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산업은행 민영화 법안 통과를 계기로 은행권에 판도 재편의 변화가 몰아닥칠 조짐을 보이고 있다.
5일 금융당국과 금융업계에 따르면 산업은행과 SC제일은행이 하반기에 지주회사로 전환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국내 은행지주회사가 6개로 늘어난다.
산업은행이 민영화에 앞서 수신 기능을 가진 은행을 흡수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고 우리금융지주, 기업은행 등 정부 보유 지분 은행과 외환은행도 매물로 대기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위기 이후 본격화할 은행권의 새판짜기 시나리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 은행권 재편 분위기 무르익어
지난달 임시국회에서 산업은행 민영화 법안이 통과됨에 따라 산업은행은 8~9월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겸비한 산은지주사와 정책금융기관인 한국정책금융공사(KPBC)로 분리된다. 영국계 SC제일은행은 4월 말 지주사 설립 본인가를 금융당국에 신청했다.
정부는 금융시장 여건을 봐서 산은지주사의 지분 매각을 통한 민영화에 착수할 계획이다.
이런 가운데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제한하는 금산분리 완화를 위한 2개 법안 가운데 은행법 개정안이 4월 임시국회를 통과했다.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이 6월 국회에서 처리되면 9월부터 대기업이 은행이나 은행지주회사의 지분을 보유할 수 있는 한도가 현행 4%에서 9%로 늘어난다. 산업자본을 은행산업에 끌어들일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국제 금융위기와 경기침체, 기업 구조조정 등의 한파를 견디지 못하는 은행이 매물로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은행권 고위 관계자는 "은행들의 지주회사 전환과 금산분리 완화가 이뤄지면 은행권에 합종연횡을 위한 물밑 움직임이 빠르게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 M&A 시나리오 솔솔
향후 매물로 나올 곳은 산은지주사와 우리금융지주, 기업은행, 외환은행 등이다. 미국 본사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씨티은행의 미래도 관심사다.
일단 은행권의 재편 시나리오는 정부가 시장 여건에 따라 지분 매각을 추진키로 한 산은지주사를 중심으로 거론되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시장 상황이 호전되면 당장에라도 산은지주사의 민영화 작업에 나설 수 있다"며 "현재로선 매각하는 방안뿐 아니라 민영화에 앞서 다른 은행을 인수하는 방안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계 안팎에서는 일단 금융위기와 기업 구조조정 등으로 자본 여력이 취약해진 대다수 국내 은행이 당분간 산은지주사 인수에 나서기는 쉽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유재성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현재 은행들은 다른 은행을 인수할 여력이 별로 없고 기업들도 설비투자에 나서야 하기 때문에 당분간 은행 지분 인수를 시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정부가 산은지주사 지분 매각에 앞서 산업은행을 수신 기반을 갖추고 있는 시중은행과 합병시켜 가격을 끌어올린 뒤 매각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매각을 추진 중인 외환은행과 산업은행을 합병하는 시나리오도 나오고 있다. 다만 이 경우 정부가 외국자본의 먹튀를 도와줬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산은지주사와 우리금융지주를 합병해 메가뱅크화하는 시나리오도 제기하고 있지만 민영화라는 큰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본격 재편 움직임은 내년 이후"
전문가들은 국제 금융시장이 여전히 안갯속이어서 은행산업의 재편 작업이 연내 가시화하기는 쉽지 않고 내년 이후에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경기 침체와 기업 구조조정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은 데다 증시 침체로 주가가 예년에 비해 낮아진 만큼 M&A 시장 자체가 살아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기업들 역시 투자 여력이 있다면 우선적으로 설비투자에 나서야 하기 때문에 은행 지분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쉽지 않다.
정부 역시 서둘러 산은 민영화를 추진하다 헐값 매각 논란에 휩싸일 수 있는 만큼 국제 금융시장 여건을 봐서 산은지주사를 포함한 국책 금융회사의 민영화 시기를 탄력적으로 결정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유재성 센터장은 "전반적으로 은행권 구조조정 기대감이 커졌으나 외환은행 주가가 7천 원대로 떨어진 터라 주가가 어느 정도 올라가기 전까지는 M&A가 활성화되기 쉽지 않다"며 "은행권의 전반적인 재편 움직임은 내년 이후에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 관계자도 "산은지주사를 민영화하고 은행산업에 산업자본을 끌어들일 수 있는 기반은 갖춰지고 있지만 은행권의 재편 바람이 불지는 국내외 금융시장 여건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진규 온라인뉴스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