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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CJ회장12월15일 선고…집행유예 가능성 짙어져
검찰 '배임액 산정' 쟁점 더 이상 안 다퉈
2015-11-11 06:00:00 2015-11-11 06:00:00
이재현(54) CJ그룹 회장의 파기환송심 첫 재판이 단 1회로 변론이 종결돼 집행유예 선고 가능성이 짙어졌다. 대법원이 이 회장의 일본 부동산 매입과 관련해 '배임액을 구체적으로 산정할 수 없다면 가중처벌을 할 수 없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으나 검찰은 더 새로운 증거로 이를 반박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 실형과 집행유예 사이에 선 이 회장에게는 긍정적인 신호다.
 
서울고법 형사12부(재판장 이원형)는 10일 1600억원대 횡령·배임·탈세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 첫 재판에서 "검찰과 이 회장, 쌍방이 추가로 더 제출할 증거가 없다는 입장"이라며 결심을 진행한 후 "12월15일 오후 1시에 이 사건을 선고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날 대법원 판단을 다시 뒤집을 만큼의 확실한 의견도 내지 못한 채 배임의 이득액 산정에 도움이 될 방향만 제시하는 데 그쳤다. 추가 공판으로 이 회장의 배임액 산정을 구체적으로 입증하기보다는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판단만을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검찰은 대법원의 배임죄 판단에 대해 "현재까지 인정된 사실관계를 기초로 법리적으로 의견을 달리하고 객관적인 사실관계만으로도 배임액을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있다"며 파기환송 전 2심 구형량인 징역 5년에 벌금 1100억원을 유지했다.
 
그러면서 "신뢰관계에 있으면서도 이를 배신해 이득을 취하고 본인에게 손해를 가하는 게 본질"이라며 "손해가 실제로 발생하지 않아도 그럴 위험이 있으면 성립하는 게 배임죄"라고 지적했다. CJ재팬 입장에선 이 회장이 법인 소유의 재산을 임의로 금융기관에 담보로 맡겨 대출을 받고 보증채무까지 지게 해 손해를 입었으며 반면, 이 회장은 이에 상응하는 이득을 취했다는 논리다.
 
이 회장 소유의 팬 재팬(Pan Japan)이 담보제공과 보증채무로 구입한 빌딩을 보유하고 임대업도 하고 있어 대출금을 자력으로 변제할 능력이 있으며 CJ재팬의 현실적인 손해도 없어 '배임의 이득액 산정이 불가능'이라는 대법원 판단과 관련해선, "그런 논리라면 대출사기에 이를 정도가 되지 않는 한 이득액 산정이 불가능하고 결국 가중처벌을 할 수 없다는 이상한 결론"이라고 반문했다.
 
검찰은 또 "당시 대출과 관련해 위험성을 가장 객관적으로 심사숙고해 평가한 것은 금융기관"이라며 "담보제공이나 보증채무 부담을 요구했던 신한은행 동경지점의 대출 경과를 보면 이득액이 분명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팬 재팬은 CJ재팬의 담보제공과 연대보증으로 실제 받을 수 있는 대출액보다 더 많은 금액을 대출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은행의 당초 팬 재팬에 대한 대출가능액과 실제 대여한 대출 액수의 차액으로도 이 회장의 이득액 산출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같은 검찰의 의견은 기존 입장 고수에 집중됐을 뿐이다. 검찰 스스로도 이 회장의 배임 혐의를 특경가법으로 처벌하는 데 자신감을 잃은 것으로 풀이된다. 대법원에서 배임액 재산정을 이유로 파기환송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사건에서 검찰이 보인 과거 모습과 사뭇 다르다. 검찰은 당시 파기환송심에서 4개월여 동안 수차례 공판기일과 감정기일을 통해 배임액 일부를 철회하면서까지 김 회장의 배임액 산정을 구체적으로 특정하는 데 집중했다. 최근 법원이 기업인들에 대한 배임 혐의를 엄격히 판단하고 있는 추세도 검찰에게는 적잖은 부담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회장의 실형 가능성을 쉽게 배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재판부는 이 회장의 변호인에게 팬 재팬의 임대 수익과 관련한 신빙성 있는 자료와 현재까지의 대출금 변제 상환 자료도 추가로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팬 재팬의 대출금 변제 능력을 집중적으로 살피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재판부는 또 이 회장의 변호인에게 대출기한 연장이 안 돼 한꺼번에 대출금 전액을 갚아야 할 상황을 가정하며 그에 대한 대처 방안을 반복적으로 물으며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이에 이 회장의 변호인은 "당시 이자율 때문에 편의상 기한을 나눈 것이지 기한 갱신에 특별한 문제는 없다"면서도 "그 점에 관해 특별히 의견을 나눈 건 없다"고 답했다. 이날 재판에 대해 이 회장의 항소심 변론을 맡은 한 변호인은 "아직까지는 이 회장의 집행유예 선고를 쉽게 예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회색 털모자를 쓴 채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출석한 이 회장은 재판 내내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최후진술 차례가 오자 이 회장은 "모든 게 제 탓"이라면서 "건강을 잘 회복하고 선대 유지인 사업보국, 미완성의 CJ를 세계적 기업으로 만들 기회를 간곡히 부탁드린다"며 미리 준비해 온 듯한 서면을 힘에 겨운 나지막한 음성으로  읽어 내려갔다.
 
앞서, 이 회장은 1657억원의 횡령과 배임, 조세포탈 혐의로 지난 2013년 7월 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과 벌금 260억원을 선고받았다. 2심에선 이 회장이 직원들과 공모해 회비·조사연구비 등을 정상 지급한 것처럼 전표를 조작하고 회계장부를 조작해 115억8000만원을 횡령한 혐의 등이 무죄로 인정돼 징역 3년에 벌금 252억원이 선고됐다. 대법원은 조세포탈 251억원과 횡령 115억원을 유죄로 인정한 항소심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고 배임 혐의에 대해서만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며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1차 공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신지하 기자 sinnim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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