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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의 외주화…산업안전 지출은 비용 아닌 투자다"
은수미 "부실한 통계는 산재 은폐 개연성만 높여"
"원청 책임 높이고 유해·위험 업무 하도급 금지해야"
2015-05-26 10:00:00 2015-05-26 10:00:00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는 노동자가 1년에 2000여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다. 기업은 산업안전에 대한 투자를 비용으로 생각하고 돈 쓰는데 인색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는데, 늦더라도 외양간 고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우리나라의 경제규모를 고려할 때 산업현장에 만연한 기업의 산재 은폐는 낯부끄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1990년대 말부터 유해·위험 업무를 하청에 떠넘기는 도급이 급속히 늘면서 이제는 사고 책임마저 외주화됐고, 하청 노동자들은 업무는 물론 산재 후 보상에서도 막다른 골목에 내몰렸다. 죽음으로 내몰리고, 죽어서도 차별을 겪어야 하는 게 하청 노동자들의 실상이다.
 
은 의원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을 지낸 노동분야 전문가다. 19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여의도에 발을 들여,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같은 당의 장하나 의원과 함께 환노위 여전사로 불릴 만큼 그의 활약상은 뛰어나다. 기업들에게는 떼어내고 싶은 찰거머리이자, 저승사자로 통한다.
 
그는 현행 산재보험 체계와 산업안전보건법으로는 기업이 산재 문제를 해결하도록 기대할 수 없고 정부가 효과적으로 제재하기도 어렵다고 진단했다. 유럽 등에 도입된 기업살인법을 통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가하는 등 강력한 처벌책을 마련하는 것만이 현재의 구조화된 악습을 끊을 유일한 길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다음은 은수미 의원과의 일문일답.
 
-최근 SK하이닉스 이천공장에서 질소가스 누출로 하청 노동자 3명이 사망하는 등 하청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숨지는 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이후 대기업에서 안전·생명과 직결되는 위험 업무를 외주화하면서 산재 위험이 높은 일에 하청 노동자들이 몰리게 됐다. 안전관리는 원청업체가 직접 나서도 상태가 개선되기 쉽지 않은데, 이를 하청업체가 전담하고 있다. 위험의 외주화로 안전관리 사각지대가 늘어난 셈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지난해 자료를 보면, 조선업의 84.3%, 철강업의 92.3%가 '하청 노동자의 산재 위험이 더 크다'고 응답했다.
 
-정부는 산업현장에서 산재가 줄었다고 발표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원·하청 가릴 것 없이 노동자들은 '하청 노동자가 원청 노동자보다 산재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됐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SK하이닉스 사고도 원·하청 간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위험의 외주화는 원·하청 모두 법과 기준을 간과하게 만든다. 원·하청 관계에서는 안전관리와 사고책임 주체가 모호해진다. 원청은 위험한 일은 물론 산재 책임도 외주화한다. 하청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관리 책임을 원청으로 일원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안전·생명과 직결된 유해·위험 업무는 도급을 금지하고, 직접·정규직 고용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조선·철강 등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산재가 잦다. 대기업이 산재를 숨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기업은 위험을 외주화하며 산재를 숨긴다. 최근에 조선·기계·자동차·화학·정유·건설·철강 등 6개 업종 16개 대기업 하청 노동자의 2011~2013년 건강보험 사용내역을 분석한 결과, 공식 집계된 산재와 최대 60배, 평균 23배 차이가 났다. 대기업은 산재를 은폐하면서 지난 5년간 산재보험료를 5조원 감면받았다. 산재보험은 자동차보험과 구조가 같아서 사고가 나지 않으면 감면을 받는 방식인데, 기업은 산재를 은폐해 금전적 이득을 봤다.
 
-하청 노동자에 대한 산재 통계가 제 각각이다. 정부는 아예 통계를 작성하지도 않는다. 은폐 의혹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산재 은폐 사례가 많은가. 
 
▲기업인들을 만나면 '법을 지키면 손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 산업안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산재보험료 감면을 위해 대부분 산재를 감춘다. 산재보험 대신 공상처리(公傷處理: 노동자가 산재보험을 신청하지 않고 사측과 민법상 손해배상을 명목으로 합의하는 것)하는 경우가 잦다. 산재 은폐가 적발돼도 경고나 과태료 처분이 전부다.
산재 통계도 제 각각이라는 점에서 정부에 산재 문제 해결을 위한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통계가 제대로 안 됐다는 것은 산재 은폐의 개연성이 많다는 뜻이다. 정부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보험 신청이 접수돼 산재로 승인된 것만 집계한다. 공상처리는 통계에서 빠진다. 각 기업 하청지회도 사실상 집계가 부실한 측면이 있다. 정부는 기업이 산재를 은폐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통계의 정확성을 높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스스로 산재보험을 신청하고 사측의 사고책임을 입증해야 하는 등 절차가 까다롭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는 산재 입증 책임을 노동자가 진다. 사고를 당한 사람이 자료를 모으고, 사용자 확인을 받아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해야 한다. 또 질병과 부상이 업무와 연관됐다는 것을 입증해야만 산재로 인정된다. 반면 외국은 우리처럼 엄격한 원인주의보다 결과주의를 채택한다. 개연성만 있어도 산재로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처럼 노조 조직률이 낮은 상황에서 개인이 원인을 입증하고 책임을 밝혀내기란 어렵다. 근로복지공단이나 사용자가 산재를 입증하도록 책임 주체를 바꾸고, 원인주의에서 결과주의로 전환해야 한다.
 
-중대재해 사고에 대처하고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아예 기업책임법(기업살인법) 등 고강도 처벌 방안을 마련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안전에 관한 기업의 불감증은 현행법이 원청의 책임을 완화한 데서 비롯된다. 지난 2008~2011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안의 80%가 시정조치에 그쳤다. 과태료 부과도 20%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평균 95만원 수준이었다. 벌금보다 어떻게 해서든 사업장을 가동해 얻는 수익이 크기 때문에 안전을 무시한다.
영국이나 캐나다 등은 기업살인법을 제정해 재해가 반복되는 기업을 엄중히 처벌한다. 우리나라 국민은 기업살인법이 도입되면 기업이 망한다고 오해하는데, 실제로는 그런 사례가 없다. 우리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등을 통해 상시적으로 산재를 일으키거나 중대재해를 낸 기업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대기업에 산재 관련 처벌과 규제를 강화하려고 하면 법적 책임이 지나치다는 불만이 나온다.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이나 화학물질등록평가법도 재계의 심한 반발에 부딪혀 도입까지 난항을 겪었다. 경영자 측 입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나라에서 산재 관련 법안만큼 안 바뀌는 법도 드물다. 산업안전보건법(산업법)에서 정한 유해·위험 업무범위는 70년 전 제정된 원안이 거의 그대로다. 현실에 맞게 법을 보완해야 하는데, 기업은 무작정 반대만 한다.
10대 재벌이 사내유보금으로 쌓아둔 돈이 522조원이다. 산재를 숨기지 않고 산재보험료를 제대로 내도 기업 1곳당 많아야 수십억원에 불과하다. 대기업은 이것도 아까워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소홀히 한다. 산업안전에 쓰는 돈은 비용이 아닌 투자의 개념으로 보고,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쳤으면 좋겠다.
 
-산재를 줄이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국회 차원의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
 
▲현재 300여명에 불과한 산업안전감독관부터 대폭 늘려야 한다. 지금은 감독관 수가 워낙 적어서 감독을 나가도 사업장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다. 한곳을 제대로 보려고 하면 그 사이 다른 사업장들에는 공백이 생긴다.
그리고 산재 문제만큼은 원·하청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 원·하청 구분 없이 안전교육을 하고, 노사협의회처럼 산재협의회를 꾸려 원·하청과 정규직·비정규직, 사측이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회는 최근에 산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피해 범위가 크거나 사회적 파장이 예상되는 사고는 고용부 장관이 산업안전보건공단에 안전·보건 진단을 명령하고, 노동자 대표가 추천한 전문가가 입회할 수 있도록 했다. 안전 불감증에 따른 대형 중대재해가, 특히 하청 노동자를 중심으로 많이 발생하자 국회에서도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현재 계류 중인 법안들이라도 서둘러 입법화하면, 사업장 안전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거라고 본다.
 
-정부는 노동시장 구조 개혁을 강조하고 있다. 노동·고용 전문가로서 어떻게 보나.
 
▲정규직과 비정규직 격차를 줄이자고 한 지 10년이 지났다. 현실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정규직도 해고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금은 기업소득과 가계소득 격차를 줄일 시기다. IMF 위기 전만 해도 가계소득과 기업소득 증가율은 차이가 없었다. 지금은 기업 몫이 너무 커졌다. 경제민주화와 함께 이 격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위험의 외주화'를 낳고 있는 구조적 병폐를 지적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김영택·최병호·이순민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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