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계기로 11월 초 한·일 정상회담 개최가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그러나 휘발성 높은 일본 문제에서 박 대통령이 무리할 경우 정치적 역풍을 맞을 수도 있고, 그런 상황에서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뚜렷한 성과를 내기도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대통령은 지난 15일 미국 워싱턴D.C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연설을 한 뒤 열린 질의응답 시간에 “2주 후에는 3년 반 동안이나 중단되었던 한·일·중 정상회의를 서울에서 주최할 예정"이라며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그 기회에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한도 좀 풀어드리고, 우리 국민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이 문제도 진전이 있게 된다면 의미 있는 정상회담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도 말했다. 회담에서 위안부 문제를 논의하되 그 문제의 해결을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삼지는 않겠다는 뜻이었다.
박 대통령이 취임 후 첫 한·일 정상회담을 하는 쪽으로 움직이는 것은 무엇보다 미국의 요구 때문이다. 한·미·일 3각 체제를 추구하는 미국이 한일관계 개선을 압박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16일 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도 “일본과의 관계를 보며 여러 가지 역사적 문제를 해결하고 모든 동북아 국가들이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갖는 것”을 바란다고 말했다. 요미우리신문은 17일 일본 외무성의 한 간부가 “미국이 대일본 관계 복원을 강하게 요구해 한국이 겨우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아베 총리는 16일 자민당 인사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3국 정상회담 참석을 계기로 한국, 중국과 반드시 양자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일본 언론이 전했다.
그러나 일본과 관련해 국민정서상 받아들이기 껄끄러운 일들이 최근 불거지면서 박 대통령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지난 14일 국회에서 “일본이 우리와 협의해 필요성이 인정된다면 (자위대의) 입국을 허용할 것"이라고 답한 일이 대표적이다. 황 총리의 발언은 이른바 ‘친일 미화’ 역사교과서 논란으로 달아오르던 여론에 기름을 부은 꼴이었다.
여기에 일본 해상자위대 주최로 18일 열린 관함식에 한국 해군 함정이 참가해 아베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대함경례’를 했다. 20일에는 일본의 방위상이 4년9개월 만에 한국을 방문해 한민구 국방장관과 회담한다. 최근 방한한 존 리처드슨 미 해군참모총장은 지난 16일 기자회견에서 한·미·일 3국의 연합군사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열릴 경우 핵심 쟁점인 위안부 문제에서 박 대통령의 운신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일본이 입장도 경직되어 있어 위안부 문제에서 진전을 보기 힘들어 보인다. 일본 외무성의 한 간부는 NHK에 “(위안부 문제에서 일본이) 양보하는 것은 무리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마이니치신문이 만난 외무성 간부는 “회담을 의미 있게 만들려면 일체 (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삼지 말아야 한다”고도 말했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박근혜 대통령은 15일 오후(현지시간) 워싱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 후 질의응답 과정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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