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사내에 적립하던 퇴직금 제도를 대체해 도입된 퇴직연금 제도가 시행된지 9년이 지났다. 안전자산 위주의 자산운용과 낮은 연금 수령비율 등 여전히 가야할 길은 멀지만,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가 올해 안에 1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되는 등 양적인 성장을 이뤄낸 가운데 정부의 사적연금 활성화 방안으로 새로운 성장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이에 뉴스토마토는 퇴직연금 도입과 성장을 위해 발로 뛰어온 퇴직연금전문가 10인을 선정,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한다. [편집자주]
"저금리·저성장·저출산이라는 구조적 현상을 감안하면 퇴직연금시장은 앞으로 더욱 성장할 가능성이 클 것이 자명합니다. 다만 양적인 성장에 취해 질적인 부분을 외면하면 퇴직연금의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손성동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금연구실장(
사진)은 8일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퇴직연금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손 실장은 "급속한 성장 과정에서 기존과는 다른 트렌드가 형성될 수도 있다"며 확정기여(DC)형이 확정급여(DB)형을 추월한다거나, 지금보다 실적배당형 상품의 비중이 훨씬 늘어난다거나 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각과 자세로 임해야 한다"며 "이를 외면할 때 퇴직연금의 기반에 금이 갈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손 실장은 업계에서 손꼽히는 퇴직연금 정책전문가다. 삼성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을 거쳐 지난 2006년부터 미래에셋에서 몸담으며 퇴직연금을 연구해 왔다. 2008년 노동부장관상, 2010년 금융감독원장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저서로는 <장수사회의 미드필더, 퇴직연금>, <호주 퇴직연금의 성공신화>, <복지전쟁(번역)> 등이 있다.
다음은 손 실장과의 일문일답.
-퇴직연금이 도입된지 9년이 지났다. 도입 이후 현재까지 전반적 성과에 대해 평가한다면.
▲우리나라 퇴직연금은 도입되자마자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발 재정위기 등 두 차례나 큰 위기국면을 맞이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도입 9년이 지난 현재까지 적립금은 국민연금이나 개인연금을 능가하는 규모로 성장해왔다. 시작 당시의 큰 기대치에는 다소 못미치는 수준이지만 위기국면에서 이룬 성과임을 감안하면 나름 순조롭게 성장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질적인 측면에서는 아직 개선의 여지가 많은 것으로 판단된다. 굳이 점수를 매기자면 최우수는 못되고 우수등급을 줄 수 있는 80점 정도.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에 있어 가장 큰 문제점은 뭐라고 보나.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의 기본이 망각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DB형의 기본은 '합리적인 리스크 하에서 퇴직급여부채에 대한 기업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것'이라 할 때 저금리 기조가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원리금 비중이 더 높아지는 현상은 DB형을 운영하는 기업에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고민해야할 부분이다. DC형 역시 마찬가지의 문제를 안고 있다.
-퇴직연금 제도적 측면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지금 남은 것은 제도상의 문제라기보다는 제도가 현실에 얼마나 잘 정착되느냐의 문제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다. 앞으로는 이 점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최근 논란이 됐던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도입에 대해 전망한다면.
▲아무리 비싸고 아름다운 옷이라 할지라도 내몸에 맞지 않으면 누추해 보일 수 있다. 기금형제도가 과연 우리 토양에 맞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서구의 퇴직연금 선진국에서 기금형이 발전해 있는 것은 그들의 오랜 신탁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봐야 한다. 동양인 일본에도 기금형이 주를 이루고 있긴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국민연금의 소득비례부분을 적용제외하면서 생긴 현상이라 하겠다.
이런 점에서 봤을 때 기금형이 주요 제도의 하나로 자리잡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며, 기금형을 도입하는 경우에는 그 과정이나 운영과정에서 많은 잡음이 예상된다. 신탁이 발달한 서구에서도 기금형의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경우가 많은데, 신탁문화가 일천한 우리나라의 경우 더 큰 문제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기금형에 대한 감독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감독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기금형을 도입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앞으로 퇴직연금 시장을 전망한다면.
▲'사적연금 활성화 종합대책'이 제도로 자리매김하고 저금리·저성장·저출산이라는 구조적 현상을 감안하면 퇴직연금시장은 앞으로 더욱 성장할 가능성이 클 것이 자명하다. 다만 양적인 성장에 취해 질적인 부분을 외면하면 퇴직연금의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급속한 성장의 과정에서는 기존과는 다른 트렌드가 형성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DC형이 DB형을 추월한다거나, 지금보다는 실적배당형 상품의 비중이 훨씬 늘어난다거나 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각과 자세로 임해야 함을 뜻한다. 이를 외면할 때에는 퇴직연금의 기반에 금이 갈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새로운 퇴직연금의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퇴직연금 도입 과정 혹은 도입 이후 현재까지 지켜보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사건이나 순간이 있나.
▲퇴직연금 도입 당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오랜 기간 논의만 하다 번번이 실패한 이후 '퇴직연금호(號)'가 출범하게 됐을 때 그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누가 1호 계약을 따내느냐를 둘러싸고 사업자들 사이에 벌어진 눈치싸움은 맛있는 양념이라 할 만했다.
-퇴직연금이 노후소득보장이라는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 각 이해당사자들(근로자, 사용자, 금융기관, 정책당국 등)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우리나라는 초고령사회라는 블랙홀로 급속히 돌진하고 있다.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 등과 달리 우리나라는 사회보장제도나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되면 희망은 산산조각 날 가능성이 크다.
퇴직연금은 이런 잠재적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줄 아주 강력한 구원투수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구원투수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튼튼한 체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데 중지를 모으고, 각 이해당사자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아니 해야 하는 일들을 잘 해나가는데 매진해야 할 때라 생각한다.
서지명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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