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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는 '대기업부'…박 대통령 동반성장 의지 충분치 않아"
(피플)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세종시 수정안 통과됐어도 대권 도전 생각 없었다"
2015-07-21 07:00:00 2015-07-22 15:31:36
스코필드(Frank W. Schofield)를 가슴에 묻은 사람. 조순의 영원한 제자. 이 두 사람을 빼고는 정운찬을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3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에서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은 상당 부분을 두 사람과의 관계 설명에 할애했다.
 
특히 스코필드 박사는 ‘정운찬’이라는 한 인간의 내면을 규정한 전부였다. 그의 이름 뒤에 따라붙는 ‘동반성장’도 스코필드 박사의 영향이다. 그가 앞으로 걸어갈 길에서도 스코필드 박사는 한줄기 빛으로 거친 항해를 인도하는 등대 역할을 할 것이다. 어쩌면 정운찬, 그가 동반성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이유를 우리는 스코필드 박사에게서 찾아야 할 지 모른다.
 
독점에서 공유로, 독주에서 동반으로. ‘같이 가자’는 약자의 외침은 진행형이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사진=뉴스토마토
 
-동반성장이 경제민주화의 단초가 됐다. 동반성장을 시대 흐름으로 짚었던 이유는.
 
▲정부에 들어간 이유 가운데 하나가 양극화 완화였다. 원래 관직을 맡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왔다. 이명박 (당시)대통령이 이 자리 저 자리를 제안했지만, 한 번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총리직 제안이 5번째였다. 경제가 침체된 상황에서 양극화를 그대로 둘 수 없었다. 총리가 되고 나서는 세종시 문제로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가 2010년 늦봄 한 중소기업인이 찾아와 대기업 횡포가 너무하다며 하소연했다. 바로 불공정 행위 조사를 지시했는데 납품단가 후려치기, 기술 탈취 등이 심각했다. 이대로 가면 양극화가 더 심해지고 사회가 불안하다 못해 파탄 날 수도 있다는 걱정이 앞섰다.
 
-동반성장위원장으로서 이명박 정부와의 인연이 이어졌다.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되면서 그해 8월 정부를 떠났다. 동반성장에 대한 문제의식은 그대로였다. 마침 동반성장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초대 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이 왔다. 동반성장에 관심을 가진 건 스코필드 박사 영향이 크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에도 가난한 사람에 대한 부자의 배려가 너무 없어서 안타깝다. 소득 격차를 줄이는 데 일생을 바쳐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고, 가르침이었다.
 
-초과이익 공유제 등을 공론화하며 논란이 일었다.
 
▲동반위를 맡으며 동반성장을 위한 3가지 과제를 제시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과 중소기업 위주의 조달청 발주, 그리고 초과이익 공유제였다. 초과이익 공유제를 꺼내니까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자본주의 용어인지, 공산주의 용어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여당 원내대표(홍준표)도 공격했다.  정치권과 재계, 양쪽로부터 공격을 당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두고는 당시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먼저 우리와 의논해야 한다'고 했다. 정치권, 재계, 정부 모두 동반성장을 도와주기는커녕 방해하는 분위기였다. 고립무원이었다.
약한 사람이 강해져야, 강한 사람도 더 강해진다. 역사를 보면 개인이 참을 수 없는 상황까지 도달하면 경제권력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다.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최근에도 워렌 버핏이 3조원을 사회에 기부했다. 빌 게이츠나 조지 소로스 등도 재산의 상당 부분을 사회에 환원한다. 그들이 우리보다 착해서 기부하는 게 아니다. 사회가 안정돼야 지금처럼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는 '이기적으로 이타 행위를 하지 않으면 혁명이 일어난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적 강자들은 아직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다. 정부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정치권력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동반성장에 대한 철학이 확실하고, 의지가 강하고, 냉철한 현실 인식을 해야 한다. 지금 산업통상자원부는 '대기업부'나 다름없다. 반면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중소기업청은 힘이 약하다. 산업통상자원부를 '산업통상청'으로 바꾸고, 중소기업청을 '중소기업부'로 키워야 한다. 대기업은 그냥 내버려 둬도 알아서 잘한다. 돈도 많고, 인력도 풍부하다.
 
-동반성장에 대한 MB의 의지는 어땠나.  
 
▲2010년 11월 동반위원장 제안을 받았을 때 정부 직속기구로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원하지 않았다. 그만두기 한 달 전 면담을 신청해서 청와대로 갔다. 동반위 재정과 인력에 대한 메모를 들고 가서 두 배로 늘려야 한다고 했다. 남의 돈을 쓰면서 어떻게 뜻대로 활동하나. 대통령은 아무 말씀도 없었다. 목소리를 높여도 답이 없어서 그만두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동반위를 나오고 나서 한동안 반성했다. 스코필드 박사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너무 쉽게 그만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해 6월 동반성장연구소를 만들고 대중소기업, 빈부, 도농, 지역, 남북한 간 동반성장을 다루고 있다. 
 
-위원장 사임을 후회했나.
 
▲후회는 안 했다. 거기서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이후 동반위가 제 역할을 못하는 모습을 보여 아쉬움이 들었다. 강자와 약자가 대립되면 강자가 먼저 양보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한국에선 기대하기 어렵다. 약자가 소리내야 하는데, 대중소 관계에서 중소기업은 그럴 수 없다. 일감을 못 받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연명하기에도 바쁘다. 이럴 땐 동반위가 목소리를 내줘야 한다. 싸움닭 노릇을 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안 보인다. 그러니까 바깥에서 물렁물렁하게 보는 거다. 
 
-강자의 양보, 강자의 배려를 기대하기엔 현실이 너무도 비정하다.
 
▲대기업 총수 문화가 바뀌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단기 실적만으로 인사하지 말고 다른 부분도 생각해야 한다. 지금 대기업 임원 상당수는 구매 담당 출신이다. 납품단가 후려치기를 통해 실적이 좋으니까 승진하는 거다.
그래서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는 거다. 철학, 의지,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대기업에 동반성장을 유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동반위나 지식인이 발언해서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 정신과 몸의 균형이 이뤄져야 하듯이 사회도 대중소기업 간 밸런스가 갖춰져야 발전한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사진=뉴스토마토
 
-박근혜 대통령도 동반성장 의지가 없어 보이나.
 
▲충분치 않아 보이는 건 분명하다.
 
-'유승민 사태'를 어떻게 바라봤나.
 
▲유승민 의원이 지난 4월8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발언한 내용 자체는 좋았다. 새누리당은 보수적이고, 효율과 성장만 따진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여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의원 개인의 의견이었으면 몰라도, 여당 원내대표로서는 적절하지 않은 발언이었다는 의견도 많다. 
 
-결국 원내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 운운한 것은 옳지 않다.
 
-'배신'이란 표현이 낯설지 않다. 이명박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맡으면서 야당에서 비슷한 반응이 나왔다. 
 
▲당시 박지원 의원이 "연애는 민주당과 하고, 결혼은 한나라당과 한다"고 말했다. 난 그들과 연애한 적이 없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의 총리가 아니라 대한민국 총리다. 청문회에서 당시 민주당이 있지도 않은 일을 꺼내며 비판하는 걸 보고 '저래서는 수권정당이 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 야권 주자로 인식됐을까.
 
▲지식인이 야당에 동정심을 갖고 있어야 균형이 맞는다. 참여정부 시절에도 비판을 많이 했다. 사회의 균형추 역할을 하고 싶은 욕심이었다.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 재벌 총수와의 만남도 꺼려해 왔다. 그들을 만나면 이해심이 많아져서 비판정신이 없어질 거란 경계 때문이었다.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으면 대권에 도전할 생각이었나.
 
▲아니다. 주위에서 '수정안 실패하면 끝이고, 통과하면 대선에서 승산이 있다'고 했지만, 그럴 생각은 없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다음 단계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당시 청와대에서는 '박근혜 대항마'로 내세울 거란 얘기가 돌았다. 
 
▲그런 말은 들었다.
 
 
-정계 복귀는 안 하나.
 
▲동반성장 하기에도 바쁘다.(웃음)
 
-전혀 계획이 없나.
 
▲항상 계획 없이 살았다. 정치를 하려면 프로그램 짜고, 사람 만나고, 밥도 사야 하는데 지금 혼자 움직인다. 프로그램도 없다.
 
-요즘 재벌 총수 사면 문제로 시끄럽다.
 
▲죄를 지으면 벌을 줘서 사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 다만 이번에 이름이 거론되는 이들은 형기를 상당 부분 채운 걸로 알고 있다. 사회 지도층, 재벌 사면에 대한 반발이 크지만, 그 정도면 죗값을 어느 정도 치렀다고 본다.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면.
 
▲지금 우리사회는 기로에 서 있다. 재벌 총수와 부자들이 인식의 대전환을 해야 한다. 그래야 동반성장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강자의 양보, 배려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흔들리지 않을 강한 의지가 있어야 하지만, 현실을 보면 기대하기 힘들다. 
 
대담 김기성 탐사부장
정리 김동훈·이순민 기자 donggoo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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