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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부조리한 세상, 사다리가 필요한 사람들
2015-11-19 06:00:00 2015-11-19 06:00:00
최근 음악 소재 프로그램이 인기다. MBC '복면가왕', Mnet '너의 목소리가 들려' 등 포맷은 조금씩 다르지만, 음악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들이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한 지상파 PD와 이야기를 나눴더니 "우리 민족은 한과 흥이 많은 민족이다. 한과 흥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노래가 아닌가. 그래서 음악을 소재로 한 방송 프로그램이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음악 프로그램들이 단순한 음악 감상용 프로그램들은 아니다. 한과 흥이 많은 우리 민족의 특성만으로는 설명하기 부족한 부분이 있다.
 
'복면가왕'은 출연진이 복면을 쓴 채 노래를 부르는 프로그램이다. 시청자들은 얼굴을 가리고 노래를 부른 출연진이 복면을 벗을 때 쾌감을 느낀다. 때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얼굴을 드러내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노래를 부른 주인공이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출연자 중 음치와 실력자를 가려내는 프로그램이다. 출연진은 직업과 나이, 노래 실력을 숨긴 채 무대에 오른다.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는 누가 음치이고, 누가 실력자인지가 공개되는 순간이다.
 
두 프로그램 모두 출연진이 자신의 배경을 숨긴 채 무대에 오른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평소 주목 받지 못했던 무명 가수, 음치 등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복면가왕'의 출연자가 흘리는 눈물에는 누구에게도 인정 받지 못했던 자신의 노래 실력을 얼굴을 가리고 무대에 오른 뒤에야 인정 받게 됐다는 복잡미묘한 감정이 담겨 있다.
 
연예계에서는 시시각각 다양한 사건이 발생한다. 연예인들은 이 사건 하나, 하나에 웃고 운다. 대중의 마음은 갈대다. 연예인이 잘하면 환호하지만, 잘못을 하면 가차없이 비난을 쏟아붓는다. 그런데 요즘 대중들이 유독 분노하는 종류의 사건이 있다. 사회의 부조리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들이다. 대중들은 연예인들의 병역 문제나 특권 의식으로 인한 문제 등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와 연관된 기사에 가장 많은 댓글이 달리고, 사건에 관련된 연예인들은 이미지 회복에 애를 먹는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음악 프로그램들에서는 이와 같은 부조리를 찾아볼 수 없다. 누구나 똑같은 조건하에 평가를 받기 때문에 '흙수저'가 '금수저'가 되기도 하고, '금수저'가 '흙수저'가 되기도 한다. 부조리한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계층 사다리가 끊어져버린 사회에서 '금수저'는 영원히 '금수저'이고, '흙수저'는 영원히 '흙수저'일 뿐이다. 부조리한 사회에 대해 분노하고, 누구나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탈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대중의 욕망이 최근 연예계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음악 소재 프로그램에 숨어 있다.
 
정해욱 문화체육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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