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탄주의 시기상조" 대법관 7대 6으로 유책주의 유지(종합)
전원합의체 "입법미비로 여성 배우자 피해 위험 커"
"간통죄 위헌, 파탄주의로 간다면 중혼 인정하는 셈"
2015-09-15 14:44:00 2015-09-15 15:07:26
대법원이 바람을 피우는 등 혼인관계 파탄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기존의 '유책주의' 입장을 유지했다. 개인의 행복추구보다는 가정의 보호가 우선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15일 A(69)씨가 아내 B(67)씨를 상대로 낸 이혼 청구소송의 상고심에서 유책주의 취지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번 사건을 두고 재판관 13명은 유책주의 유지와 파탄주의 지지가 각각 7대 6으로 갈렸다.
 
재판부는 "우리나라에서는 재판상 이혼제도 뿐 아니라 외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협의이혼 제도를 유지하고 있고 유책배우자라 할지라도 성실한 협의로 재판 외로도 이혼을 할 수 있다"며 "실제로 지난해 이혼 중 77.7% 정도가 협의 이혼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어서 유책배우자의 행복추구권을 위해 재판상 이혼에 있어서까지 파탄주의를 채택해야 할 필연적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고 판시했다.
 
또 "파탄주의를 취하는 여러 나라에서는 상대방이나 그 자녀가 가혹한 상황에 빠지면 이혼을 허가하지 않는 이른바 가혹조항을 두고 있고 또 이혼 상대방에 대한 부양책임을 부담시키는 등 부양금 제도 등을 두고 있어 파탄주의 채택으로 인한 상대방의 일방적인 희생 방지를 위한 입법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으나 우리나라는 이 같은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원이 판례로 기준을 제시하거나 위자료나 재산분할 실무에서 상대방보다 두텁게 배려할 수 있지만 사법적 기능만으로 보호하기는 너무나 불충분한 한계가 있다"며 "각종 보완제도가 미비한 상황에서 섣불리 파탄주의로 전환하면 상대방인 여성 배우자의 이익이 일방적으로 희생돼 사회적 약자가 보호받지 못하게 될 위험이 크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헌법재판소 위헌결정으로 간통죄가 폐지되고 그 이후 중혼제를 형사처벌할 수 있는 길이 없어진 상태에서 아무 대책 없이 파탄주의로 간다면 법률이 금지하는 중혼을 결과적으로 인정하는 모양이 될 수 있고 극단적으로 이중관계 유지하다가 이를 이유로 이혼 청구하는 축출이혼이 발생할 위험도 적지 않다"며 "가족과 혼인생활에 대한 우리 사회 가치관이 크게 변했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증가했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가 취업이나 임금, 자녀양육 등에서 만족할 만큼 양성평등이 이뤄졌다고도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민일영, 김용덕, 고영한, 김창석, 김신, 김소영 대법관은 "부부공동생활의 실체가 소멸했다면 이는 실질적 이혼상태라 할 것이고 그에 맞게 법률관계를 확인해야한다"며 "혼인생활을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파탄났다면 귀책사유가 혼인 해소를 결정짓는 판단기준이 되지 못하므로 회복 불가능한 상태 파탄에 이르게 된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라는 이유만으로 재판상 이혼 청구를 수용해서 안 된다는 종전 판례는 변경돼야 한다"고 반대 의견을 냈다.
 
A씨와 B씨는 1976년 3월 결혼해 2남 1녀를 뒀으나 A씨의 잦은 음주와 늦은 귀가, 외박 등으로 갈등을 빚고 있었다. 그러던 중 A씨는 1996년 C씨를 만나 가까워지면서 딸을 낳았다.
 
이후 A씨는 B씨가 자신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면서 갈등이 더욱 깊어지자 1999년 12월 명예퇴직을 하고 2000년 1월 집을 나와 C씨와 같이 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A씨는 B씨와의 사이에서 얻은 자녀들의 학비를 부담하고 생활비로 매달 100만원을 보냈다.
 
신장관련 지병으로 투병생활을 하던 A씨는 2011년 신장이식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B씨와 자녀들에게 했다가 거절당하자 이혼하기로 마음먹었다. 이후 A씨는 2012년 1월부터 생활비지급을 끊은 뒤 B씨에게 이혼을 요구했으나 거부하자 이혼청구소송을 냈다.
 
1, 2심은 A씨와 B씨 사이의 혼인관계가 파탄난 점은 인정했으나 파탄의 주된 책임이 A씨에게 있는 점, B씨가 협의이혼에 응하지 않은 것이 보복적인 의도라고 볼 수 없는 점 등을 들어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한편 대법원은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 전문선고 동영상을  판결이 선고된 뒤 PDF와 유튜브 등으로 제공했다.
 
양승태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결혼생활 파탄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 허용 여부 관련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파탄주의에 대한 입법적 준비가 미비하다며 종전의 유책주의를 유지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사진/뉴시스
 
최기철 신지하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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