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사내에 적립하던 퇴직금 제도를 대체해 도입된 퇴직연금 제도가 시행된지 9년이 지났다. 안전자산 위주의 자산운용과 낮은 연금 수령비율 등 여전히 가야할 길은 멀지만,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가 올해 안에 1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되는 등 양적인 성장을 이뤄낸 가운데 정부의 사적연금 활성화 방안으로 새로운 성장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이에 뉴스토마토는 퇴직연금 도입과 성장을 위해 발로 뛰어온 퇴직연금전문가 10인을 선정,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한다. [편집자주]
"이제 퇴직연금 시장의 진검승부가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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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진)는 9일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퇴직연금 제도 개선으로 퇴직연금 단일화가 이뤄지면 중견·중소기업의 제도 도입이 가속화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박 교수는 "퇴직연금 시장은 크게 보면 아직도 초기단계"라면서도 "최근 근로복지공단이 수행하고 있는 30인 이하 사업장의 퇴직연금제도 수신고가 5000억원을 돌파했고 앞으로 그 확산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기금형 퇴직연금제도가 중소기업 맞춤형 제도로 설계된다면 퇴직연금의 안정화, 확산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자타공인 노동법 전문가다. 노동법이론실무학회 감사, 한국노사관계학회 감사, 한국노동법학회 이사 외 고용노동부 고용노동정책평가위원회 위원,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공익위원, 근로복지공단 비상임이사 등을 맡고 있다.
다음은 박 교수와의 일문일답.
-퇴직연금이 도입된지 9년이 지났다. 도입 이후 현재까지 전반적 성과에 대해 평가한다면.
▲퇴직금제도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근로자보호제도로서 해고보상금 내지 퇴직전별금이라는 인식이 강했으나, 퇴직연금제도 도입으로 노후보장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전환이 이뤄진 것만으로도 큰 변화이자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퇴직일시금에 대한 기대권에 안주하고 있던 근로자들의 상당수가 노후보장수단으로서 퇴직연금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반적으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된다.
다만, 중소기업 근로자의 퇴직연금 전환율이 상대적으로 낮아 이에 대한 보완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앞으로 모든 퇴직급여가 퇴직연금으로 단일화 된다면 퇴직연금제도의 정착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적으로는 88점 정도 된다고 본다.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에 있어 가장 큰 문제점은 뭐라고 보나.
▲퇴직연금제도의 조기정착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요소가 퇴직연금의 안정성에 대한 신뢰라고 할 수 있으므로 적립금 운용에 대한 어느 정도의 규제는 불가피하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안정적 기조를 유지하다보면 수익률에 부정적 효과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어느 정도 합리적인 접점이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퇴직연금의 적립금은 장기간 운용돼 수익을 창출시킨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나치게 단기적인 평가와 판단은 바람직하지 않다.
-퇴직연금 제도적 측면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퇴직연금 도입 절차와 방법, 선택가능한 플랜의 범위 등이 지나치게 엄격해 퇴직연금제도의 확산을 촉진하는데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근로자와 기업이 좀 더 자유롭게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단 퇴직연금제도가 도입, 실시되고 있다면 그 구체적인 운영방법 및 결과에 대해 퇴직연금사업자의 책무성이 강화돼야 한다. 근로자에게는 퇴직연금이 자신의 노후를 책임지는 수단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입의 문턱은 낮추되 그 운영방법과 평가는 깐깐해야 한다.
-최근 논란이 됐던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도입에 대해 전망한다면.
▲퇴직연금 확산의 가장 큰 장애는 중소기업과 그 종업원의 근무실태와 소득수준 등 노동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짧은 근속기간과 낮은 소득수준, 중소기업의 독자적인 퇴직연금제도 설계 가능성 부족 등 지속가능한 퇴직연금 설계를 곤란하게 하는 요인들이 많다. 이러한 이유에서 기금형 퇴직연금제도가 중소기업 맞춤형 제도로 설계된다면 퇴직연금의 안정화, 확산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퇴직연금 시장을 전망한다면.
▲퇴직연금시장은 크게 보면 아직도 초기단계이다. 최근 근로복지공단이 수행하고 있는 30인 이하 사업장의 퇴직연금제도 수신고가 이제 5000억원을 돌파했는데 앞으로 그 확산 속도가 더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법제도의 개선으로 퇴직연금 단일화가 이뤄질 경우 중견, 중소기업의 제도 도입이 가속화될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이제 퇴직연금 시장의 진검승부가 시작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퇴직연금 도입 과정 혹은 도입 이후 현재까지 가장 기억에 남았던 사건이나 순간이 있다면.
▲퇴직연금제도의 도입 자체도 큰 사건이지만, 무엇보다도 2011년 1인 이상 사업장 전체에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된 것이 가장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생각된다. 취약계층 근로자에게도 노후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제도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큰 발전이다. 이를 제대로 정착할 수 있도록 홍보와 교육이 이뤄지고, 소규모사업장에 대한 맞춤형 제도가 계속해서 발전해야 한다.
-퇴직연금이 노후소득보장이라는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 각 이해당사자들(근로자, 사용자, 금융기관, 정책당국 등)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퇴직일시금에 대한 기대가 여전히 지나치게 높아 퇴직연금의 필요성과 장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근로자나 기업이 아직도 적지 않다. 특히 정부는 퇴직연금의 안정적 정착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근로자들은 그렇지 않아도 소득대체율이 낮아 노후보장수단으로 그 역할이 제한적인 공적연금을 보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퇴직연금이라는 점을 정확히 인식해야 하고 이를 자본과 노동의 대립으로 이해하는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업주는 일시적이고 단기적인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퇴직연금은 기업운영의 최소한의 필수적 의무임을 직시해야 한다.
퇴직연금의 운영은 우리 국민들의 더 나은 사회통합을 위한 공공재임을 명심하고 금융기관의 법적, 도덕적 책임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서지명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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