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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곡학아세
2015-09-09 06:00:00 2015-09-09 09:33:50
최강욱 변호사
《사기(史記)》유림전(儒林傳)에 전하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기원전 157년 황제가 된 한나라 경제(景帝)와 뒤를 이은 무제(武帝)는 선정을 펼치려 천하의 인재를 모았다. 그 중엔 아흔의 고령에도 대쪽 같은 성품으로 유명한 원고생(轅固生)도 있었다. 권신들의 극력 반대에도 불구하고 황제의 부름을 받은 원고생은 명성대로 거리낌 없이 직언을 쏟아냈다.
 
어느 날, 원고생은 같은 산동 출신으로 처세에 밝은 젊은 학자 공손홍(公孫弘)을 불러 세웠다.
 
“요즘 들어 학문이 정도(正道)를 잃고 속설(俗說)이 판을 치고 있네. 이대로 두면 유서 깊은 학문의 전통이 올바르게 후대에 전해지겠는가. 다행히 자네는 젊고 학문을 사랑하는 선비라 들었으니 부디 바른 학문을 열심히 닦아 세상에 널리 전하시게. 결코 ‘옳다고 믿는 학설을 굽혀[曲學(곡학)] 세상 속물들에게 아첨[阿世(아세)]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네.”
 
공손홍은 자신의 잘못을 뼈저리게 깨닫고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개졌다. 당장 무릎을 꿇고 원고생의 제자가 되어 훗날 대학자이자 명재상이 된다.
 
공안검사의 길을 택한 이가 있었다. 희귀한 두드러기로 군대는 못 갔지만 고시공부엔 지장이 없어, 체제를 수호하는 검사가 되었다고 자부했다. 검사직을 떠난 후엔 변호사로 사면절차를 자문하고 돈을 받는 일 등을 하다 장관이 되었다. 그간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무려 636쪽에 달하는 「국가보안법」책도 썼다.
 
마침 장관 재임 시에 전공을 살릴 기회가 왔다. 그 유명한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수사 결과 검찰은 특별법인 국가보안법 12조(무고·날조) 대신 형법을 택해 기소했다. 조작 증거를 제 이름으로 제출한 검사는 절대 몰랐다고도 했다. 대검 윤갑근 강력부장은 “적어도 형체는 있는데 비슷한 걸 만들어 내면 위조이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면 날조라는 게 사전적 개념이므로 날조 혐의보다는 위조 혐의가 맞다"고 했다. 그래서 국가보안법보다 형이 매우 가벼운 형법상의 모해증거위조죄와 사문서위조죄만 된다는 거였다.
 
그러나 이는 당대의 법무부장관이 써둔 책 508쪽, 517쪽과는 완전히 틀린 것이었다. 장관은 “국가보안법 상의 날조라는 것은 증거를 허위로 조작해 내는 것이기 때문에 형법 상의 위조행위에 당연히 포함된다”며, “국가보안법상 날조죄가 형법에 우선하여 적용된다”는 명쾌한 해석을 덧붙였다. 마침 그 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을 지휘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그런데 그의 수하에서 일을 배운 후배들이 그의 학설을 철저히 무시하였음에도, 장관은 굳이 자신의 학설을 세상에 알려 속물들을 깨우치려 하지 않았다. 그 대범함 덕분인지 그는 기어이 총리에 올랐다.
 
헌법을 연구한다는 교수가 있었다. 유림의 기개를 간직한 영남에서 자라며 선비는 사회적 소임을 다해야 한다고 배웠다. 사법시험에 합격하고도 연구자의 길을 걸으며 세상에 나갈 기회를 엿본다 했다. 서울대 총장직에 도전했다 탈락 했다더니 결국 장관이 되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에게도 마침 전공분야에서 문제가 터졌다. 여야 합의로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에 대통령이 반발하자 사람들은 그가 쓴 「헌법학원론」에서 답을 찾아냈다.
 
그는 “법률에 대한 국회입법의 독점을 보다 실질화하기 위해서는 위임입법의 경우에 하위법령에 대한 국회의 통제권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특히 “대통령이 위헌 혹은 위법인 대통령령을 제정하고 시행하는 경우에 국회는 대통령에 대해 탄핵소추를 할 수도 있다”고 적었었다. 마침 개정안은 대통령이 의원시절 제출한 법안과 거의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저서에 밝힌 학설을 묻자 입을 다물었다. 결국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고 여당 원내대표까지 찍어냈다.
 
훗날 그는 집권당 행사에서 "총선 필승"을 건배사로 외쳤다. 선거 주무장관으로 달리 할 말이 없어 "브로슈어에 쓴 표현을 그대로 한 것뿐"이라고 했다. 이번에도 '주어'가 없다는 해석이 따랐다. 그가 탄핵될 거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게 책과 학설은, 자리나 권력 앞에서 잡설이 되었다.
 
지금 우리에겐 ‘미개한’ 2천년 전의 공손홍과는 달리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개져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는 사람도 없다. 명나라 홍자성은 《채근담(菜根譚)》 첫머리에 “도덕을 지키며 사는 자는 한 때가 적막할 뿐이고, 권세에 아부하는 자는 만고에 처량하리라”고 썼다. 왜 옛날 현인들의 글엔 이토록 미개한 잡설만 넘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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