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가뭄 피해, '전력 부족' '식량생산 감소' 경제 전반 파장
장마에도 적은 강수량 예상돼…통일부 장관 "피해 지원 용의"
1990년대 아사 사태 재연? '북한 대비 달라져' 평가
입력 : 2015-06-28 15:16:32 수정 : 2015-06-28 15:16:32
북한 스스로가 ‘100년 만에 최악’이라고 말하는 가뭄의 피해가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식량생산이 타격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전기가 부족해 연쇄적인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정부는 이같은 피해를 지원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가뭄과 관련해 외신들이 최근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전력 부족 상황이다. 북한은 수력발전을 통해 전체 전력의 60% 이상을 생산한다. 그러나 강수량 부족으로 댐의 수위가 낮아져 수력발전소를 돌리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25일 전기 부족의 영향이 평양 주재 외국대사관에까지 미치고 있다고 전했다. 스위스개발협력처의 토마스 피슬러 평양사무소장은 이 방송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외국대사관 공관도 하루 3~4차례 정전되고 있다”며 “2013년 11월 평양에서 근무한 이래 지난 겨울처럼 전력 상황이 좋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가뭄으로 수력발전소가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자주 접했다”고 설명했다. 호베르투 콜린 평양 주재 브라질 대사도 같은 얘기를 했다.
 
<로이터>는 지난달 30일 유엔의 북한 상주조정관 굴람 이사크자이와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의 전력생산량이 50% 가량 줄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유엔은 지난 10일 가뭄 상황을 직접 보고 작성한 보고서 초안에서 “18개월간 계속된 건조한 날씨로 마실 물이 부족하고 수질도 나빠졌으며 수력발전을 통한 전기생산량도 감소했다”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는 평양 거주 외국인들이나 최근 북한을 다녀온 사람들이 ‘평양 중심부에 있는 고려호텔처럼 외국인들이 머무는 호텔에서도 정전이 발생하는 등 정전이 최근에 훨씬 더 자주 일어난다’고 보고한다고 21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미 에너지부 산하 에너지정보국은 2012년 북한의 전기생산량을 190억kw로 집계하고 있다. 남한 생산량 5000억kw의 4%에도 못 미친다. 북한의 발전소는 대부분 냉전시대 소련이 지어준 낡은 시설이어서 사정이 좋을 때에도 전력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 만성적인 전력 부족은 공장 등 각종 산업설비의 가동을 어렵게 해 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다. 또 주민들의 일상생활에도 피해를 준다. 주민들은 연료를 마련하기 위해 산에서 땔감을 거둬오는데, 그로 인해 삼림이 파괴되면서 홍수가 났을 때 산사태 피해 등이 더 커진다. 가뭄으로 인한 전력 부족은 이같은 악순환을 더 심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가뭄의 직접적인 피해는 물론 농작물 피해다. 관련국 정부나 국제기구의 평가가 조금씩 다르지만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16일 보도가 대체적인 현황을 보여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통신은 “8일 현재 전국적으로 44만1560정보의 모내기한 논에서 13만6200정보의 벼모들이 말라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약 30%가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이다. 피해가 극심한 지역은 곡창지대인 황해남북도와 평안남도, 함경남도이다. 특히 황해남도에서는 모내기 한 논의 80%, 황해북도에서는 58%가 마른 상태에 놓였다고 통신은 전했다. 북한 기상수문국은 “최근 나라의 전반적 지역에서 비가 내렸지만 황해남도와 황해북도에서는 거의 내리지 않았다”며 “저수지들의 최대 수위가 낮아지고 강과 하천이 거의 마른 상태여서 모내기한 벼모들뿐 아니라 강냉이를 비롯한 다른 알곡 작물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우려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장마가 와도 강수량은 적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북한 중앙기상예보소는 “올해 장마가 늦어질 것”이라며 “특히 장마철 기간 강수량이 적을 것으로 예견된다”고 밝혔다. 이번 장마는 강수량이 평년 수준에 못 미치는 ‘마른 장마’가 될 것이며 장마전선의 북상도 별로 없을 것이란 예상은 남한 기상청에서도 하고 있다.
 
식량생산량 감소는 불을 보듯 뻔하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최근 발표한 ‘세계정보·조기경보 국가보고서’에서 북한의 올해 쌀 수확 추정치를 지난해(260만t)보다 12% 감소한 230만t으로 명시했다. 보고서는 “북한의 전체 논 면적 54만4000ha(헥타르)의 4분의 1 수준인 13만6000ha가 가뭄으로 부정적 영향을 받고 있다”며 “올해 생산량이 최근 5년간 평균치보다 낮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고서는 감자, 밀, 보리 등 이모작 작물의 수확량의 경우 작년보다 18% 줄어든다는 애초의 예상치보다 더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이같은 상황이 1990년대 중후반 대량 아사 사태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23일 최근 북한을 방문했던 구호 전문가 등의 발언으로 볼 때 가뭄 피해가 심각하겠지만 20년 전 대기근 사태의 재연 가능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분석했다. 일가족이 농사를 지어 생산물을 나눠 갖도록 하는 ‘포전담당제’가 도입돼 식량을 더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고, 당국도 가뭄 피해를 적극 공개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아들이려 하는 등의 요인 때문이다.
 
가뭄 해소와 관련해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24일 “남·북한 모두 힘든 상황이지만 북한이 더 어렵다면 우리가 필요한 지원을 해 줄 용의는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엔 북한인권사무소가 서울에 문을 열면서 ‘남북관계를 단절하겠다’고 선언한 북한이 먼저 양수기 지원 등을 요청해 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이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북한의 곡창지대이면서 가뭄 피해가 심한 황해남도의 한 옥수수 밭에서 지난 24일 북한 주민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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