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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취업준비생들 당당히 원하는 길 도전하길"
한국인 첫 그린피스 소속 항해사 김연식씨
"마음 다하면 생각지도 못한 꿈 다가와"
2015-10-19 06:00:00 2015-10-19 06:00:00
“6개월 백수기간 중 우연히 본 선원모집공고가 제 삶을 바꿨습니다. ‘젊은 그대, 바다를 열어라’라는 문구가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뒤 2007년 전공을 살려 신문사에 들어갔을 때까지만 해도 김연식 항해사(32)의 삶은 또래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오랜 기간 꿈꿔왔던 언론사 생활은 막상 그의 적성과 맞지 않았고 고심 끝에 사직했다.
6개월 방황 끝에 그가 선택한 길은 선원이었다. 오랜 바다생활은 간단치 않다. 해양대 졸업생들도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많은 만류가 있었다. 그러나 그의 결심은 굳건했다. 결정과 함께 곧바로 한국해양수산연수원 교육과정을 거쳐 2010년 무급 실습항해사를 시작했다. 보통의 시각으로 보면 어쩌면 무모한 도전이었다.
희망봉, 마젤란해협 등 전 세계를 누비던 김 항해사는 또 도전에 나섰다. 2012년 ‘지구별 항해기’로 제48회 신동아 논픽션에 당선된 것이다. 2013년엔 단편소설 ‘흥남 27호’로 제7회 해양문학상을 받았다. 지난 6월에는 청년백수가 마도로스가 돼 전 세계를 유랑하는 얘기를 담은 책 ‘스물아홉 용기가 필요한 나이’를 출간하기도 했다.
김 항해사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높은 연봉과 승진가도가 보장되던 상선 항해사를 그만두고 그린피스의 환경감시선 항해사로 지원해 최근 합격했다. 항해사로 그린피스의 일원이 된 것은 한국인으로서는 그가 처음이다. 김 항해사를 만나 그의 도전기를 들어봤다. 
 
한국인으로서는 첫 그린피스 소속 항해사가 된 김연식씨가 오는 11월부터 승선하게 될 그린피스 '에스페란자'호 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박용준 기자
 
◇상선 항해사는 왜 그만뒀나. 
 
지난 5년간 부정기 벌크화물선을 타고 전 세계를 항해했다. 서른여섯 나라, 마흔여섯 항구에 기항했다. 젊었을 때 전 세계를 둘러보고 싶어 선택한 길이다. 소득도 적지 않았다. 재미있게 항해하면서 젊은 나이에 적지 않은 돈을 벌기까지했다. 덕분에 좋은 추억을 쌓고, 서울 변두리에 집도 얻었다. 지난 6월 항해기를 책으로 내고, 언론에 소개도 되고, 여기저기서 강연도 했다. 2010년 첫 승선한 이래 전에 없이 재미있는 시절을 보냈다.
사람은 ‘의식주’를 해결하면 ‘진선미’를 고민하는 법이다. 청년백수 시절에는 일자리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게 해결되고 배가 두둑해지니 새로운 고민이 찾아왔다. 문득 돈과 재미 너머에 좀 더 의미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더 재미있고 의미있는 선박에서 승선하고 싶었다. 여러 선박을 찾아봤다. 북극과 남극을 오가는 쇄빙연구선 아라온 호, 세계평화를 기원하며 항해하는 피스보트, 선교선 로고스호스 호, 불법조업에 강경 대응하는 ‘씨 셰퍼트’ 등 여러 조직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그린피스를 알게 되었다.
 
 
◇왜 그린피스인가.
 
독립성과 투명성, 그리고 합리성이다. 그린피스는 세계적으로 가장 폭 넓게 활동하는 국제 민간 환경보호단체다. 정부나 기업의 지원은 받지 않고, 오직 개인과 독립단체의 후원만 받는다. 그래서 거리에서 모금하는 그린피스활동가들이 많다.
아직 그린피스에서 일을 하지 않아 잘 모르지만, 그런 시작점이 끌린다. 나는 늘 풀뿌리에 가치를 둔다. 거대한 움직임을 만드는 우두머리도 중요하지만, 정말로 세상을 떠받치는 건 오늘 하루 묵묵히 성실하게 일하는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인내다. 배의 말단 선원의 작은 노고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항해를 떠받치는 것처럼 말이다. 선장의 1만원과 말단 선원의 1만원은 값이 다르다. 개별 시민의 후원은 작을지언정 더 값어치있다. 그런 작은 손길이 모여 만드는 게 민주주의의 세상이라고 배웠다. 힘들고 배고플테지만 그만큼 소중하다.
여유로운 근로조건도 한몫했다. 보통 상선 선원은 8~10개월 승선하고 3개월쯤 쉰다. 10개월간 바다에 있으면 사랑하는 애인도 떠나가기 일쑤다. 선원 본인도 정신적으로 힘들다. 그린피스는 3개월 승선 후 귀국해서 3개월간 유급휴가를 보장받는다. 배를 타면서도 가정생활을 할 수 있다.
좀 더 솔직하자면 국제적 명성도 그린피스를 선택하는데 한 몫했다. 환경보호는 그 가치를 널리 알리는 게 중요하다. 풀뿌리같은 개개인에게 말이다. 나 역시 그린피스에서 보고 듣고 겪은 것을 생생하게 전할 요량이다. 풀뿌리로 살면서 풀뿌리 친구들의 도움으로 풀뿌리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 그런 면에서 그린피스와 나의 인연은 특별하다. 
 
◇그린피스에서는 무슨 일을 하게 되나.
 
그린피스에서 환경감시선박이 세 척있다. 그 중 에스페란자(esperanza, 희망)호의 3등 항해사로 승선한다. 나는 해당 선박에서 선장까지 할 수 있는 국제면허가 있다. 이전 상선에서 일할 때는 2등항해사였고 1등항해사로 진급할 참이었다. 다 버리고 초심으로 돌아게 되었다. 차근차근 경험을 쌓는 계기가 될 것이다.
에스페란자 호는 2013년 북극해 원유 시추에 반대하는 평화시위를 주도한 선박이다. 이 과정에서 선원과 활동가들이 러시아 감옥에 2개월간 투옥되기까지 했지만, 그 결과 최근 석유기업 쉘이 북극 시추를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큰 성과를 거둔 에스페란자 호는 현재 멕시로 동쪽 해안 베라크루즈 라는 도시에 접안했다. 최근 부산에 입항한 레인보우 워리어(Rainbow Warrior) 3호처럼 바다에서 시위하고 시민들을 배로 초대해 그린피스의 활동을 알리고 있다. 당분간 대서양 일대 도시를 누빌 것으로 예상한다. 과거 상선에서는 여기저기 항구에서 화물을 싣는 게 전부였는데, 이제 세계 시민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설렌다. 
 
◇선택과 맞바꾼 것도 많겠다.
 
일단 소득이 반토막이다. 세무 당국에서 소득세도 떼지 않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나는 주머니가 가벼워지면 불안해하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집이 잘 사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간 모아놓은 것이 있어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지난 5년간 상선에서 쌓아온 경력도 버려야 했다. 상급 항해사 면허를 땄으니 곧 1등항해사로 진급할텐데 돌아선 것이다. 잠자코 있었더라면 일의 책임은 무거워지지만 일은 수월할 것이고, 또 연봉이 1억원에 근접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아쉬운 건 이전 직장에서 쌓아 온 인간관계다. 가까이 마음을 나누며 지내던 동료들이 많았는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다 버리고 말도 안통하는 사람들에게 달려가는 건지 가끔 생각할 때가 있다. 사람이라면 한번쯤 자기 결정을 재고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평범한 삶은 아닌 것 같다.
 
아, 중요한 걸 빠뜨렸다. 연애와 결혼.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거다. 그건 상선을 탈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배를 타는 이상 계속 포기해야 한다.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뜻이 맞는 여성을 만나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활짝 웃고 있는 친구들의 결혼식 단체사진이나 행복에 겨운 돌잔치 사진을 볼 때마다 가슴 한켠이 쓰린다.
평범과 특별. 그 사이에서 나는 늘 방황한다. 청개구리 심보다. 작게든 크게든 누구나 그렇다고 본다. 일상이 지루해 탈출했다가도 새로운 세상의 불안이 두려워 과거를 그리워한다. 심지어 누구는 군복무시절을 그리워하기까지 한다. 늘 불안에 시달리며 평범한 삶을 꿈꾸지만 덧없다. 일단 길위에 올랐으면 끝까지 가야지 다른 방법이 없다. 사람이 다 갖출 수는 없다고 본다. 이게 솔직한 마음이고 내 한계다. 지금은 운명의 상대를 기다리는 수밖에.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원래 답이 없는 질문 아닌가. 큰 철학같은 건 없다. 나는 그저 몸으로 현장을 누비며 살고 싶다.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자주 쓰지만, 나는 여전히 책상에 앉을 체질이 아니다. 작은 것이라도 실천하면서 살고 싶다. 세상 가장 낮은 바다를 직접 누비고 싶다. 말보다 글, 글보다 행동이다. 그래서 그린피스에 지원했다.
 
 
김연식씨가 상선 항해사로 근무하던 시절의 모습. 사진/김연식씨 제공
 
◇무엇이 당신을 움직이는가.
 
힘을 빼고 말하자면 ‘재미’와 ‘의미’다. 특별할 것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의식주’와 함께 ‘진선미’를 찾는 건 본능이다. 학창시절에 책에서 읽었던 애매한 말들, 예를 들면 ‘돈보다 소중한 것을 추구하라’, ‘늘 죽음 앞에 당당하게 살아라’. 뭐 이런 말들이 나도 모르게 가슴에 자리잡은 것 같다. 그래서 돈키호테처럼 이상을 추구하는 것 같다.
철저히 나 중심으로 행동하는 ‘자아 사랑’이 큰 힘이다. 부모님의 기대, 친구들의 시선, 사회적 편견보다 ‘나의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에 선원이 되었고, 지금은 소득도 형편없는 민간단체의 항해사가 되었다. 나중에 나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때는 조금 더 고민하게 될 거라 생각한다.
 
◇집필활동도 꾸준하다.
 
출판사가 좋아하는 책, 언론사가 좋아하는 책, 독자가 좋아하는 책, 작가가 좋아하는 책이 다 다른 것 같다. 내 책은 출판사와 언론사가 좋아했을 뿐 독자들에게는 사랑받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괜찮다. 사랑하고 말고는 독자들 마음이니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지 않은가. 제목을 좀 잘 지을 걸 그랬다.
다만 나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가끔 무전 신호도 잡히지 않는 마젤란 해협의 설산 계곡을 지날 때, 야생 정글뿐인 파푸아 뉴기니의 섬 사이를 지날 때, 어두운 인도양 어디 밤바다를 지날 때, 지도에 이름도 안 나오는 작은 항구의 어둑한 뒷골목을 누빌 때마다 나는 복잡한 생각을 한다. 거기는 아무도 제 발로 찾아오지 않을 세상의 음지다. 내가 신의 형벌로 아무도 다니지 않는 세상의 뒷골목으로만 다니게 된 것 같다. 실제로 없지만, 범죄자에게 사람들과 섞여서는 안되니 도시의 하수구로만 다니게하는 벌을 내리는 격이랄까. 사람들은 수평선 너머 어두운 바다에서 숨쉬는 자가 있다는 것,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는 오지에도 각자의 삶이 있다는 것, 그곳을 누비는 청년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없다. TV에 담기도 힘든 이야기다. 내가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성급하지 않게 천천히 알리고 싶다. 
 
◇그린피스가 최종 목표인가.
 
오늘을 뜨겁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입학하는 아이에게 어느 중학교에 가고 싶냐 물을 수 없다. 일단 그린피스에서 열정적으로 일하고 싶다. 처음 배에 올랐을 때는 그린피스에서 일하는 건 꿈도 못꾸었다. 고된 실습을 견디고, 오랜 항해를 즐기다보니 더 멀리 볼 수 있을 정도로 키가 훌쩍 커버렸다. 꿈꾸기보다 현재에 충실해야 할 때다. 그린피스의 항해는 상선과 다르다. 뜻이 있고 목적이 있다. 아직 짐작도 못하지만, 마음을 다해 일하며 넓은 세상을 만나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꿈을 또 품게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사람이 평생 배만 탈 수는 없다. 지금을 즐기다보면 언젠가 더 의미있는 걸 발견하는 날이 올 것이다. 다만 그 때 다시 용기를 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청년실업이 심각하다.
 
많은 사람들이 아파하는 상처라 언급하기 조심스럽다. 나 역시 청년백수 시절을 힘들게 보냈다. 그러다 배를 탔다. 나는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책상머리에서 일하는 걸 배워놓고 현장 기술직을 택한 것이다. 댓가를 톡톡히 치뤘다. 부산에서 6개월간 훈련받고,1년간 무급 실습생으로 승선했다. 그야말로 최하급직, 밑바닥이었다. 배 아래 탱크 구석구석을 기어다니고, 맨손으로 오물을 청소해야 했다. 고된 이등병 생활에 외로움까지 겹쳐 나를 괴롭혔다. 내 삶이 차가운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전 세계를 두루 다니고 싶다는 바람이 있기에 견딜 수 있었다.
내가 그렇게 고생했으니 너희들도 그렇게 하면 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나는 각자 방향을 잘 잡았으면 좋겠다. 남들의 편견에, 부모님의 기대에 가능성을 한정하지 말아야 한다. 인생의 항로를 벗어나도 거기에 다른 길이 있다. 쫄지 말자.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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