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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1주년)오영중 진상조사단장 "대한민국은 야만의 국가"
"기능 제대로 못해 참사 키워놓고 왜곡·굴절시도 여전"
"세월호 '침몰원인' 아직도 미궁..특위에 힘 실어줘야"
2015-04-16 15:00:00 2015-04-16 16:39:12
[뉴스토마토 최기철 조승희기자] "우리나라는 정말 야만국가 같아요. 야만국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죽고, 큰일이 벌어졌는데 나아진 게 없고 국가가 아무런 책임도 져주지 못하는 상황으로 그렇게 1년이 갔지 않습니까."
 
대한변호사협회 세월호 특별위원회 진상조사단장 오영중 변호사(47·사법연수원 39기)는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는 소회를 묻자 울음을 깨물며 이렇게 말했다. 얼굴을 감싼 두 손 사이로 낮은 오열이 흘렀다.
 
1년 넘게 경기 안산과 진도 팽목항, 광주, 대전, 서울 등을 쉼 없이 뛰어다니며 강행군을 한 그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도 '세월호'는 그의 안에서 여전히 침몰 중인 '고통'이었다. 인터뷰를 중단했다. 1년 전 만났을 때보다 흰머리가 눈에 띄게 늘어 있었다.
 
오 변호사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직후부터 현재까지 순수 민간 차원에서의 진상조사 전반을 진행해왔다. 참사 직후 황필규(48·34기), 배의철(39·41기) 변호사 등 진상조사단 소속 변호사 10여명과 함께 세월호 참사의 전말을 가장 가까이에서 본 인물이기도 하다. 오 변호사가 말을 이었다.
 
◇오영중 대한변협 세월호 특별위원회 진상조사단장이 <뉴스토마토>와의 '세월호 참사 1주년' 특집 인터뷰 도중 세월호 참사 당시 상황을 회고하면서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사진=조승희기자) 
 
◇세월호 참사 1년..국가는 무엇을 했나
 
"책임 있는 국가가 그 기능을 제대로 못했으면서 법안이나 시행령을 만드는데도 밀고 당기고 굴절되게 만드는 과정을 보면서 야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 1년 동안 정부와 국가가 무엇을 했는지 되돌아보면 알 겁니다."
 
그가 세월호 진상조사단장으로 처음 활동을 시작한 때는 참사 발생 후 열흘 쯤 뒤였다. 당시 서울지방변호사회는 피해자들에 대한 법률지원을 위해 배의철·황필규 변호사 등 소속 변호사들을 진도 팽목항 현장으로 급파했다. 상황은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다. 서울회 차원이 아닌 대한변협 차원에서의 대응이 필요했다. 바로 이명숙 변호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TF가 꾸려졌고 진상조사, 재판지원, 피해가족 지원 등 3개 분야로 나눠 법률구조에 들어갔다. 이때 진상조사단장을 오 변호사가 맡았다. 그는 당시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막막했지요. 진상규명할 것이 너무 많은데 핵심 증거 대부분은 바다 속에 있거나 정부가 확보하고 있었고, 세월호 승무원들은 대부분 체포 또는 구속된 상태였습니다. 단원고 학생들은 '트라우마' 때문에 접근이 아예 불가능했어요. 모든 단서에 대한 접근이 사실상 차단 된 셈이었죠. 생각 끝에 단원고가 있는 안산으로 갔습니다."
 
오 변호사를 비롯한 진상조사단은 유가족 또는 피해자인 학부모들의 말을 먼저 들어보기로 했다. 사실 그들만큼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원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조사단으로서도 학부모들의 의혹을 풀어주는 것이 급선무였다.
 
질문지를 만들어 안산 합동분향소부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두 개반 학생들의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하다가 면담자가 몰리면서 10개반으로 늘려 안산 초지동에 있는 와스타디움과 경기미술관에서 면담을 진행했다.
 
◇침몰원인 '급변침'결론..진짜 원인은 따로 있어
 
당시 언론에서는 세월호 침몰 원인으로 '급변침' 등이 집중 거론되고 있었다. 정부 입장도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학부모들이 정작 규명을 원하는 달랐다. 세월호가 어떻게 처음 출항하게 됐고, 누가 그 결정을 했느냐는 것이었다. 정부와 언론에서 집중하지 못한 부분이다. 학부모 대부분이 출항 당일부터 침몰시까지 자녀들과 나눴던 내용들을 진상조사단에 쏟아냈다. 구조가 제대로 되었느냐도 의혹의 큰 줄기였다.
 
"피해자들, 특히 유가족들의 가장 큰 트라우마는 침몰한 세월호의 선미부분을 그냥 바라만 봐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망이 확인되면 체념을 할 텐데 저기에 우리 애들이 웅크리고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죠"
 
그랬다. 당시 언론에서는 수면 위로 나와 있는 선미 부분에 '에어포켓(air pocket)'이 형성되어 그 안에 생존자들이 모여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게 제기됐다. 그러나 '에어포켓'은 처음부터 없었다. 피해자 가족과 유족들은 말 그대로 '희망고문'을 당한 것이다.
 
◇침몰한 세월호.(사진제공=범정부사고대책본부 )
 
오 변호사는 사실과 다른 구조 상황을 사실인양 보도한 언론에게도 화살을 돌렸다. 그는 "당시 언론에서는 비행기와 배 수백대가 떠서 구조하고 있다고 보도했지만 정작 현장에 찾아간 학부모들을 통해 확인한 결과 사실과 완전히 달랐다. 손을 놓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학생들과 일반 승객 시신이 수습되면서 혼란은 더욱 커졌다. 학부모들을 비롯한 유가족들은 인상착의가 비슷한 시신이 수습되면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뛰어다녀야 했다. 개중에는 병원이나 관계 당국자로부터 홀대를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고 오 변호사는 전했다. 이 과정에서 유가족들이 진상조사단을 중심으로 결집하기 시작했다. 학부모 및 유가족들과 함께 본격적인 증거보전 작업에 들어간 때도 이때다. 오 변호사는 모든 것이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증거를 서둘러 확보하지 않으면 조작되거나 지워져 없을 위험도 배제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증거보전은 한마디로 민사소송을 위해 피해자인 원고측이 증거가 훼손 또는 소멸되지 않도록 보전해달라고 법원에 신청하는 절차다. 세월호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금전적으로나마 배상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당시 이 작업을 한 사람들은 오 변호사를 비롯한 변협 진상조사단 소속 변호사들이 사실상 유일했다.
 
진상조사단은 지난해 6월5일 진도 해양교통 관제센터(VTS)를 시작으로 VTS가 보유하고 있는 교신기록과 영상 등에 대한 증거보전을 법원에 신청했다. 진도VTS는 세월호 관제 의무와 책임을 지고 있던 곳으로, 교신기록은 통상 보존기간이 60일이기 때문에 별도의 보전신청이 없는 경우 열흘 후면 증거를 확보할 수 없는 상태였다. 조사단은 이어 6월9일 세월호가 사고 직후 첫 교신한 제주해상교통관제센터(VTS)의 항적 기록(AIS), 레이더 영상, 로그인 기록 등과 사고 당일 해경이 촬영한 영상에 대해서도 증거보전을 신청했다.
 
이후 6월23일에는 세월호 업무용 노트북과 CCTV 영상 저장 장치, 희생자들의 휴대전화 등에 대한 증거보전을 법원에 신청했다. 이 증거물들은 세월호 사건에서 가장 핵심으로, 국가정보원이 세월호 운항에 개입했다는 '국정원 세월호 개입 의혹'도 여기에서 촉발됐다. 단원고 학생들을 비롯한 피해자들의 생전 마지막 모습도 담겨 있었다. 복구된 CCTV 영상은 광주지법 목포지원 법정과 팽목항, 안산, 광화문 등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정부의 협조 없이 유족들과 진상조사단이 노트북과 CCTV을 복구하는 데는 두달이 걸렸다. 김인성 전 한양대 교수가 직접 팽목항으로 디지털포렌식 장비를 가지고 달려와 2달 내내 작업했다.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총 소요비용은 8500여만원으로 500여만원은 유가족들이, 나머지 비용은 법원행정처가 소송구조금으로 지원했다. 소송구조금은 국고에서 소송 전 절차보장을 위해 우선 지급된 것으로 국가가 나중에 유가족들에게 구상권을 청구하게 된다고 오 변호사가 설명했다.
 
◇오영중 진상조사단장
 
◇증거보전, 유가족·법원 합작품
 
변협 진상조사단이 신청한 증거보전 건 수는 총 16건으로, 이 중 10건이 받아들여졌다. 거부된 것 중에는 중복 청구와 군사보안 등을 이유로 기각된 것이 많아서 사실상 대부분 받아들여진 것이다. 오 변호사는 증거보전 신청이 빠른 시간 내에 성공적인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법원의 적극적인 협조 때문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광주지법 목포지원, 제주지법, 대전지법 등 당시 증거보전 절차를 담당했던 판사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면서 "세월호의 증거보전은 전자소송과 법원의 신속한 결단의 합작품이다. 특별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꼭 1년. 오 변호사는 아직 밝히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더 많이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우선 정부에 가로막혀 채 못 밝혀 낸 사고원인을 그는 지적했다. 세월호의 불법증축이 단적인 예다. 선박안전법 15조는 증축 허가를 해양수산부장관이 직접 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세월호는 한국선급에서 증축을 허가했다. 명백한 법 위반인 것이다. 오 변호사는 "증거보전 당시 해수부측에 이 문제를 따졌지만 증축 높이가 기준을 초과한 것이 아니면 증축이 아니라고 발을 뺐다"며 "국가기관이 그렇게 은폐하려는 식으로 논리를 개발하고 있다. 강제력 가진 특위가 제대로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국정원 등 세월호 참사와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거나 의혹이 제기된 국가기관들에 대한 조사도 강도 높게 실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증거보전 시도가 좌절된 부분에 대해서도 조사가 계속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해군의 협조를 강조했다. 진상조사단은 한국 해군전술지휘통제시스템(KNTDS, Korean naval tactical data system)에 대해서도 증거보전을 신청했지만 군사상 보안으로 분류돼 결국 법원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군사상 보안이기는 하지만 참사 당일 세월호의 항적을 가장 정확히 알 수 있는 자료이고, 진상 규명을 위해서는 제한된 범위에서라도 증거로 보전되어야 한다고 오 변호사는 주장했다.
 
◇"시스템 부재 참사 키워 청와대도 조사 받아야"
 
오 변호사는 재난보고 및 지휘 시스템에 대한 부분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월호 참사를 키운 직접적인 원인이기도 한 이 부분은 해양경찰청, 안전행정부, 국무총리실, 청와대까지의 지휘 및 보고라인과 현장 대응에 대한 전 체계에 대한 지적이다. 그는 개인적인 생각임을 전제로 "필요하다면 청와대도 특위 등 조사에 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세월호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이 팽목항 등에서 당한 2차 참사를 직접 경험한 그는 허술한 대응체계 역시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세월호특별법 및 시행령 제정 등과 관련해 국회와 정부에 대해서도 오 변호사는 쓴소리를 했다. 그는 "결국 특별법의 제정 관련 문제는 국회의 몫이고 사후적으로도 국회가 해결할 부분이 있다"며 "당리당론을 떠나서 전향적인 입장에서 세월호 문제를 해결하도록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진상조사단을 비롯한 변협의 세월호 특위는 사실상 활동이 거의 마무리 된 상태다. 그러나 오 변호사의 역할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국회와 유족들이 구성한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세월호 특위)'활동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 변호사는 "그동안 활동을 통해 모아 온 자료를 모두 이관하는 등 세월호 특위가 제대로 활동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돕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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