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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부품 들여와 조립해도 국산화?…못믿을 '신제품인증(NEP)'
'변속형 유체커플링' 놓고 수입사-인증사 검찰 소송전 2라운드
해당제품 경쟁사 대비 2.5배 비싸게 남부발전 공급한 것도 의혹 대상
2015-10-07 07:00:00 2015-10-07 07:00:00
산업통상자원부 한국기술표준원으로부터 '신제품인증(NEP)'을 받은 국산 제품이 중국산 제품을 수입해 조립한 것에 불과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법정 공방으로까지 비화됐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지난 2004년 7월 N사는 자체 기술로 ‘변속형 유체커플링’의 국산화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 양산화 과정을 거쳐 2011년 국가기관인 한국기술표준원으로부터 NEP 인증을 받는다.
 
환영받을 만한 소식은 이내 공방거리로 전락했다. 1994년 독일 VOITH(보이스)와 중국 광동쫑신파워 간 기술 제휴를 통해 생산된 제품을 N사가 수입해 마치 국산 제품인 것처럼 둔갑시켰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다.
 
논란 속에 독일 보이스의 국내판매 대행을 맡고 있는 VS코리아는 이 회사를 검찰에 고발함과 동시에 판매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다.
 
지난 7월31일 검찰의 '혐의없음' 결정으로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 했지만, VS코리아가 불복해 항고하면서 분쟁은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변속형 유체커플링’ 뭔가
 
변속형 유체커플링은 ▲발전소 보일러 급수 펌프 ▲지역난방 설비 순환 펌프 ▲정수장 송수 펌프 ▲시멘트 공장 송풍기 ▲제철소 송풍기 및 펌프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특히 에너저 절감 효과가 입증되면서 산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변속형 유체커플링의 기본 원리는 유체의 유동을 이용해 기동 측 동력을 피구동 측에 전달하는 것으로, 스쿠프 튜브에 의해 오일량을 조절함으로써 피동기의 회전수를 20~100%까지 무단 변속이 가능하다. A 선풍기의 날개가 돌면 마주보고 있는 B 선풍기 날개가 기체 흐름에 의해 자동으로 돌게 되는 원리다.
 
독일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서 개발된 변속형 유체커플링은 설치 및 보수가 용이하고, 수명이 길며, 전력 소모 또한 획기적으로 줄여준다. 기존 직결식 커플링을 변속형 유체커플링으로 교체할 경우, 1기당 연간 8000만원 안팎의 비용절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변속형 유체커플링 시장 규모는 연간 20억~30억원 수준으로 크지 않지만, 현대중공업이나 효성중공업 등 대기업이 진출하지 않고 있어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하다는 평가다.
 
또 시장 점유율은 독일 보이스가 90% 안팎으로, 사실상의 독점 구조다. 때문에 국산화에만 성공한다면 시장 점유율을 단기간에 끌어올릴 수 있다.
 
◇자체개발? 중국 제품과 사실상 동일해
 
쟁점은 크게 3가지로 정리된다. 제품의 제원이 일치하는 이유, NEP 인증 연장 취소 원인, 광동쫑신으로부터 166대의 커플링 수입 여부 등이다.
 
 
취재팀이 입수한 자료를 보면, N사가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변속형 유체커플링은 중국 광동쫑신파워의 제품과 중량, 사이즈, 설계도면 등이 모두 동일한 것으로 확인된다.
 
양사의 카탈로그 상 제원도 완전히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너비와 높이는 1mm도 차이 나지 않았고, 제품의 중량 역시 격차가 없었다. 제원표 수치의 가로·세로 위치만 바꿔 나열했을 뿐, 사실상의 같은 제품으로 봐도 무방했다.
 
이에 대해 N사 측은 검찰에 제출한 답변서를 통해 “국내에서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독일 보이스사의 제품 형태와 유사한 광동쫑신 제품의 규격을 참조해 인용한 결과”라며 참조 및 인용만 했을 뿐임을 강조했다.
 
또 “광동쫑신으로부터 완제품 유체커플링을 구입한 사실이 없다"며 "반제품을 포함한 59개 부품을 수입해 연구·개발용으로 사용, 국내 설치에 있어 부품으로 사용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VS코리아 측은 참조 및 인용 등 연구개발 목적으로 해당 제품을 들여왔다는 이 회사 주장에 대해 “제품 개발을 위한 연구 목적으로 수입할 경우 모델당 1~2대면 된다"며 "100여대 이상의 많은 수량을 수입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3년 뒤에는 NEP 재인증 실패…왜?
 
N사는 2011년 12월 변속형 유체커플링에 대한 NEP를 취득했지만, 2014년 11월 요건을 충족시키 못해 인증 갱신에 실패한다. 이로 인해 산업설비용 ‘변속 유체커플링(3600rpm이하)’에 대한 NEP 인증은 취소됐다.
 
재인증 당시 동종업계 자격으로 심사에 참여했던 김성환 VS코리아 대표는 “제품을 구성하는 핵심 부품 일체가 수입품으로 구성돼 있고, 껍데기인 Housing만 제작해 마치 신제품인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어 “변속 유체커플링은 핵심 테스트인 ‘속도구간별 효율측정’을 해야 하는데, 설비도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N사 측은 “인증 연장을 받지 못한 건 인증 연장 신청을 하면서 속도 구간별 효율시험을 미실시한 점과 최초 인증 시점인 2011년에 비해 성능 향상이 없어 연장요건에 부합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기술의 국산화 여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전문가 견해는 어떨까. 대한기계학회 회장을 역임한 허남건 서강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는 “변속형 유체커플링은 회전체의 분석 및 개발이 제어 메커니즘의 핵심”이라면서 “회전체에 대한 개발 없이 Housing만 제작해 조립한 것은 진정한 유체커플링이라고 볼 수 없다”고 VS코리아 주장을 뒷받침했다.
 
◇VS코리아 "수의계약 통해 남부발전에 납품" 주장
 
일반적으로 수입에 의존해오던 기술의 국산화에 성공할 경우 해외 경쟁제품 대비 70%가량 가격 절감 효과가 발생한다.
 
하지만 N사가 한국남부발전에 수의계약을 통해 공급한 해당 제품의 가격은 오히려 경쟁제품 대비 2.5~3배가량 높았다. 이는 NEP 인증을 통해 가능했다.
 
 
나라장터에 나와있는 N사와 한국남부발전 간 계약내역을 보면, 지난 2007년 1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총 13대의 유체커플링이 수의계약을 통해 납품됐다.
 
2012년 6월 한국남부발전 영월 1호기 BFP에 수의계약된 모델명 NVCH500(1900kw 2p) 1대의 가격은 5억4500만원이다. 이에 반해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독일 보이스의 동일 제품은 13만5275유로(한화 1억5000만원)로, 3분의 1 가격에 불과하다. 다른 제품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 7년간 N사가 한국남부발전에 공급한 제품은 총 13대, 65억6100만원에 달한다. 보이스의 동일 제품으로 납품이 이뤄졌을 경우의 21억원보다 44억원 이상 비싸다.
 
VS코리아의 대리인인 신동윤 법무법인 넥서스 변호인은 “인건비를 포함한 공사비용을 합쳐 비교해도 N사가 월등히 가격이 높다"면서 “발전 공기업도 관련돼 있다는 점에서 유착관계 등도 의심해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N사 측은 "제보자가 제시한 금액 대비표를 봐서는 사양으로는 어떤 제품인지 알 수 없고, 원화 환산 금액도 환율 적용을 어떻게 해서 그런 금액이 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특히, 남부발전과의 계약 내용은 단순한 변속 유체커플링의 설치가 아니라, 기존 현장설비의 철거 및 신규 기계설비, 전기설비, 제어설비의 설치와 현장 토목건축공사까지 포함하는 내용으로 VS코리아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VS코리아가 허위사실을 가지고 끊임없이 의혹을 제기하고, 문제화시키는 이유는 결국 변속 유체커플링 시장에서 본사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과 법적 분쟁 중이라는 사실을 부각시켜 본인이 영업적인 반사이익을 얻기 위함"이라고 주장했다.
 
김영택 기자 ykim98@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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