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 "'사도'를 가족사로 본 진짜 이유는"
입력 : 2015-09-30 06:00:00 수정 : 2015-09-30 06:00:00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많이 힘들었죠. 은퇴도 하고 올 정도였으니까요. 그게 다 약인 것 같아요. 골짜기가 깊어야 봉우리가 높다는 말이 있듯이 실패를 통해 얻는 교훈도 있으니가요. 실패는 가슴 아프지만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도 돼요."
 
이준익 감독은 영화계에서 인생의 거친 파도를 겪은 사람으로 통한다. '왕의 남자'로 1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최고의 위치에 섰다가 '구르믈 벗어난 달처럼', '평양성' 등은 손익분기점도 넘기지 못한 채 주저앉았다. 심지어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던 그다. 아픔이 컸던 이유일까, 이준익 감독은 아동성폭행 사건을 다룬 영화 '소원'에서 다시 깊이 있는 감성을 선보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사도'다. '사도'는 아버지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정치사가 아닌 아버지와 아들의 집안일로 바라본 영화다. 세대 갈등이 심해지는 요즘, 이 감독은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이야기를 통해 역설적으로 화합을 권했다. 이준익 감독이 '사도'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속내를 들어봤다.
 
이준익 영화감독(사진제공=쇼박스)
정치사가 아닌 가족사로 본 사도세자와 영조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극적이다. 어느 나라 역사에서도 보기 힘든 사실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 역사의 큰 소용돌이를 많은 사람들은 정치사로 봤다. 노론과 소론의 대립으로만 봤다. 하지만 이준익 감독은 '집안일'로 해석했다. 영화 속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라고 하면서 던지는 영조(송강호 분)의 호통인 "이것은 나랏일이 아니라 집안일이야"는 마치 감독이 관객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와도 같았다. 아버지와 아들 간의 대립을 보여줌으로써 현 시대의 문제점으로 대두된 세대 간의 갈등을 좀 화합으로 가보자고 권유하는 듯했다.
 
이준익 감독은 "100% 그럴 의도로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이 영화를 보고 아버지나 아들만 공감할 것 같진 않다. '유사 감정'이 도처에 숨어 있다. 20대의 누군가는 자신을 영조로 자신의 후배를 사도세자로 이입하기도 한다. 이번 명절만큼은 이 영화를 통해 윗세대와 아랫세대 간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됐으면 하는 게 내 진짜 바람"이라고 말했다.
 
영화는 사도세자를 두 가지 입장에서 바라본다. 영조의 아들인 사도와 정조의 아버지로서의 사도다. 아들 사도세자는 아버지에게 온갖 핍박을 받지만, 그 핍박을 자신의 아들에게까지 잇지 않는다. 아들에게만큼은 온화했던 사도세자다. 아들 사도세자와 아버지 사도세자 사이에는 '소통'이라는 차이가 있다.
 
그는 "영조는 죽기 살기로 왕이 됐고, 자신에게 가혹하게 엄격했다. 영조 같은 사람들은 두 갈래로 갈린다. 다른 사람에게 똑같은 가혹을 강요하는 사람과 관대한 사람"이라며 "군대에서도 그렇다. 후임에게 욕설과 구타를 하는 선임, 굉장히 관대하고 인간적인 선임으로 나뉜다. 사도세자는 후자다. 그 모습이 아들과의 대화에서 나온다. 그 장면이 허공에 활을 쏘는 신이다. 그날 아버지와 아들이 소통을 하는 거다. 소통을 하면서 아들 정조는 '아비의 마음'을 읽게 되는 거다"고 말했다.
 
결국 이준익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바는 소통이었다. 소통이 없었던 영조와 사도세자, 소통했던 사도세자와 정조의 결과물은 극심한 차이가 있었다. "이번 추석에는 어른과 자식들 간의 대화가 좀 풍성해졌으면 좋겠다."
 
논란의 연속 '사도'의 마지막 신
 
영화는 부모를 대변하는 영조와 자식을 대변하는 사도세자를 그린다. "서로를 이해해보자"는 감독의 의도가 녹아있다. 그렇다면 이준익 감독은 누구의 시선에서 영화를 만들었을지 궁금했다.그는 "나는 결말을 맺어야 하니까 정조의 입장에서 영화를 만들었다"며 "그게 라스트 신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사도'의 마지막 장면은 호불호가 갈린다. 정조(소지섭 분)가 엄마인 혜경궁홍씨(문근영 분) 앞에서 부채춤을 하며 4배를 하는 모습이 약 10여분으로 담겨 있다. 관객 일부는 '사족'이라고도 하고 지루하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이미 이 감독은 이러한 반응을 알고 있는 듯 했다. 이 감독은 "부채춤은 그냥 춤이 아니라 바디랭귀지다. 활 시위를 당기는 것부터 시작해서, 사도세자가 정조를 낳고 그린 용으로 만든 부채, 4배를 받으면 안 되는 혜경궁홍씨에게 4배를 하는 장면 등 암호가 체계적으로 그려져 있다"며 "그런데 '사족'이라고 하니, 조금은 씁쓸하다"고 웃어보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 영화를 다시 만든다 해도 그 장면을 꼭 넣을 것이라는 속내를 드러냈다. 그 이유에 대해 이 감독은 "영조가 죽는 장면으로 영화를 끝냈다면 흥행은 더 잘됐을지도 모른다"면서 "하지만 세대 갈등을 부추기는 요즘 갈등을 봉합하지 않고 끝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갈등을 씻어내지 않고는 내 나이 57살이 우스워진다고 생각했다. 감독으로서 바람이 있다면 그 장면의 의미도 좀 생각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송강호와 유아인, 그리고 문근영
 
영화에는 세 명의 스타가 출연한다. '설국열차', '관상', '변호인'으로 3연타석 홈런을 치고 있는 송강호, '밀회'와 '베테랑'에서 최고의 연기력을 뽐낸 20대 배우 유아인과 국민 여동생 문근영이다. 세 명의 배우 모두 자신의 위치에서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다.
 
먼저 궁금했던 건 문근영이었다. 극중 혜경궁홍씨는 문근영이라는 이름값에 비해 매력도가 떨어지고, 비중도 적은 역할이었다. 그럼에도 문근영은 사도세자의 시선에서 혜경궁홍씨를 완벽히 연기했다. 자신을 돋보이는 데 몰두하지 않는, 훌륭한 배우의 자세가 드러났다. 현재 문근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했다.
 
이 감독은 "문근영은 나보다 어른"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나이가 많다고 어른은 아닌 거 같다. 근영이는 엄청난 깊이가 잇는 어른이다. 말하는 거 보면 느껴지지 않나. 김연아보다도 더한 온 국민의 추앙을 받았던 사람이다. 사소한 욕망은 뛰어넘었을 거다. 깊이가 다른 여배우"라고 치켜세웠다.
 
영화의 중심에 있었던 유아인에 대해서는 '핫'한 배우라고 했다. "유아인은 부럽다"고 했다. "유아인처럼 살았어야 했는데 그렇게 살지 못했다. 아인이는 자기 안에 있는 본능을 그냥 드러내는 애다. 자칫 사람들은 그걸 건방지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 유아인은 핫 한 것"이라고 말한 이 감독은 "사람들은 대충 휙 하고 넘기는 걸 '쿨'하다고 하고 멋있다고도 한다. 죽으면 다 쿨해지는데 뭣 하러 살아있을 때 쿨한 건지 모르겠다. 요즘 보기 드물게 뜨거운 남자다. 정말 사랑스럽다. 많은 20대 배우들이 뜨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경 영화 '사도'에 송강호가 출연한다는 캐스팅 소식이 들렸다. 당시 이 감독은 "서민적인 이미지의 송강호가 연기하는 왕을 보고 싶어서 캐스팅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약 1년 5개월이 지난 뒤 이 감독은 송강호의 연기에 대해 "도저히 평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송강호는 자기만 연기를 잘하는 게 아니라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잘하게 한다. 액션이 정확하다는 거다. 다른 배우들은 송강호의 연기에 리액션만 하면 된다. 액션을 던졌을 때 맞으면 맞은 척, 피하면 피한 척만 하면 된다. 10살짜리 정조(이효제 분)가 송강호에게 밀리지 않는다. 내가 디렉션 100번 한다고 애가 알아듣겠냐. 다 송강호의 힘인 거다. 감히 내가 송강호의 연기를 평가할 수는 없다고 말한 맥락이 이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소원'·'사도'·'동주', 실화가 의미하는 바
 
아동성폭행 사건을 다룬 '소원'을 연출한 이 감독은 역사적 사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올해 12월 또 다른 역사적 인물인 윤동주의 일대기를 그릴 계획이다. '왕의 남자'부터 '님은 먼 곳에', '평양성' 등 역사의 판타지를 그려왔던 이 감독은 철저히 사실을 재해석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있는지 물어봤다.
 
"어! 진짜 그러네"라고 자신도 몰랐다는 듯이 운을 뗐다. 다소 고민을 한 뒤 다시 말을 꺼냈다. "의도는 없었지만 의미는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 감독은 "실화를 하면서 느꼈다. 실화가 주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이 내게 더 와닿는다"며 "어줍지 않게 만들어낸 이야기보다 실화가 주는 비극의 크기와 감정의 소용돌이, 사건의 아이러니가 꾸민 것보다도 더 강한 자극을 준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실화에 끌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명작은 시대상을 담는다고 했다. '사도'는 세대 간의 갈등을 반영했다. '동주' 역시 시대상을 반영한 명작이 될 수 있을까. 이 감독의 요즘 기세를 보면 만만치 않은 작품이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 함상범

  • 뉴스카페
  •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