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 관하여
오늘 부는 바람은
2015-03-27 11:25:00 2015-03-27 13:57:25
“엥겔스 같은 친구를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칠 전 마르크스 저작을 읽고 느낀 점을 교수님이 물었고, 나는 답했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마르크스를 위했던 엥겔스 같은 친구, 얼마나 든든한가. 여러 학생들이 사회주의니,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니, 현실성이니 무거운 대답을 했고, 나는 그저 분위기 전환을 하고자 ‘가벼운’ 답을 했다. 그러나 웃자고 한 이야기에 교수님은 ‘무거운’ 화두를 던졌다.
 
◇베를린에 있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동상(사진=바람아시아)
 
“반대로 너는 엥겔스 같은 친구가 될 수 있는가?”한대 맞은 기분이었다.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그의 질문은 “친구에게 평생 금전적 지원을 해 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친구가 죽은 후에 친구의 유고를 완성하는데 남은 일생을 바칠 수 있는가?”의 구체적 질문이 아닌, “너는 친구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들렸다.
 
우리는 ‘대입’준비를 했고, ‘입대’를 했으며, ‘제대’를 했다. 그리고 이제 ‘입사’를 준비하고, ‘입사’를 할 것이다. 숨 가쁘게 달려온 세월이고 세월일 것이다. 근 10년의 세월 간 나는 친구들을 위해 어떤 희생을 했는지 고민해본다.
 
희생의 사전적 정의는 ‘다른 사람이나 어떤 목적을 위해 자신이나 가진 것 등을 바치거나 포기함’이다. 친구를 위해 무엇인가를 내주거나 포기할 수 있는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게는 몇 명의 10년 이상을 ‘오래도록 친하게 사귀어 온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비슷한 길을 걸으며 많은 것을 스스로 포기했다.
 
‘대입’을 위해 한참 멋 부릴 나이에 다 같이 머리 밀고 공부를 했었다. 대학에 들어가 머리가 좀 자랄 때 쯤‘입대’를 했고, 청춘의 꽃인 20대 초반은 그렇게 지나갔다. ‘제대’를 하니 입대 전‘3포세대’로 불리던 우리는‘5포세대’가 되어있었다. 대학가서 실컷 놀고 지금은 공부하라 하셨던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무색하게도, 우리는 점점 더 많은 것을 포기해가야 했다. 이제는 취업하면 실컷 놀자며 또 다시 펜을 잡는다. 내 코가 석자다. 친구를 위해 내주거나 포기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인다.
 
친구들과 계절이 바뀔 때 쯤 한번 씩 만난다. 취업을 준비하는 지금 우리는 술 한번 먹기 위해 영어단어 몇 개를 포기한다. 혹은 주말 알바 하루를 빼느라 5만원을 포기한다. 1년에 몇 번 모여 모든 것을 잊고 술에 진탕 취하는 것 자체가 서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희생’이었다. 술에 진탕 취하고 다음의 ‘희생’을 기약하며 헤어진다.
 
그리고 또 다시 일상이다. 하루에 한번 친구를 생각할 새도 없다. 각자의 영역에서 묵묵히 5가지의 포기 중 하나라도 성취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며 살아간다. “엥겔스는 아빠 잘 만나서 친구를 위해 희생할 기회나 있었지!” 내 코부터 넉자가 되길 바라며 펜을 다시 잡는다.
 
 
허우진 기자 www.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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