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이 차창을 향해 떨어지는 게 분위기가 스산하다. 결혼을 앞둔 남녀가 청첩장을 들고 친가에 가는 길이었다. “스카프 마음에 드실까?” 어머니께 드릴 선물을 가지고 즐겁게 대화를 나누다가 휴게소에 들렀다. 여자는 차에 남고 남자는 볼일을 보러 잠시 차 밖으로 나갔다.
일을 마친 뒤, 차로 돌아온 남자는 놀란다. 그녀가 비가 오는데 우산도 두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녀는 어디로 간 걸까. 남자(장문호)는 여자(강선영)을 찾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다. 그녀의 집에는 지문조차 남아 있지 않다.
미야베 미유키의 원작 소설로 유명한 화차(火車). 이 영화는 미유키의 팬이라 밝힌 영화감독 변영주의 작품이다. 화차는 생전에 악행을 저지른 망자를 지옥으로 실어 나르는 불수레란 뜻이다. 일본의 전설 속에서 등장하는 이 화차에 한번 올라탄 사람은 내릴 수 없다고 한다. 홀연히 사라진 강선영이란 존재의 심연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장문호. 그 심연으로의 통로를 다루는 이 영화는 단순한 스릴러로 치부해 버리기엔 다루고 있는 주제들이 너무 무겁다.
◇사진=바람아시아
서서히 강선영의 정체가 드러난다. 사실 그녀는 강선영이 아니라 차경선이란 사람이었다. 이 미스터리는 그녀가 어릴 적 아버지가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리면서 시작되었다. 빚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자 그녀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진다.
하지만 사채업자들은 빚진 당사자뿐만 아닌 흩어진 가족들에게까지 마수를 뻗는다. 어머니는 돌연히 사체로 발견된다.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한 차경선의 행복한 삶은 사채업자들에게 처참히 짓밟힌다. 남편과 이혼한 그녀는 사채업자들의 손에 끌려 홍등가로 끌려간다.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 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혼자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차경선이 소중하게 간직했던 아파트의 전경 사진. 그녀는 저런 포근한 공간에서 남들처럼 도란도란 살고 싶었을 뿐이다.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차경선이란 사람의 삶.
그녀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불행으로 점철된 인생에서 벗어나고자 강선영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강선영을 죽이고 그녀로 살아가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그런다 한들 차경선이란 사람이 강선영이 될 순 없었다. 행복해지고자 했던 차경선의 끝은 비극적이게도 자살로 끝난다.
그녀는 왜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가. 비극의 시원은 아버지의 사채였다. 사채는 한 가정이 파탄 내고, 어머니를 죽이고, 딸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렸다. 차경선은 혼자였다. 운명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 행복해지려 했으나, 택한 방법은 타인을 살해하는 죄를 짓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자살은 그 방법이 옳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살인은 그녀의 운명을 더 비극적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운명의 수레바퀴를 벗어난 게 아니라 불수레에 몸을 실은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행해질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삶을 두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탈출구를 더 찾아보지 않고 남을 죽인 건 잘못이다, 더 노력했어야 한다는 등 사회적 책임을 묻지 않고 모든 걸 개인의 책임으로 환원시키면 끝일까. 차경선과 같은 상황과 부닥친다면 개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불행한 환경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행복을 향한 그녀의 날갯짓은 소용없는 일이었다. 피에 젖어 날지 못하는 나비의 모습은 결국 이런 말을 뜻하는 것이었다. 살인조차 너를 날게 하지 못한다. 피에 젖은 날개기에.
◇영화 '화차' 장면(캡쳐=바람아시아)
한국은 사회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는 데 익숙하다. 집단, 단체, 사회를 위한 개인들의 희생이 많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빈번히 등장하는 열심히, 노력, 긍정적이란 형용사는 저 희생을 합리화한다. 물론 좋은 말들이다. 힘들어도 좌절하거나 남 탓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며 긍정적으로 살다 보면 행복해진다는 말들.
하지만 여기에서 사회와 구조적 문제는 뒷전으로 밀린다. 이 살벌하고도 무서운 세상 속에서 긍정적 사고만으로 행복해지는 게 힘들다는 사실은 감춰진다. 노력과 긍정의 자세만 칭송하며 우러러본다. 실패하거나 불행해 하면 개인의 의지나 능력 탓이다. 잘사는 나라가 되었지만 국민의 행복지수는 바닥을 맴돌고, 자살률은 최상위권에 맴도는 이 현실을 두고 무어라 말해야 할까.
이선균 품에 안겨 “행복해지고 싶어서.....”라고 말하던 그녀의 말이 계속 메아리친다.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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