기부하고 노벨상을 제정했다는 주장이 나온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기술의 진보 속도가 빨라진 오늘날에는 본래의 목적과 다른 용도로 악용되는 경우가 더 빈번하게 목격된다. 개인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하는 서비스라도 국가 안보나 사회 정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판단될 경우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심심찮게 들린다.
 
◇빠르게 발전하는 IT 기술은 개인의 삶의 질을 개선시키는 동시에 공공의 이익을 해치는 수단으로도 빈번히 악용되고 있다. 에드워드 스노든 전 NSA 직원의 폭로 이후 각광받은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도 최근 이 같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사진/뉴시스
 
지난 1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은 이슬람국가(IS)의 12개 언어로 된 78개 채널을 폐쇄했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개인의 사생활 보호가 더 중요하다"는 이유로 IS와 관련된 채널을 막지 않은 데에서 전향적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들의 결정에는 13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파리 테러가 직접적 영향을 끼쳤다. IS가 텔레그램을 이용해 전세계를 대상으로 자금과 조직원을 모집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IS는 인원제한 없이 무제한으로 단체 메세지를 보낼 수 있는 '채널' 기능을 이용해 테러 관련 메세지나 동영상을 전파했다. 
 
러시아판 페이스북 '브콘탁테'를 개발한 파벨 두로프, 니콜라이 두로프 형제가 러시아 정부의 검열에 반발해 만든 텔레그램은 보안성을 최우선으로 한다. 모든 메세지 데이터를 암호화하고 대화 내용도 서버에 저장하지 않아 외부의 도·감청에 노출될 위험을 크게 줄였다. 지난 2013년 미국 국가안전보장국(NSA) 직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NSA의 무차별적 도청 활동이 알려진 이후 더욱 각광받았다. 누구나 무료로 쉽게 사용할 수 있으면서도 개인의 대화 내용이 정보 당국에 알려지기 어렵다는 이점으로 '사이버 망명'을 시도한 사람들이 급증했다. 작년 말 기준 텔레그램의 하루 평균 메세지 전송량은 100억건으로 초창기대비 10배 이상 늘었다. IS가 텔레그램을 선택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IS는 이 외에도 킥, 슈어스팟, 위커 등 보안성이 높은 메신저들을 주로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IS가 보안 메신저를 이용했다는 사실은 곧바로 '사이버 사찰' 논란으로 확대됐다. 개인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고안된 기술 혹은 서비스가 국가 안보를 위협할 경우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두고 대립각이 세워졌다. 찰스 그래슬리 아이오와주 상원의원은 "새로운 기술들의 개발은 테러리스트나 범죄자들이 그림자 속에서 움직일 수 있게 허용하는 동시에 사법 당국이나 정보 기관을 무력화 시켰다"고 비판했고, 다이앤 파인스타인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도 "실리콘밸리는 사악한 괴물들이 이용하고 있는 그들의 제품을 되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IT업계에서는 보안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창업자는 "사생활 보호는 테러에 대한 공포심을 우선하는 가치"라며 IS 관련 채널 차단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도 최근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애플의 어떤 제품에도 비밀의 문을 만들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가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도록 뒷문을 열어준다면 나쁜 사람들도 같은 경로를 타고 유입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테러리스트 연락책·자금줄 된 신기술
 
IS, 알카에다와 같은 테러조직들에 악용된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는 모바일 메신저 뿐이 아니다. 스마트폰, 태블릿PC 등의 보급을 발판삼아 성장한 모바일 메신저가 이들의 연락책 역할을 했다면, 기존 금융권의 틀을 벗어난 대안 금융 서비스는 테러리스트들의 활동을 뒷받침하는 자금줄이 됐다. 은행을 통한 환전, 송금 등의 거래가 당국의 엄격한 통제를 받기 때문에 이를 피해 자금을 이동시키려는 것이다. 
 
가장 보편적으로 활용되는 것은 이슬람 문화권의 전통적인 송금 시스템인 '하왈라(Hawala)'다. 아랍어로 '이동하다(transfer)'란 뜻의 하왈라는 현대적인 은행의 개념이 생겨나기 전부터 실크로드 교역 상인들이 사용하던 송금 수단이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과 교역을 할 때 결제 수단인 금이나 귀금속을 직접 가지고 여행을 하다 도적에게 빼앗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고안됐다. 최근에는 선진국으로 이주한 노동자들이 본국으로 돈을 부칠 때 주로 쓰인다. 본국이 대부분 은행 시스템이 발달하지 않은 저개발 국가라 마땅한 대안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 예멘 등지의 비정부기구나 구호 단체에 활동비를 전달할 때에도 하왈라는 유용하다.
 
하왈라의 운영 매커니즘은 간단하다. 전세계에 걸쳐 수 천개 이상 산재된 하왈라 점포에서 송금 금액과 약간의 수수료를 내고 비밀번호를 부여받아 수취인에게 알려주면 수취인은 가까운 하왈라 점포에서 비밀번호를 대고 송금된 자금을 수령할 수 있다. 겉보기에는 은행의 해외 송금과 다를 것이 없지만 실제로 자금이 국경을 넘지는 않는다. 하왈라 시스템의 근간은 '신뢰'다. 별도의 담보 없이 '하왈라다'라 불리는 중개인의 퍼포먼스나 신용에 기대 운영된다. 또한 서류 작성을 최소화하고 이 마저도 거래 종료 후 모두 폐기하기 때문에 거래자의 신원이 노출될 가능성도 적다.
 
 
그러나 제도권을 통하지 않고 국가간 자금 이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은 테러단체들의 타겟이 되는 배경이다. 자금 세탁이나 조세 회피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911테러 당시 알카에다가 하왈라 네트워크를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하왈라 점포 폐쇄와 하와라다 기소 등의 규제가 뒤따랐다. 수 년간에 걸친 조사 끝에 이용자 대부분이 합법적인 목적으로 비공식 네트워크를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 밝혀졌지만 하왈라는 테러자금을 논할 때면 빠지지 않는 이슈다. 특히 최근에는 IT 기술과 결합해 온라인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트랜스퍼와이즈, 커런시페어, 아지모같은 스타트업 기업들은 하왈라의 송금 시스템을 차용해 개인간 자금 이동을 지원하고 있다.
 
◇대안 금융서비스에 MBS란 이름의 울타리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일부 서방 국가들은 이 같은 대안 금융서비스들을 '머니서비스비즈니스(MSB)'란 이름으로 통제하고 있다. 기존 규제의 틀로 설명되지 않는 서비스들에 대한 최소한의 감시를 통해 불법적인 자금 거래로 인한 범죄 발생을 막겠다는 것이다. 미국과 캐나다는 2000년을 전후해서, 영국은 이보다 늦은 2007년 관련 규정을 마련했다. 외환거래, 송금, 수표 현금화, 우편환 발행 및 지급 등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가리지 않고 은행을 통하지 않는 돈의 이동은 모두 신고 대상이다.
 
구체적인 조건은 국가별로 상이하지만 영국을 기준으로 보면 ▲연간 MSB 거래액이 6만4000파운드(약 1억1200만원) 이하 ▲MSB 거래액이 전체 연간 거래액의 5% 미만 ▲1인당 외환 거래 및 수표 현금화 금액 1000파운드(약 175만원) 이하 등의 항목 중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국세청과 금융감독당국(FCA)에 모두 신고를 해야 한다. 두 기관에 신고가 되지 않은 경우 서비스 개시를 할 수 없다. 이후 당국은 신고된 업체 정보를 기반으로 의심되는 거래 행위가 있는지를 감시한다. 미국을 예로들면 특정 개인의 1회 거래 금액 혹은 서로 연관이 있어 보이는 일련의 거래 규모가 1만달러(약 1100만원)을 초과할 경우 통화거래보고(CTR)를 해야 한다. 이보다 규모가 적은 2000달러(약 230만원) 이상의 거래에서도 의심되는 패턴이 발견되면 관계 당국인 금융정보분석기관(FinCEN)에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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