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남·북한 동시 변화·발전을 목표로 하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내세웠지만, 구체적인 정책의 실행과 행동은 그와 전혀 상관없이 추진되어 왔다.”(이승환 운영위원장)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을 개최한 후 발표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선언) 8주년을 기념하는 국제학술토론회가 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렸다. 지난 8월 남·북 고위급회담을 통해 8·25합의가 나온 후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10·4선언의 일부라도 이행되지 않겠냐는 기대가 일각에서 있었지만, 이날 토론회 발표자들의 견해는 한결같이 부정적이었다.
남북관계 관련 민간단체인 ‘통일맞이’의 이승환 운영위원장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실제 정책의 차이가 크다고 강조하며 “박근혜 정부는 ‘남북관계에서 힘의 논리를 관철시켰더니 북이 굴복하더라’는 식의 주장을 하면서 과거 화해·협력 정책의 성과와 흔적마저 지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위원장은 “이런 정책이 추진된 결과, 남·북이 서로의 필요에 의해 일시적으로 대화국면을 만든다 해도 적대와 불신이 해소되지 않기 때문에 ‘대화→갈등→대립’이 불완전하고 단속적으로 나타나는 양상을 보여 왔다”며 8·25합의 이후의 상황도 비슷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그는 “이런 상태가 지속될 경우 오히려 냉전질서가 더 강화되고, 그런 남북관계로 인한 부담을 다음 정권에 넘겨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의 두 가지 문제를 지적했다. 첫째는 남북관계를 국가적 과제로 여기지 않고 정파적 시각으로만 본다는 점이다. 김연철 교수가 예로 든 것은 철도 연결 문제였다. “남·북의 철도를 시베리아 및 중국 대륙 횡단철도와 연결하려면 2007년 시험운행까지 마친 경의선을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얼마 전 박 대통령은 경원선 남측구간 기공식에 참석했다. 경의선 연결은 과거 정부의 성과이니 자신들은 새로운 성과를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라면 매우 심각한 문제다.”
두 번째 문제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김 교수는 “노무현 정부 때는 남북관계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면 부처간 협력과 조정 과정이 원활하게 작동하면서 정책에 대한 공감대를 넓혔고, 그것이 정책 집행의 동력이 됐다”면서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서는 관계부처 회의도 잘 안 하고,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도 별로 없다. 장관들도 대통령의 얼굴을 TV에서 본다는 얘기까지 있다. 정책조율 과정이 없으면 집행에 있어서도 힘을 받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박 대통령이 흡수통일론과 북한 붕괴론을 국내정치적으로 활용하는 점을 비판하면서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태도와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7·4공동성명을 좋아하지 않았다. 동서 데탕트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다 보니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한 후에는 남북조절위원회를 제대로 발전시키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와 지금이 전혀 다르지 않다. 통일 담론과 안보 담론을 가져가면서 지지율을 유지하려는 국내정치적 목적만 있다. 흡수통일론과 북한붕괴론도 국내외적으로 매우 유용한 수단으로 사용한다. 북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식의 시소게임을 하면서 나머지 2년 반을 가지 않을까 한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 이후 7년 반 넘게 10·4선언이 무시되고 남북관계가 악화됐기 때문에 앞으로 10·4선언을 제대로 이행하겠다는 정부가 등장하더라도 10·4선언 당시의 시절로 곧바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지적도 여럿 나왔다. 김연철 교수는 대학에서 만나는 학생들을 예로 들며 악화된 대북 여론을 설명했다. “최근 군에서 제대한 복학생들이 ‘북괴’라는 말을 쓴다. 1972년 7·4공동성명 때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앞으로 쓰지 말자’고 했던 그 용어를 21세기 젊은이들이 쓰고 있다. 10·4선언의 철학은 계승하되 설득 방법에서는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10·4선언과 같은 정책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설명하지 못하면 정책에 대한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김만복 전 국정원장이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직통전화(핫라인)를 활용해 수시로 직접 통화했다’고 말한 데 대한 해명도 있었다. 이날 조간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같이 발언한 김만복 전 원장은 토론회에서 “당시 국정원 안에 있던 전화로 북측의 메시지가 오면 김정일 위원장의 뜻으로 간주하고 곧바로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형식의 의사소통 구조가 있었다”며 “(인터뷰할 때) 핫라인이 국정원에 있었다는 말을 안 했더니 (신문) 제목에 ‘직접’이란 단어가 들어가면서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 직접 통화는 단 한차례도 없었다”고 말했다. 백종천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도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관계와 관련된 일을 할 때는 언제나 내가 배석했는데, 김 위원장과 통화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확인했다.
한편 국정원은 김만복 전 원장이 이날 토론회에서 ‘국정원에 핫라인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밝힌 것은 국정원직원법을 위반한 소지가 있다고 보고 형사고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직원법 17조 1항은 '직원은 재직 중은 물론 퇴직한 후에도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10·4선언 8주년 토론회에서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왼쪽 세번째)의 사회로 패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왼쪽부터 김연철 인제대 교수, 김만복 전 국정원장, 이 전 장관, 백종천 전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김준형 한동대 교수, 이승환 통일맞이 운영위원장.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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