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0주년 기념으로 100만원을 보낸 분도 있다"
출범 100일 맞는 홍세화 장발장은행장
2015-06-01 17:29:54 2015-06-01 17:29:54
"국가는 징벌적이었고 사회는 무관심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우리 시민사회가 한번 따뜻함을 보여줬다는 그 자체가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형편 탓에 각종 경범죄로 벌금 대신 교도소에 갇혀 노역하는 ‘현대판 장발장’이 매년 4만여 명에 달한다.
 
이런 기막힌 현실속에 다행히도 이들을 위한 따뜻한 손길이 있다.
 
장발장은행은 벌금형을 선고받았는데 돈이 없어 대신 감옥에 가 몸으로 때워야 하는 가난한 이들이 이 땅에 없도록 하자는 취지로 세워졌다.
 
서울 합정동에 위치한 ‘가장자리’ 사무실에서 만난 똘레랑스 전도사 홍세화 은행장은 가족이나 친구한테조차 돈을 구할 수 없어 철창 신세를 져야 하는 이들에게 ‘사회적 모성’을 느끼게 해줘야 할 때라고 말한다.
 
그는 ‘벌거벗은 생명’들에도 정치적으로 여야를 떠나 국회의원들이나 법조인들이 좀 더 깊이 들어가고 관심이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직무유기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서울 합정동에 위치한 '가장자리' 사무실에서 만난 홍세화 장발장은행장. 그는 가난 때문에 자유를 박탈당하는 이웃에게 사회적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라며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 보호받지 못하는 법체계에 아쉬움을 표했다.사진/뉴스토마토
 
다음은 일문일답
 
▲장발장은행이 6월4일 100일을 맞는다. 아직 생소하게 느끼는 사람이 많은데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은행은 은행인데 특이하게 벌금을 대출해주는 은행이다. 범법행위를 해서 국가의 벌금형을 받은 분들 가운데 벌금을 낼만한 처지가 안 돼 결국 교도소에서 강제노역형에 처해지는 분들이 대상이다.
 
강제노역을 2013년까지는 하루에 판사가 5만원씩을 쳐줬는데 ‘황제노역’(대주그룹 허재호 회장의 일당 5억 원 논란) 이후에는 10만원으로 올라갔다. 그 10만원을 못 내는 분들이 몸으로 대신하는 것이다. 그런 사회적 약자들에게 벌금을 무이자·무담보로 대출해 드린다.
 
▲3달도 안돼 벌써 성금이 3억을 넘었다. 매일 걸려오는 수백 통의 문의 전화에 응답하는 일만으로도 하루 일과를 다 보내고 있는 실정이라는데.
 
-3억 원 중 2억700만 원이 대출로 나갔다. 장발장은행은 대출을 하니까 은행이지만 대출자격은 일반인이 아니라 벌금형을 받은 분들 가운데 사정이 딱한 사람이다.
 
범죄의 내용을 보기보다는 그분의 사정이 얼마나 딱한가를 본다. 그런 분들이 일 년에 약 4만 명 정도가 되는데 만약 대출을 다 해준다고 가정할 때 들어가는 돈이 약 700억 원 정도 된다.무
 
무슨 잘못을 했느냐보다는 얼마나 상황과 처지가 어려운지 가정형편 같은 것을 살펴보게 된다.
 
물론 상습범과 같은 경우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우리 사회가 엄하게 보는 음주운전과 같은 것은 제외된다.
 
▲최근에는 이집트 국적인이 포함된 것으로 알고있는데, 외국인도 대상인가.
 
-인권적 측면으로 이 땅에서 벌어진 일이다.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벌금형을 받으면 국적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똑같이 해당되는 상황이다. 이 땅에서 국가의 벌금을 받은 사람이 대상이다.
 
우리 설립취지에 공감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어떤 분들은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100만 원을 보내준 분들도 있다. 저희가 바라는 것은 한 분이 많이 내주는 것 보다 소액이라도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경쟁이 심하고 냉혹한 부분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따뜻한 것에 대한 공감이 이러한 시민들을 참여하게 하는 배경이 아닐까.
 
▲벌금형에도 집행유예가 있어야 한다고 운동을 벌이시고 계시다.
 
-지금 1년에 4만 명이상의 장발장들이 양산되는데 심각한 일이고 얼마라도 줄여야한다고 생각한다. 그 차원에서 저희가 강력히 주장하는 두 가지가 있다
 
우선 하나는 징역형에도 집행유예라는 제도가 있는데 왜 벌금형에는 유예제도가 없나. 그래서 법원이 벌금형을 선고하더라도 유예기간동안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벌금을 없는 것으로 해줘야한다.
 
모순이 있는 것 아닌가. 사실 징역형이 벌금형보다 훨씬 무거운데 징역형은 집행유예로 교도소에 안가도 된다. 그런데 그보다 가벼운 벌금형을 받은 사람이 벌금 낼 돈이 없어서 교도소에 가야하는 모순. 그런 것은 피해야 하지 않겠나.
 
▲있는 사람이 벌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는 누적벌금제도 이러한 일환인가.
 
-그렇다. 일종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원칙이 적용된 거다.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핀란드 유명 휴대폰회사 노키아의 부회장이 오토바이를 타고가다 과속단속에 걸렸는데벌금이 1억 3000만 원이 나왔다.
 
물론 그런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이런저런 이유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벌금유예제도’와 ‘분납제’ 이 두 가지는 시급하게 도입해야한다.
 
▲법조계와 보수적인 정치인들은 잘 공감을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국회에서 번번히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공감의 부족보다는 무관심이라고 본다. 아예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한번 생각해보라. 벌금 100만원을 낼 돈이 없어서 감옥에 가게 됐는데 일가친척이나 친구들도 돈을 빌려줄 여유가 없는 사람. 과연 어떤 사람이겠나.
 
여론을 주도할만한 언론인이나 지식인과는 접촉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말 그대로 정치적 발언력이 없는 사람이다.
 
그들에게 정치적 발언권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정치인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에 장발장은행을 통해 한 번 공감할 수 있는 계기를 갖도록 한 것도 나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일단 빌려주는 것은 알겠지만 빌려간 이들이 과연 잘 갚을지 의구심을 갖는 이들도 있을 것 같다.
 
-아직 초기상황이다. 6개월이 지나야 어느 정도 드러나겠지만 처음 대출할 때부터 ‘나는 6개월을 기다리지 않고 미리미리 갚겠다’고 약속한 분들은 지금 갚아가고 있다. 그리고 저 개인적으로는 만약 못 갚는다고 해도 크게 신경쓰고 싶지는 않다.
 
아예 처음부터 갚지 않겠다는 분들도 있을 수 있지만 정말 처지가 어려워 갚고 싶어도 못 갚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그분들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다.
 
그렇지만 국가는 징벌적이었고 사회는 무관심했다. 그런 분들에게 우리 시민사회가 한번 따뜻함을 보여줬다는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저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범죄에 지나치게 온정적이거나 미화하는 것 아니냐며 반대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우리가 그분들이 잘못을 저지른 것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분들이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분들에게 국가와 사회가 과연 어떻게 대처해 왔나.
 
이 지점에서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냉혹한 방식으로 대한다고 그런 잘못된 행위들이 과연 줄어들까. 그래서 저는 오히려 그분들에게 가슴으로 다가가는 기회를 갖는 것도 중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성금을 보내주실 의향이 있는 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다. 설령 소액이라도 꼭 참여해주셨으면 한다. 참여해주는 것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분이 많은 액수를 내주시는 것보다 다양한 여러분이 소액이라도 참여해주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다.
 
‘나는 얼마 안 되는데’라는 그런 생각은 하지 말고 꼭 참여해 주셨으면 한다.
 
박민호 기자 dduckso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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