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사업 영역에 대기업 진출을 제한하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가 통상협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분석이 나왔다. 외국과의 통상 마찰을 이유로 적합업종을 반대해온 대기업 논리를 뒤집는 주장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적합업종 법제화를 '민생 개혁' 법안의 하나로 내세우면서 적합업종을 둘러싼 '밀고 당기기'도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통상협정과 중소기업 적합업종의 지정' 보고서를 내고 "통상협정으로 개방된 서비스업에 국내 규제를 도입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며 "지금처럼 강제가 아닌 권고사항으로 적합업종 제도가 운영되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적합업종 제도는 지난 2011년 동반성장위원회가 제조업 82개 업종을 지정하면서 출발했다. 중소기업의 사업 영역을 보호하고, 대·중소기업의 상생·협력을 북돋기 위해서다. 동반위는 중소기업 사업자 단체와 대기업이 협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진입 자제, 사업 철수 등을 권고한다. 현재 적합업종에는 제조업 55개, 서비스업 18개 등 73개 업종이 지정돼 있다.
적합업종 제도를 반대해온 쪽에선 이같은 조치가 무역 장벽을 완화하거나 없애는 통상협정과 충돌할 수 있다는 목소리를 냈다. 정부가 적합업종을 지정하고, 대기업의 시장 접근을 제한하면 외국계 기업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한국이 체결한 세계무역기구(WTO)의 '서비스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S)'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에 위반될 수 있다는 얘기다.
입법조사처는 일부 업종에 외국인 투자를 제한하는 현행법을 통상 분쟁을 피할 수 있는 근거로 들었다. '외국인투자촉진법'과 산업통상자원부 규정에서 정한 60개 업종에는 외국인 투자가 금지돼 있다. 제한을 가할 수 있는 31개 업종도 있다. 이러한 91개 업종은 적합업종으로 지정돼도 외국계 대기업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입법조사처는 "당사자 협의로 적합업종을 선정하고, 권고사항으로 하면 통상규범과의 충돌을 피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통상협정에서 개방하지 않았거나 조건을 붙인 업종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1994년 WTO 협정에서 서비스업 155개 분야 가운데 77개는 개방하지 않았다. 유럽연합과의 FTA에선 42개 업종, 미국과의 FTA에선 24개 업종이 개방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입법조사처는 "한국이 개방하지 않은 분야는 외국계 기업이 문제삼을 수 없다. 개방된 업종도 WTO 협정이나 FTA 조건을 고려해 적합업종으로 지정할 수 있다"고 했다. 입법조사처는 또 "전국 단위로 하지 않고 업종과 지역을 '골목상권' 개념으로 묶어 해당 지역만 대기업 진출을 제한하면 통상협정 위반 논란을 피해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중소기업계는 한발 더 나아가 적합업종 법제화를 주장하고 있다. 권고만으로는 대기업 진출을 막을 수 있는 제재 수단이 없어서 적합업종이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나오면서다. 대기업 쪽에선 법제화가 통상협정 위반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하지만, 정당한 공공정책을 목적으로 한 조치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새정치연합도 이러한 움직임에 발을 맞추고 있다. 문재인 대표는 8일 '민생 살리기' 기자회견에서 "적합업종 제도는 민간의 자율적 합의로 결정되고, 권고 효력만 있어서 실효성에 한계가 많다"며 "이미 발의한 '중소기업·중소상인 적합업종 특별법' 제정안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추진법' 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시켜 재벌 대기업의 무차별적 사업 확장을 막겠다"고 말했다. 최재천 정책위의장도 이날 '민생 최우선주의' 10대 법안 가운데 하나로 '중소기업·중소상인 적합업종 특별법'을 제시하며 "정기국회에서 법안이 반드시 통과되도록 당력을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이순민 기자 soonza00@etomato.com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달 16일 주최한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 개선 방안' 토론회에서 경제개혁연구소 위평량 박사가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김경만 중기중앙회 산업지원본부장은 이날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으로 인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경제의 틀을 중소기업 중심으로 바꾸는 데 적합업종 제도의 법제화가 의미를 가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진/중소기업중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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