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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로스쿨 단점, 사시로 보완하자는 게 잘못인가요?
나승철 변호사 "국민 여망 커…기득권 다툼이라면 반향 없었을 것"
"사법시험 존치되면 로스쿨이 2류로 전락? 1류 되도록 노력해야"
2015-08-24 06:00:00 2015-08-24 08:28:14
'사법시험(사시) 존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법학전문대학(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네 기수나 나온 상황이지만 '사시존치'는 입법적인 절차에 접어드는 등 구체적인 윤곽까지 잡혀가고 있다. 여당에 이어 야당에서까지 사시를 존치하자는 움직임에 합류하고 있다. 변호사업계 일각에서는 '이러다가 사시가 정말 존치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사시존치'는 대한변호사협회와 서울지방변호사회의 공식적인 주장이다. 몇 대를 지나왔지만 그 기조는 변하지 않고 있다.
 
그 시작은 나승철(38·사법연수원 35기·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변호사다. 그는 평범한 청년 변호사였던 2000년대 말부터 '사시존치'를 주장해왔다.
 
변호사 경력 5년차에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92대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으로 당선됐을 때도 그의 우선 목표는 '사시존치'였다. 지난해 회장에서 물러난 그는 더욱 공격적으로 '사시존치'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때문에 '사시존치=나승철 변호사'라는 등식은 재야법조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성립되어 왔다.
 
나 변호사는 '사시존치'를 사시 출신 변호사들의 기득권 챙기기가 아닌 국민적인 요구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국민들이 사시존치 움직임을 순전히 변호사들의 기득권 다툼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처럼 반향이 뜨겁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재야법조계의 선봉에서 '사시존치'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그를 만나 '사시존치'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들어봤다.
 
나승철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사진/조승희 기자
 
-'사시존치'를 사실상 처음으로 공론화하고 주도했다. 현재 분위기는 처음과 많이 다르다.
 
▲변호사 생활을 하는 동안 거의 이 일을 해온 것 같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 그런 반응이었는데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되지 않을까하는 희망이 보이기도 하고, 감회가 새롭다. 우리 사회에 공정한 기회가 살아 있어야 하고, 법조인으로서 그 대표적인 사법시험이 살아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차원에서 진행했다. 그 뜻이 옳고 정의로우니까 반향이 있는 것 아니겠나. 순전히 변호사들의 기득권 다툼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처럼 반향이 뜨겁지는 않았을 거다. 그래서 '내가 옳은 길을 갔구나'하는 보람이 있다. 할 수 있는 한 마지막까지 힘을 보태서 해볼 예정이다.
 
-사시를 존치하자면 로스쿨은 폐지하자는 것인가.
 
▲로스쿨 제도가 나름 장점도 있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그러나 문제점과 단점이 많다는 것이 사실 아닌가. 그러니까 사시와 같이 가자는 것이다. 로스쿨 제도의 문제점과 단점을 사시로 보완하자는 것이다.
 
-'사시존치' 주장에 대해 로스쿨 쪽 반발이 크다.
 
▲로스쿨 제도에 단점이 있으니 사법시험을 통해 보완하자는 것인데 왜 잘못됐다는 것인가. 사시가 존치되면 국민 중에 대체 누가 피해를 보는지 (그 분들에게)묻고 싶다. 사시가 남아 있으면 로스쿨이 이류가 된다는 것인데, 자신들이 노력해서 일류가 돼야지 일류를 없애서 일류하겠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반대로 사시가 존치되면 법조인이 되고 싶은 데 돈이 없는 사람들은 이익을 보게 된다. 그럼 존치돼야 할 지 폐지돼야 할지는 명확해진 것 아닌가. 기득권의 악의적 주장이라고 하는데, 신림동에서 고시 공부하는 사람들이 기득권인가.
 
-로스쿨 도입과 사시 폐지는 사회적 합의라는 반론도 있다.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고 해도 8~9년 전의 일이다. 지금 국민75%는 사법시험 존치를 희망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사회적 합의는 사시 존치 아닌가. 사회적 합의를 한 번 했다고 영원히 고치지 못하는 것인가. 사회적 합의로 이뤄진 법률도 다른 기본권을 침해할 때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으로 돌릴 수 있다. 사회적 합의라는 이름으로 그 결론을 모든 국민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사시가 존치된다고 해서 로스쿨이 안고 있는 문제가 해결될까.
 
▲법조계에 저소득층 진입이 가능해지는 등 상당 부분은 해결된다. 그리고 로스쿨이 안고 있는 문제는 사실 로스쿨 스스로 개혁하고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7년째 운영하는 동안 로스쿨이 불투명한 입학절차를 어떻게 고치겠다는 대안을 스스로 발표한 적이 있나. 그 어떤 반성도 없고 자기 개혁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사법시험이 존치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상황은 로스쿨이 자초한 것이다. 로스쿨 변호사시험 성적공개를 금지한 변호사시험법 조항이 위헌이라는 결정이 지난 6월에 있었을 때, 조용호 헌법재판관은 "변호사시험의 높은 합격률과 성적 비공개는 로스쿨을 기득권의 안정적 세습 수단으로 만든다는 비판도 있다"는 보충의견을 냈다. 로스쿨 제도는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이 들어가기 쉬운 구조이고, 들어가기만 하면 75%는 법조인이 되는 것을 보장해준다. 하지만 (사시존치를 반대하는 분들은)그것이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고칠 의사도 없는 것 같다.
 
-최근 국회의원의 로스쿨생 자녀 취업 청탁 파문이 유독 커지고 있다. 권력층의 자녀 취업청탁은 예전부터 있던 것 아닌가.
 
▲법조계는 철저하게,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성적을 중요시 해왔다. 그래서 법조인만큼은 우리사회가 적어도 '정당한 절차를 거쳐서 양성한다, 실력으로 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로스쿨 체제로 바뀌면서 지금은 그런 믿음이 완전히 깨졌다. 국회의원 등 특권층의 영향력이 법조계에도 작용하는 시대가 됐다. 제 연수원 동기 중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 따님이 있었다. 예를 들어 그 분이 사법시험에 합격한 것이 천 전 장관이 입김을 넣어서 합격했다는 말이 가능이나 한 얘긴가. 판사까지 됐지만 아무도 그런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박수를 쳤다. 사법시험 체제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법조계의 신분 세습 문제는 결국 로스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더 큰 문제는 입학이다. 취업도 이런 문제가 나오는데 입학은 어떠했겠나. 관련 기사 댓글 중에 '취업할 때 전화했던 분이 입학할 때는 전화 안 했겠느냐'는 댓글도 있더라. 국민들이 부글부글 하다가 이제 빙산의 일각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기자실에서 열린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 모임' 기자회견에서 권민식씨가 대표로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맨 왼쪽이 나승철 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사진 / 뉴시스
 
-변호사 직역 문제가 다시 가열되고 있다. 어떻게 보고 있나.
 
▲변호사는 '공공성'과 '상인(商人)성'이 모두 내재된 직업이다. 독일에서는 변호사에 대해 확고하게 공공성을 강조하고 그 대신 변호사들을 경쟁에서 보호해준다. 반면 미국에서는 상인성이 강하게 인정되고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로펌을 만들어냈다. 이 두 가지 성질의 혼재가 불가피하지만 우리나라는 그 괴리가 너무 크다. 변호사들은 스스로를 상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최근 형사성공보수 무효 판결에서 알 수 있듯 대법원은 변호사를 선비로 생각한다. 정부도 그렇다. 하지만 변호사도 먹고사는 직업이라 당연히 이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공익이라고 희생만 강요한다면 누가 공익에 헌신하겠나.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시절에 추진했던 것 중에 하나가 ‘프로야구 에이전트제’다. 일년 내내 운동만 하던 선수들이 구단에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기록을 제시하기 쉽지 않다. 대다수가 연봉, 처우를 협상하는 과정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에이전트제로 변호사 활용도도 높아지고 선수들도 혜택을 보게 됐다. 변호사 수가 많아졌으면 이처럼 법률서비스가 없던 영역에 법률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 상황은 ‘지난달 비가 그렇게 많이 왔는데 왜 가뭄이야’하는 상황이다. 변호사를 많이 뽑았으면 변호사의 영리추구성을 이용해 활용 방안을 생각해야지, 본성에 반하는 극단적인 공익 추구를 강조해서는 모순이 계속 생겨나게 된다.
 
-근본적인 입장 차이가 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공익, 공공성에 대한 이해 자체가 낮은 것 같다. 돈을 받고, 안 받고의 문제가 공익을 따지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제가 이건희 회장에게 무료로 법률 상담을 해줬다면 그게 공익 활동인가. 법률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 분야에 정부가 판을 만들어주고, 변호사를 활용해서 모두에게 좋은 방향으로 가는 것도 공공성 창출이다. 변호사를 많이 뽑았으면 변호사의 영리추구성을 이용해 활용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본성에 반하는 극단적인 공익 추구를 강조해서는 모순이 계속 생겨나게 된다.
 
-'사시존치' 문제가 마무리 되면 어떤 일에 주력하고 싶은가.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경제학 공부를 해볼까한다. 법학은 사회문제의 원인을 밝히지는 않는다. 경제학이 비교적 사회문제의 원인과 본질을 분석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3~4년 전에 경제학 책을 보다가 ‘정보 비대칭’이 법률시장에도 통한다는 걸 깨달했다. 법률시장에 왜 브로커가 판을 치나. 사실 중개(brokerage) 자체는 범죄가 아닌데, 법조브로커는 허위·과장 광고로 의뢰인들을 속이기 때문에 문제다. 경제학 적인 해법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공인된 기관을 양성해서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다. 10년 정도 법조인을 해보니까 정말 좋은 변호사가 되려면 있는 법을 해석하는 것뿐만 아니라 ‘있어야 할 법’에 대한 고민도 있어야 되는 것 같다. 사시 존치 운동도 일종의 있어야 할 법에 대한 고민이다. 그래서 꼭 법학 공부뿐만 아니라 폭넓게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승희 기자 beyond@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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