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올 봄에는
오늘 부는 바람은
2015-04-16 15:40:00 2015-04-16 20:09:42
올해도 벚꽃이 빠르게 졌다. 찬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길바닥에 나뒹구는 꽃잎을 보는데 ‘작년에 그랬던 것처럼, 떨어진 꽃은 금방 잊고 (나를 포함한)사람들은 내년의 벚꽃을 기다리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년에도, 그 다음 해에도 그렇지 않을까.
 
작년 내 생일은 일요일이었다. 이런저런 핑계로 주중까지 술자리가 이어졌다. 숙취에 머리 아파하던 어느 아침, 광역버스 안에서 그 소식을 접했다. ‘전원 구조’라는 헤드라인을 보고 이내 다시 잠들었다. 그날 밤, 그 다음날 아침, 속보는 바쁘게 TV의 아랫부분을 가려 댔다. 진도와 안산은 아수라장이었다. 그 한가운데 뛰어든 미디어는 자식 기다리는 부모들, 친구 걱정하는 아이들의 마음에 칼을 꽂았다.
 
한 달, 두 달, 아이들이 물에서 나오고 유가족들이 자리를 뜨기 시작하면서 미디어의 칼은 이제 광화문으로 향했다. 각종 ‘애국 단체’들이 그 뒤를 따랐다. ‘세월호’라는 단어만 들어도 피로감을 느끼는 이들이 늘어갔다. 노란 리본을 보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거나, ‘종북 좌빨’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같이 늘어갔다. 단식 투쟁중인 유가족 앞에서 ‘폭식 투쟁’을 하던 이들도 있었다.
 
늦여름까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을이 되자 사람들의 관심은 눈에 띄게 줄어갔고, 유가족 앞에서 행패를 부리던 기운 좋은 할아버지들도 사라졌다. 광장엔 노란색 리본과 깃발들만 외롭게 펄럭이는 날이 늘어갔다. 미디어가 뽑은 칼은 다른 어딘가를 향해 날아간 지 오래다. 그렇게 세 계절이 갔다.
 
◇사진=바람아시아
 
겨울이 지나고 다시 벚꽃이 피기까지, 부모들은 광장을 지켰다. 그렇게 쉽게, 다들 흩어져 갈 것 알았다는 듯이 그냥 그 자리에 항상 있었다. 광화문 네거리를 지날 때마다, 매번 나는 괜히 고개를 숙인다. 일 년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계절이 다시 돌아오는 동안 나는 분향소에도 가지 않았고, 문화제에 참가하지도 않았으며, 숙소가 차려진 광장의 한구석에 얼마간이라도 머무르지 않았다.
 
올해 초, 신호를 기다리던 중에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될 수 있게 힘을 보태 달라던, 어느 자원봉사자 아주머니가 들고 있던 명부에 서명을 한 게, 그 일에 관해 내가 자발적으로 움직인 처음이자 마지막 행동이었다. 일이 터진 뒤로 매일같이 지나다니는 그 네거리에서 땅만 쳐다보고 지나다니다 서명을 하게 되기까지 10개월이 걸렸다.
 
어느새 뒹구는 꽃잎을 보며 내년의 벚꽃을 기대하는 나는 이제 생일을 앞두고 있고, 광화문의 부모들은 그 날을 앞두고 있다. 1주기를 앞둔 주말,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문화제에 나는 가지 않았다. 일이 벌어진지 10개월 만에 서명 한 번 겨우 해 낸 나는, 아이들의 1주기를 준비하는 부모들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어서 가지 않았다. 뉴스를 보면 여러 감정이 뒤섞여서 복잡한 마음이지만, 그 마음 가지고 문화제에 갔다가 돌아올 때 혹시나 ‘그래도 갔다 왔으니까’ 하는 마음이 생길 것 같아서 가지 않았다.
  
아이를 잃은 부모들은 앞으로 얼마나 더 힘든 시간을 보낼지, 광화문의 노란 깃발과 리본은 언제까지 펄럭일지, 그 깃발과 리본들이 사라지기 전까지 내가 그곳에 몇 분이라도 머무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아직도 고개 숙인 채 걸어 다니는 광화문 네거리, 앞으로 돌아올 봄에 그곳을 지날 때면 벚꽃이나 나의 생일보다도 얼굴 한 번 못 본 아이들 생각이 먼저 날 듯하다.
 
 
조휴연 기자 www.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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