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대법관, 변호사 그리고 특정 고검장
2015-09-23 06:00:00 2015-09-23 06:00:00
“대법관 퇴임해도 갈 데가 없어요.” 얼마 전 대법원 사정을 잘 아는 한 판사로부터 들은 말이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변호사단체가 대법관의 전관예우 척결을 위해 연일 맹공을 퍼붓고 있는데, 뒤집어보면 그만큼 전관예우가 아직까지 통한다는 얘기다. 누가 뭐라든 눈 한번 질끈 감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갈 자리가 없다니 어불성설 아닌가.
 
그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아무리 그래도 대법관 정도면 높은 사회적 책임과 도덕성을 갖고 있어요. 개업은 우선 고려 대상이 아니에요. 요즘은 학교조차 가기 어려워요. 텃세가 워낙 심해 초빙 제의가 뜸해졌답니다." 그러고 보니 전국 25개 로스쿨 중 퇴임한 대법관이 교수로 간 곳은 몇 곳 안 된다. 최근 퇴임한 민일영 전 대법관도 2년 뒤 폐지될 사법연수원 석좌교수로 갔다.
 
며칠 전에는 가까이 지내는 변호사로부터 답답한 얘기를 전해 들었다. 그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국민행복기금 사건을 맡아 일을 처리하고 있다. 캠코는 지난 5월부터 행복기금 채무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내면서 변호사들과 계약을 맺고 일을 맡기고 있다. 보수는 건당 13만원인데 이달 초 보수를 5만원으로 낮추겠다고 통보했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실제 받는 보수는 4만원 남짓이다. 서류발급 등 진행비용까지 변호사가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유비는 1만원이니 결국 변호사 보수는 3만원이다. 계약 관계이기 때문에 보수가 마음에 안 들면 계약을 끝내야 한다. 이런 사정을 알고 서울지방변호사회가 경유비를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형평성 문제 등으로 쉽지 않은 눈치다.
 
그러던 차에 고검장 출신 변호사가 선임계 없이 사건을 맡은 것이 적발됐다. 선임계 없는 사건 수임은 착수금과 진행비를 받지만 소속 변호사회 등에 신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뒤에서 활동하면서 훈수나 전화 변론으로 거액의 보수를 받는다. 전관횡포 중 ‘끝판왕’이다. 그가 맡은 사건 7건 중에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사위의 상습마약 사건도 포함돼 있다. 그는 퇴임 뒤 고향에서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퇴임한 대법관들의 예를 보면 과거보다 전관예우의 폐해가 줄어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한창 일할 나이에 조기 은퇴한 대법관을 위해 일자리를 줘야 한다는 말은 아직 하지 못하겠다. 법을 무시하고 알아서 제 살길 잘 찾는 전관이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 법관과 검사를 따로 보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변호사들은 1만원짜리 경유비를 아쉬워 하며 한숨만 쉬고 있다.
 
 
 
최기철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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