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보는 얼굴인데도 높은 분들은 정작 필요할 때 우리 말을 들어주지 않아요."
20일 국회 정론관에서 만난 청소노동자 이영숙(가명·61·여)씨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10년째 새벽마다 국회에 나와서 일한 이씨가 받는 돈은 한 달에 146만원. 최저임금(126만원)보다 조금 많은 액수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이 많은데 아무리 일해도 월급은 그대로니까 먹고살기에도 빠듯하다"며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제대로 된 돈을 줄 수 있는데, 허울 좋은 말들만 늘어놓는다"고 말했다.
남편과 함께 돈을 버는 이씨 형편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국회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는 207명. 대부분이 50~60대 여성이다. 국회환경미화노동조합 김영숙 위원장은 "손자·손녀를 키우거나 남편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빚을 갚으려고 나온 사람들이 많다"며 "외벌이로 가정을 꾸려가는 탓에 월급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와 국회환경미화노조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사무처가 청소노동자 임금을 '공공기관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에서 정한 수준으로 올리려고 예산안을 냈지만, 기획재정부는 이를 대폭 삭감했다"며 "정부는 공공기관이 지침을 준수하도록 예산을 편성하고 적극 반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새정치연합 홍익표 의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국회사무처는 내년 청소노동자 월급을 146만원에서 173만원으로 올리기 위해 67억2300만원의 예산을 요구했다. 하지만 기재부는 1명당 월급을 고작 3만원씩만 올린 56억8300만원으로 삭감했다. 기재부는 "청소노동자는 국회에만 있지 않다. 예산심사 과정에서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해 조정했다"는 이유를 댄 것으로 전해졌다.
173만원은 정부가 지난 2012년 1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용역근로자 보호지침에 맞춘 액수다. 정부는 당시 홍익대 청소노동자 간접고용 문제가 커지자 공공기관 용역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보다 많은 '시중노임단가'를 적용하도록 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올해 청소용역 시중노임단가는 6만4150원(일급 기준)이다.
하지만 지침은 휴지조각이 된 지 오래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8일 375개 공공기관 가운데 지침에서 정한 항목을 모두 지킨 곳은 38%라고 발표했다. 시중노임단가를 적용한 곳은 45.5%에 머물렀다. 을지로위원회가 국정감사를 앞두고 자체조사한 결과를 보면, 시중노임단가 준수율은 6%까지 떨어진다. 을지로위원장인 새정치연합 우원식 의원은 "공공기관에 적용하는 지침을 만든 지 4년이 지났고, 국감에서 기관장들이 약속을 지키겠다고 했지만 정부는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를 내팽개치고 있다"며 "기재부는 지침을 만든 주무부처 가운데 하나인데도 예산을 자르며 번번이 어깃장을 놓는다"고 지적했다.
시중노임단가를 대하는 공공기관들의 태도는 편법 혹은 무시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구권서 서경지부장은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시중노임단가에 맞춰 임금을 올린다면서 청소노동자들을 해고했다"며 "심지어 국립국악원은 기재부가 예산을 삭감하는 바람에 최저임금도 맞추지 못해 5000여만원에 달하는 체불임금이 쌓여 있다"고 말했다. 8년째 서울대병원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한 이현순 공공운수노조 민들레분회장은 "병원 측은 지침이 지침일 뿐 지킬 의무가 없다고 말한다"며 "독한 약병과 병균에 노출돼 일하면서도 한푼이라도 아끼려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 지침이 무시되는 현실을 보면 막막하기만 하다"고 했다.
예산결산위원회 소속인 홍익표 의원은 "정부가 정한 지침을 지킬 수 있게 예산을 주고 지원하는 것이 기재부 역할인데, 거꾸로 삭감하는 행태는 충격적"이라며 "예결위에서 지침을 만든 기재부, 고용노동부, 행정자치부를 상대로 시중노임단가가 적용되지 않는 것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이순민 기자 soonza00@etomato.com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와 국회환경미화원노동조합,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은 20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이 '용역근로자 보호지침을 준수하도록 예산을 반영하고, 고용노동부는 주무부처로서 강력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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