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핵·미사일’ 대신 ‘인민’ 강조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창건기념일 계기로 동북아 정세 변화 가능성 커져
2015-10-11 10:03:13 2015-10-11 10:03:13
광복 70주년은 맥없이 흘러갔지만, 중국이 주도한 2차 대전 종전 70년 외교는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냈다. 중국의 전승절 열병식을 발판으로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신형대국관계’로 가는 물꼬를 텄다. 이어 북한의 노동당 창건 70돌 행사를 계기로 북·중 정상회담도 전망할 수 있게 되었고, 남북관계에도 새로운 변수가 생겼다.
 
북한은 9월 중순부터 인공위성 발사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국제사회는 북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북한의 위성 발사와 핵문제는 주요 의제가 되었다. 사실 북한의 발언을 정확히 살펴보면, 10월에 발사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 북한은 9월 14일 국가우주개발국장의 발언을 통해 인공위성 발사를 시사했을 뿐이다.
 
따지고 보면 국가우주개발국장의 이 발언은 지난 5월 김정은 위원장의 말을 되풀이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5월 3일 국가우주개발국 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방문해 “주체조선의 위성은 앞으로도 당중앙이 결심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연이어 우주를 향하여 날아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 중앙이 결심하는 시간과 장소’이다. 이것이 당 창건 기념일인 10월 10일을 의미하는지는 당중앙만 안다. 당중앙이란 조선노동당의 지도부이고, 구체적으로 김정일 위원장이다. 해석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전형적인 북한식 모호한 화법이다.
 
북한은 이러한 모호한 화법으로 10일 노동당 열병식에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한국의 종합편성채널들이 노동당 창건 70주년 행사를 생방송으로 내보내게 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거두었다. 평양에서 하는 노동당 행사에 등장한 북한의 국기와 국가, 김정은의 연설이 한국의 안방에 실시간으로 전달됐다. 목함지뢰 3발과 엄지손가락만한 기관총탄 1발, 대포 3발이라는 ‘제한된 도발’로 8월 남북관계를 긴장시켰던 것과 수법이 흡사했다.
 
종편의 생중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노동당 창건 70돌 행사와 열병식에서는 ‘눈에 띄는 북한의 도발’은 없었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인 KN-08 개량형과 한국의 중부지방까지 사정권에 두는 300mm 방사포 등은 위협적인 무기였다. 하지만 KN-08 미사일은 아직 실험을 하지 않은 것이고, 300mm 방사포는 위협적이기는 하지만 이미 알려진 것이다. 김정은이 연설에서 미국과 어떤 형태의 전쟁도 상대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북한이 그동안 사용해온 공갈발언의 재판이다.
 
오히려 김정은은 연설을 통해 ‘인민’을 유난히 강조하는 모습을 부각시켰다. 김정은의 인민중시 발언은 특히 핵과 미사일을 언급하지 않은 것과 대비된다. 북한이 신주단지 모시듯 했던 ‘핵·경제 병진노선’도 말하지 않았다. 북한은 인공위성 발사를 만지작거리며 주위의 시선을 끌다가 정작 당 창건 행사 때는 온건 모드로 급선회한 것이다. 그 배경에는 중국이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9월말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중국이 희망하는 신형대국관계로 진입시키기 위한 발판을 만들었다. 시 주석은 그동안 미국에 ‘태평양은 넓으니 나눠쓰자’고 했으나 미국은 이를 의심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중국에 ‘미국이 만들어놓은 규칙을 지켜야 중국의 미래가 있다’고 압박했다. 시진핑은 정상회담을 통해 그 규칙을 지키겠다고 오바마에게 약속한 것이다.
 
북한이 위성 발사와 핵실험을 하지 않아 시진핑은 앞으로 미중관계에서 쓸 수 있는 카드를 하나 손에 쥐게 되었다. 이 카드를 위해 시진핑은 당 창건 70돌을 맞는 김정은에게 큰 선물을 주었다. 중국 공산당 서열 5위인 류윈산 상무위원을 북한으로 보내 김정은 3대 세습을 인정하는 친서를 전달했다. 김정은은 ‘북중관계는 혈맹’이라고 화답하고, 류윈산과 함께 당 창건 행사를 관람했다. 북중관계가 급변하는 조짐이다.
 
물론 겨울철에도 인공위성을 쏠 수 있다는 북한 관리들의 말처럼 위성 카드는 다시 등장할 수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 정세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남북관계도 이와 연결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열병식 참가 외교 이후 상황은 이렇게 예상 밖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제 과제는 남북관계를 예측가능하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김창수 코리아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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