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외국 관광객들에게 과거보다 한층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고, 남·북간에는 8·25합의 이후 종교계·노동계 등 민간교류가 기지개를 켜면서 ‘북한의 변화된 실상’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정부도 전문가들로부터 ‘북한의 오늘’에 대한 분석을 듣는 자리를 잇달아 마련하고 있다. 통일부는 지난 13~14일 주최한 ‘세계북한학학술대회’를 통해 150명이 넘는 국내외 학자들의 북한 연구 결과를 집대성해 보여줬다. 방송통신위원회는 13일 '2015 남북 방송통신 국제콘퍼런스'를 열었다.
세계북한학학술대회에서 북한경제 전문가인 이영훈 SK경영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이 2009년 11월 단행한 화폐개혁 이후의 금융 현황을 분석해 주목을 끌었다. 이 연구위원은 2009년 이른바 ‘몰수형 화폐개혁’이 실시돼 2010년대 들어 화폐금융의 환경이 변화했다면서 “통화 증발에 따른 북한 원화의 가치 폭락으로 북한 원화는 외화로 본격 대체되고 있다”고 전했다. 대체되는 외화는 미국 달러화나 중국 위안화이다.
이 연구위원은 “그 결과 통화정책의 효과가 약화되어 과거와 같은 급격한 인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은 줄었지만 향후 사금융과 달러라이제이션(또는 위아나이제이션)의 부작용은 체제 안정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사금융은 시장경제와 경제 성장을 촉진하지만 정부 주도의 자원 배분 및 경제 발전을 어렵게 할 뿐 아니라 경제 질서의 형평을 저해한다”며 “위아나이제이션은 인플레이션을 완화하지만 통화주권 약화뿐 아니라 지도자의 위상 하락마저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현상에 대한 대책으로 북한 정부는 최근 외화정기예금, 외화카드, 외화상점의 이용 확대, 외화로 조세 납부, 외화거래 허용, 협동화폐교환소를 통한 환전의 편의 도모, 전자상거래 도입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 연구위원은 “북한 정부의 의도는 달러라이제이션 문제를 해소하고 시장에 분산된 사금융을 공식 금융기관으로 집중시킴으로써 시장경제에 대한 은행 통제를 강화하고, 국내의 자금 동원을 통해 경제 발전을 도모하려는 데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연구위원은 “이들 조치들 가운데 외화카드 도입 등 외화 흡수 조치들은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외화정기예금, 전자상거래 등 은행 계좌와 연동되는 조치들은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 이유는 ▲금융기관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신뢰 부족 ▲부정부패에 연루된 사람들의 은행거래 기피 ▲공식 금융기관과 사금융의 현격한 이자율 차이 등이라고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이 연구위원은 “북한 정부는 당분간 외화 흡수를 통해 외화 관리에 집중하면서 북한 원화 가치를 안정시키는 데 주력할 것”이라며 “원화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가 회복되면 이자율을 현실화함으로써 예금을 유인하는 등 금융기관의 기능 회복에 본격 나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같은 상황이 주는 시사점에 대해 이 연구위원은 “최근 금융조치의 성과 여부는 북한 경제가 정부 통제 하의 시장경제로 이행할 수 있을지 여부와, 북한경제가 대북제재 하에서 안정적으로 유지·성장할 수 있을지 여부를 결정하는 하나의 분수령”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최근 조치들이 성과를 거둔다 하더라도 경제가 획기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외자가 도입되어야 한다”며 “향후 대북정책은 (북한) 금융의 문제점을 충분히 반영하고 이를 정책의 지렛대로 삼아 북한의 호응을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진희관 인제대 교수는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본격적으로 권력을 행사한 2012년 1월부터 2015년 8월까지 3년8개월 사이 엘리트들의 구성을 분석한 결과 실무 엘리트들이 절반가량 교체됐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진 교수는 3년8개월 동안 북한 <노동신문>에 나온 기사 615건을 분석해보니, 김 제1비서의 현지지도 등을 수행한 인물들 중 2011년 김정일 사망 때 꾸려진 국가장의위원회 명단 232명에 포함되지 않은 새로운 인물의 비중이 2012년 27%에서 2013년 35.1%, 2014년 44%, 2015년 51.3%로 늘어 현재는 절반 이상이 새로운 인물들로 채워졌다고 말했다.
진 교수는 “다만 중앙보고대회 또는 최고인민회의와 같은 국가의 중대 행사에서 주석단으로 호명되는 20~30명의 최고위층들은 과거와 대부분 차이가 없다”며 “최고인민회의 주석단을 분석한 결과 5명 정도의 차이만이 존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의 엘리트들은 실무 수준에서의 작은 변동이 있지만 최고위층에서는 제한적인 변화만 볼 수 있다”며 “따라서 체제의 내구성 또는 혼란과 연계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방통위가 주최한 ‘남북 방송 콘퍼런스’에서는 남·북 합작대학인 평양과기대의 박찬모 명예총장이 소개한 북한의 정보통신기술(ICT)이 관심을 모았다. 박 명예총장은 발제문을 통해 북한이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과 컴퓨터 영재교육에 집중하고 있다며,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정보기술 환경에 대해 그는 판형컴퓨터(태블릿PC)가 소학교 학생들도 가지고 다닐 정도로 급속히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지난 11일 평양 중심부의 한 거리 풍경. 젊은 여성들이 사진을 찍고 있고, 그 뒤에서는 청년들이 농구를 하고 있다. 멀리 고층 건물과 공사 현장, 어린이 놀이터 등도 보인다. 사진/로이터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