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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츠Go,go)그리운 제주 풍경, 서귀포 작가의 산책길을 걷다
2015-08-27 06:00:00 2015-08-27 10:02:09
길도, 삶도 고삐를 놓친 말처럼 갈팡질팡하였다. 뭍에서 멀어진 섬에는 그림을 그리는 이들이 살다가 머물다가 떠나가곤 했다. 등대 끝에서 낚시를 드리워 걷어 올리는 건 그리움이었다. 도시에서 휴양을 온 성급한 낚시꾼이 그물을 바다에 던지면 풍랑이 일기 시작했건만. 그물 속에 빛이 쇠한 별들이 몇 개 걸려들었다. 푸르륵, 푸르륵. 뭍에서 떠내려 온 것들은 섬사람에게는 위로가 되지 못하였다. 그 섬에서는 그림 그리는 이들이 아내와 자식들을 그리며 살다가 병을 얻기도 하고 죽기도 하였다.
 
섬에서 유영하듯 살다간 이들의 발자국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다. 뭍에서 온 이들이 하얀 모래 위에 사랑을 새기기도 하지만 자고 나면 파도는 그 이름자와 주소마저 지우고 마는 것이었다. 섬의 시간은 그렇게 지워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귀포 폭풍의 화가라 불리던 변시지, 소암 현중화, 두모악의 김영갑도 그렇게 섬을 떠났다. 그리고 아주 오래 전, 제주 서귀포에 화가 이중섭(李仲燮, 1916~1956년) 역시 자구리 바다에서 보이는 언덕바지에서 살다가 떠나갔다.
 
서귀포 자구리 해변(사진=이강)
 
이중섭이 그린 지상의 낙원, 서귀포
 
한국전쟁 중이었다. 1951년 1월에서 12월까지 겨우 11개월 동안을 살았으니, 잠시 머물렀다 그는 떠났다. 평안남도 평원이 고향인 이중섭은 일본 유학 시절 만난 일본인 아내와 결혼을 하여 자녀 셋을 두고 있었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시대였다. 원산에서 살던 이중섭 가족은 1·4후퇴와 함께 부산까지 내려왔고, 다시 제주 서귀포로 향했다. 지금의 서귀포 서귀동이다. 작은 언덕받이 초가의 살림집은 겨우 1.4평 남짓의 작은 방 한 칸이었다. 너나없이 궁핍하던 시절이니 흉이 될 터도 아니었다. 중섭은 아이들과 함께 바로 언덕 너머의 자구리 해변에서 게를 잡고, 바다의 물성귀들로 끼니를 이어 갔다. 그리고 몇 점의 그림을 그렸다. 이곳에서 그가 그린 그림은 <서귀포의 환상>, 두 점의 <섶섬이 보이는 풍경>, <바닷가와 아이들> 등이다. 그뿐이었다. 이중섭과 서귀포와의 인연은 그것이 다였다고 생각했다. 시절이 어수선하니, 일본인인 아내와 함께 한국에서 살아갈 요량이 없었다. 때문에 가족들은 현해탄을 건넜고, 중섭은 다시 돌아와 한국에서 서성이는 삶을 살았다. 그리고 가족과 헤어진 4년 만인 1956년 9월 그는 날개를 잃은 새처럼 꿈을 그리다 41세의 나이에 서울의 거리에 쓰러져 생을 마감한다. 푸르륵, 푸르륵.
 
이중섭 탄생 100년, 서귀포에서 그를 마주하는 것은 어쩌면 요행인지도 모른다. 골목에 이르자 이중섭이 그렸던 남녘의 따스한 섬 풍경이 다가온다. 그가 잠시 머물던 섬의 시공은 생경하면서도 새로운 것이었는데, 후에 그린 그림에서 그는 잠시 머물던 서귀포를 유토피아로 그리고 있다. 돌담 사이의 골목을 오른다. 이중섭 가족이 살았던 초가가 자리하고, 뒷편에 그의 이름자를 건 이중섭미술관이 조촐하게 마련돼 있다. 초가의 방 한 칸에 그의 초상이 놓여있고, 싯구를 적어둔 벽으로 햇살이 비추인다. 한해살이의 머무름으로 백년을 사는 것이 예술가의 삶이라면, 그의 삶은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이중섭 거리와 이중섭 공원(사진=이강)
 
늦은 휴가객들의 걸음을 따라 미술관으로 오른다. 현재 미술관에서는 '그리운 제주도 풍경'이란 기획전시가 열리고 있다. 그의 작품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당시에 일본인 아내 이남덕(일본명, 山本方子. 야마모트 마사코)과 주고받던 편지가 전시되어 있다. 편지의 사랑은 구구절절하고, 서귀포 시절에 그려진 그의 작품은 아련하면서도 아름답다. 그 중 피난 시절을 그린 <길 떠나는 가족>은 서귀포로 이주하는 모습인데, 소풍놀이라도 가듯 흥겹게 묘사되고 있다. 이중섭 생애에서 서귀포 시절은 가장 찬란한 시간으로, 유토피아적 공간으로 자리한다.
 
자구리 해안가에서 뛰어노는 게와 아이들의 모습을 그는 마치 꿈을 꾸듯 그려내고 있다. 이중섭의 유일한 유품인 팔레트를 둘러보고 미술관 옥상에 올랐다. 하늘의 짙은 구름이 내려앉은 자구리 앞바다는 우울하다. 멀리 섶섬과 문섬, 새섬 사이로 풍랑이 인다. 그와 제주와의 인연은 무엇이었을까? 이곳에 살며 사랑하고 예술혼을 불태우던 많은 예술가들의 모습이 스친다.
 
폭풍의 바다, 서귀포의 작가들
 
뭍에서 제주를 찾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일이 '제주랑 인연일까, 아닐까'를 자문자답하는 것이다. '일년 중 햇볕 쨍한 날이 삼분지 일이나 될라나?' 제주의 변화무쌍한 일기 탓에 행여 머무는 동안 흐릿한 날이거나, 폭풍이 이는 것을 걱정하는 심사다. 미술관을 내려와 자구리해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앞바다의 섬 사이로 파도가 거세진다. 이 바닷가는 인간 이중섭과 그의 가족들이 시절의 아픔을 잊은 채 행복한 사랑을 나누던 공간이다. 너른 광장으로 내려서니 이중섭 작가의 '게와 아이들-그리다', '실크로드-바람길' 등의 설치미술품 등이 놓여 있다. 해안가로 내려서는 나무데크를 따라 내려서니 왼편으로 서귀포항과 앞바다의 섶섬이 바로 눈앞에 다가선다. 기념사진을 촬영을 하는 연인들의 모습 너머로, 작은 배들이 조금씩 높아져가는 파도에 일렁인다.
 
서귀포 '작가의 산책로'(사진=이강)
 
자구리 해변은 이중섭 미술관에서 시작되는 '작가의 산책길'을 대표하는 중심공간이다. 작가의 산책길은 이곳 서귀포에 살며 제주의 풍경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글씨를 쓰던 예술가들의 삶이 배인 길이다. 갖가지 상징물과 마을벽화가 아름답게 그려진 산책로를 걷는다. 제주의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며 자유로이 예술혼을 불태웠던 이들의 흔적을 따라 마을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미술관을 찾아나선다. 서흥동에는 전국 최초의 시립미술관인 기당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폭풍의 화가라 불렸던 변시지 화백의 회화 작품과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 65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해녀 벽화가 그려진 골목길을 따라 걸으니 '소암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서예와 서화가로 잘 알려진 소암 현중화의 작품이 힘차고 웅장한 필치로 공간을 채우고 있다. 마을 골목길과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작가의 산책길은 자구리 해안의 유토피아로, 이중섭거리, 아랑조을거리까지 연결된다. 골목골목으로 예술가들의 혼이 서려 있다. 4·3역사 아픔 간직한 정방폭포, 진시황의 불노초와 관련된 서복전시관, 최근에 조성된 소남머리와 서귀포칠십리길까지 모두 한 둘레로 이어진다. 거리를 걸으며 사색을 즐겼을 예술가들의 걸음을 따라 걷고, 서귀포예술시장에서 기념품도 구경하고, 서귀포관광극장에서 공연도 즐길 수 있다. 바다가 보이는 작고 아담한 카페에서 향이 깊은 커피 한잔을 즐겨도 좋다. 섬에서의 시간은 멈춘 듯이 흐른다. 이중섭이 머물렀던 자구리 앞바다에 바람이 일렁이면, 바람이 섬과 바다의 이야기를 들려줄지도 모른다.
 
섬에 살면, 바람이 제일 먼저 말을 건다. 사진을 찍다 떠나간 이도 그림을 그리다 돌아간 이도 바람이 들려준 말들을 듣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바다에서는 파도소리가 새들의 마지막 날갯짓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 고기잡은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간절한 기도처럼 들리기도 한다. 밤이 깊어지면 뭍에 이르지 못한 꿈들은 새하얀 날개를 접고 섬 주위를 맴돌다 떨어진다. 그 소리가 푸르륵 푸르륵, 파도 소리를 닮았다.
 
이강 여행작가, 뉴스토마토 여행문화전문위원  gh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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