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은 한반도의 분단을 극복하거나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에 죽비를 내리치는 여성들, 특히 여성 노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해로 기록될 것 같다. ‘여성’이자 ‘노인’이라면 한국 사회에서 취약계층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여성들, 어머니들, 할머니들이 그래왔듯이 결코 약한 존재가 아님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이들의 발자취가 뚜렷하다.
우선 세계적인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있었다. 1934년생, 한국 나이로 82세인 그가 지난 5월 한반도의 허리를 끊어 놓은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는 장면은 장엄하기까지 했다. 평화의 상징인 흰색 옷을 입은 스타이넘은 비무장지대 걷기행진의 맨 앞줄에 섰다. 남쪽에 도착해 “남북한의 여성들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동력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로부터 2개월여가 흐른 지난 5일에는 이희호 여사가 남에서 북으로 올라갔다. 육로가 아니라 하늘길을 통해 군사분계선을 '초월'했다. 스타이넘보다 열두살이나 위인 이 여사를 설명할 때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이란 수식어가 늘 붙지만, 한국 여성운동·사회운동 대모의 방북이라는 의미도 분명히 있다. 스타이넘 말대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동력”이 될 수 있는 여성의 큰 발걸음이다.
역사의 질곡을 누구보다 처절하게 겪어온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할머니들은 최근 미국 워싱턴DC, 일본 도쿄 등 세계 곳곳을 다니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시인한 1993년 고노담화를 무효화하려는 등 식민지배의 엄연한 역사를 왜곡하는 아베 일본 총리에 맞서는 행동을 벌이고 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 대법관이 3일 방한해 성소수자 인권과 사법부 독립을 강조하는 활동을 벌이는 것도 퇴보하는 한국 민주주의에 큰 울림을 준다. 한국 나이로 83세인 그는 동성결혼 합법화나 ‘낙태권’ 옹호 등의 판결로 미 연방대법원에서 대표적인 진보파 대법관으로 꼽힌다.
이러한 여성들의 활동이 더 도드라져 보이는 이유는 남북의 화해·협력과 민주주의로 나아가던 우리 역사가 크게 뒷걸음질 치는 시기이기 때문이리라. 그 퇴행의 한가운데에 있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 여성 노인들을 만나보기를 권한다. 그게 부담스럽다면 여성독립운동가 266명을 재조명하는 전시회가 열리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찾거나, 영화 <암살>을 보고 여성독립운동가로 나오는 주인공 '안옥윤'의 삶을 생각해보길 바란다.
황준호 통일외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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