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오피니언)더이상 '개천에서 난 용'은 필요 없다
2015-06-23 06:00:00 2015-06-23 11:34:57
엄태섭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대의원)
2015년 6월 18일 13시30분 경, 국회의원회관 1층 출입구가 50-60대로 추정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어디서 오셨냐는 질문에 신림9동에서 원룸을 운영하는 주민이라고 했다. 그날은 국회의원 5명이 주최하고, 대한변호사협회, 서울지방변호사회, 그리고 대한법학교수회가 주관한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국회 대토론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토론회장 입구에는 "관악발전협의회"의 축하화환이 세워져 있었고, 토론회가 시작되기 약 20분 전이었음에도 토론회장은 이미 주민들로 만석이었다. 변협으로부터 참석공문을 받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시각 변호사 등록자 명단에는 필자를 포함하여 5명의 이름만 기재되어 있어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대한민국 법조인 양성 제도에 관한 찬반 토론의 장에 관악구발전협의회의 축하화환과 신림동 원룸 임대인들의 참석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만약 신림동 입구에 대단지 상가가 들어서서 원룸 공실률이 제로가 되어도 이들이 과연 토론회에 참석할 지 의문이다.)
 
2017년 폐지될 예정인 사법시험을 존치하자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들의 주장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희망의 사다리’, ‘개천에서 용 나기’라는 문구가 있다. 가난한 집 자식이 사시에 합격하여 법조인이 된 사례를 두고 마치 실개천의 미꾸라지가 희망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용으로 신분상승한 것에 비유하는 것인가? 혹시 변호사자격을 ‘자격증’이 아닌 ‘신분증’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되물어볼 필요가 있다.
 
개천에서건 바다에서건 도대체 ‘용(龍)’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출세와 신분 상승의 모델로 개천에서 용이 나야 된다는 이론적 면죄부를 앞세워 과거 용이 된 극소수의 승자들이 모든 걸 독식하게 하는 ‘승자독식주의’를 평등의 이름으로 포장한 것은 아닌가? 모두가 용이 될 수 없는 현실에서 용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희생을 감내하고, 용이 되지 못한 실패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좌절과 패배감을 맛봐야 하는가.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사법시험이었다.
 
지난 50년간 대한민국의 젊은 청년들 100명중 약 97명이 용을 꿈꾸다 좌절을 겪으며 신림동 고시촌을 발전시켜 왔다. 용이 된 3명 중 1명은 연수원 성적에 따라 판사 또는 검사가 되어 훗날 전관의 지위를 누리고 나머지 2명은 연수원 몇 회 동기생이라는 이유만으로 특권을 누리는 봉건질서를 유지해 온 것이다.
 
그럼 과연 개천에서 용이 몇이나 나왔을까? 그들은 개천 출신으로 상업고등학교를 나와 사시를 통해 용이 된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예로 들며 고졸학력자들에게도 기회가 열려있는 사시를 존치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2002년부터 지난 10년 간 고졸 출신으로 사시에 합격한 사람은 7900명 중 5명 뿐이다. 허울뿐인 주장이다. 연수원 40~43기와 로스쿨 1~3기의 출신 배경을 조사한 결과 고학력 고소득층 자제들의 비율은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는 통계(2015.6.22. 한겨레신문 A1면)도 있다.
 
또한 그들은 로스쿨의 비싼 학비가 개천 출신 미꾸라지들이 법조계에 진입하여 용이 될 기회를 차단한다고 한다. 사시 합격까지 소요되는 개인별 수험기간과 생활비 또는 로스쿨별 등록금의 차이가 천차만별이므로 단순한 비교는 어려울 듯하다. 다른 사례는 몰라도 필자의 경우, 사시를 준비하기 위해 기약없이 발생하는 월 80여만 원의 생활비와 50여만 원 이상의 수험비용은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웠다. 다행히 로스쿨 입학 후에는 로이어신용대출과 정부학자금대출제도를 통해 3년 동안 돈 걱정 없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었다. 지금은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생겼으므로 기쁜 마음으로 상환중이다.
 
다만, 사법연수원 수료 후 영리목적으로 개업한 변호사들이 연간 약 363억원의 국민혈세로 2년간 월급을 받으며 공부했다는 사실은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 돈이라면 법령으로 명시된 로스쿨 내 사회취약계층에 대한 지원 및 장학제도를 확충할 수 있을 듯 하다.
 
이밖에도 로스쿨 교육을 통한 법률서비스의 질 저하와 변호사의 자질 논란은 사시 합격자 300명 시절, 1000명으로 늘리라고 목소리 높였던 법대생들이 합격한 뒤 “1000명은 너무 많다”라고 반대하며 내세운 근거와 별 차이가 없다.
 
최근 복면을 쓴 가수가 무대에 서서 청중들에게 감동을 선사한 후 복면을 벗은 뒤 청중들이 놀라는 장면을 보곤 한다. 대중들의 편견을 복면하나로 통쾌하게 깨는 장면은 감동을 자아낸다. 법정에서 변호사들이 복면을 쓰고 변론을 하면 어떨까하는 황당한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어떤 제도 출신의 실력이 더 낫냐는 질문에 아무런 객관적 근거 없이 사시 출신의 실력이 더 낫다고 응답(2015. 5. 28. 동아일보 10면)한 여론이 과연 어떻게 바뀔까? 변호사의 실력은 오로지 시장에서 검증받아야 할 것이다.
 
이쯤 되면 사시 존치를 주장하는 자들의 속내가 궁금하기도 하다. 찬반을 다투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들의 진심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 다른 이유를 둘러대는 경우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변호사 공급이 늘어나서 시장상황이 너무 안 좋다”라던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특정 지역구 주민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서”라고 하면 조금은 이해가 될 법하다. 이와 같은 속내를 숨긴 채, ‘개천용’을 마치 전가의 보도인 양 휘둘러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사회에 법조특권을 상징하는 ‘용’이 되기 위해 오를 희망의 사다리 따위는 더 이상 필요 없다. 기존 법조인들의 선민의식이 투영된 ‘용(龍)’의 탄생을 막고자, 국민적 합의인 사법개혁을 통해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 시스템인 로스쿨 제도를 도입하였다. 커리큘럼, 시험성적 공개 여부 및 선발방식 문제 등으로 인해 로스쿨 도입초기에 발생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은 앞으로 차근히 풀어나가야 할 숙제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기도 전에 그 해결책으로 또다시 ‘개천용’을 위한 사법시험을 부활시키자고 하니 통탄할 노릇이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