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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메르스 사태,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2015-06-10 06:00:00 2015-06-11 12:27:03
최진녕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 파트너)
“무기, 병균, 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세계적 석학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명저 「총, 균, 쇠」 는 이런 질문으로 글을 풀어간다. 인류역사를 거슬러 올라 갈 것도 없이 중동호흡기증후군(이하 메르스)이 지금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다. 메르스란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 발견된 뒤 중동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 바이러스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사촌 격이다. 작년에 미국에서도 발병했다가 단시간에 극복했던 메르스가 왜 이토록 오늘날 한국에서 문제가 되고, 향후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사태의 재발을 방지해야 할 것인가.
 
먼저 그간 정부와 정치권의 대응책과 리더십 문제를 지적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한국에서 메르스 감염 첫 번째 확진자는 지난 5월 20일 발생했다. 그런데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메르스 관련 첫 보고를 한 것이 5월 26일이라고 답했다. 확진자 발생 후 6일이나 지나 대통령에게 그 사실이 보고된 것이다. 그 동안 정부는 과연 무엇을 했는가. 오늘까지도 3대 대책기구 가운데 주된 메르스 콘트롤 타워가 어디인지 조차 모를 정도라니 정부의 리더십이 살아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정치권도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당시 여당은 국회 공무원연금개혁 관련 사안에 매몰돼 민생 현안에 대해 돌아볼 생각조차 못했다. 야당 또한 4.29.재보선 결과에 따른 내홍에 빠져 메르스에 대한 경고조차 내지 못했고, 확진환자가 40명이 넘어가던 6월 초에는 1박 2일간 의원들 끼리 워크숍까지 떠났다. 이 정도면 야당의 정권 견제기능이 식물 수준이라고 봐야 한다. 국민들이 정부와 정치권을 싸잡아 비난하는 이유다. 그나마 지난 7일 여야 대표가 국회에서 만나 메르스 확산 방지와 국민 불안 해소를 위해 여야가 초당적으로 협력한다는 내용의 합의를 이룬 점은 늦었지만 환영한다.
 
정보공개와 대국민 소통측면에서도 큰 실책이 보인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메르스 대책회의에서 메르스 관련 정보를 즉시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밝혔지만, 정작 보건복지부는 메르스 관련 의료기관의 공개를 미적대다가 여론에 떠밀려 겨우 관련 병원을 공개했다. 그나마 발표된 병원 명단에 오류까지 있었다니 한심한 노릇이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과민 반응하지 말라면서 유언비어에 단호히 대응할 것을 주문하지만, 각종 괴담이 발생하는 원인은 정부가 정보를 독점하면서 폐쇄적이고 비밀주의적인 대응을 하고 있는 점에 기인한 인상이 짙다. 미국에서도 지난해 5월 플로리다주에서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한국과 달리 의료진이나 환자가족 중 한 명도 감염되지 않았고 환자들도 완치됐다. 괴담도 없었다. 당시 해당 병원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및 주 보건 당국과 협의를 한 뒤 먼저 메르스 발병 사실을 공개했고, 적극적 격리 치료를 한 결과 짧은 시간에 메르스를 극복했다. 정보를 명확하고(clear), 투명하게(transparent) 낱낱이 공개(open)한 결과라고 평가한다. 
 
메르스에 대한 중앙 정부와 지자체, 여당과 야당 대책을 보노라면 흥미로운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중앙 정부와 여당은 환자의 인권보호와 국민의 심리적 안정 차원에서 메르스 대응책에 매우 조심스러운 접근을 보인 반면, 야당과 야권 정치인 출신 지방자치단체장은 공공의 안전을 위해 상당히 적극적인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정부와 여당은 병원명 공개에서부터 감염병 대응 수준 단계에 이르기 까지 상당히 보수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최경환 총리 대행은 지난 9일 “지금은 감염병 위기 경보 ‘주의’단계지만 ‘심각’단계 수준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주의’단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이 현 상태가 ‘준전시상태’라고 하면서 밤 10시에 메르스 대책 기자회견을 하는가 하면,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이를 받아 메르스에 대한 능동적 예방정책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학교의 선제적 휴업까지 발표했다.
 
통상 보수진영은 국가안전과 질서유지를 이유로 강력한 정부 개입정책을 추구하는 반면, 진보진영은 인권과 소수자 보호 차원에서 정부 권한의 제한을 주장해 왔다는 점에서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서는 상황 인식과 대응책이 완전히 뒤집힌 듯한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이를 정치적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는 없다. 여당지지자건 야당지지자건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며, 한 마음으로 메르스 극복을 염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잘되는 집안은 이기고 나서 싸운다는 속담이 있다. 대한민국은 잘되는 집안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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