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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장·산업 활성화'에 눈먼 정부..무리수 연발
2014-09-23 16:37:04 2014-09-23 16:41:45
[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정부가 신시장·산업 창출에 사활을 걸었다. 수급이 포화된 기존 시장·산업에서는 내수·투자활성화는커녕 경제살리기도 기대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정부가 신시장·산업 창출에 눈이 멀어 무리수를 두는 모양새가 역력하다.
 
연초에는 의료 민영화 논란과 규제완화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보건·의료산업 활성화를 밀어붙이더니 최근에는 공무원 연금개혁안을 강행하며 100만 공무원의 원성까지 샀다. 에너지 신산업 육성 역시 대기업에 전력시장을 넘겨주는 꼴이라는 우려가 크다.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리기로 했던 '공무원 연금개혁 토론회'가 전국공무원노조 등의 반발로 무산됐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한국연금학회는 공무원들이 연금을 '더 내고 덜 받는' 내용의 개편안을 제시했는데 이게 공무원의 분노를 산 것이다.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무원 연금개혁 정책토론회'에서 공무원노조원들이 공무원 연금 개악 저지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토론회는 노조원들의 저지로 무산됐다.ⓒNews1
 
이날 공무원들이 집단으로 반발한 이유는 '더 내고 덜 받는' 연금개혁안이 공무원의 실급여를 낮추고 노후소득 보장을 위협할 위험이 커서다. 하지만 다른 원인이 하나 더 있다. 정부가 사적연금시장을 키울 심산으로 100만 공무원을 희생시킨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8월 최경환 경제팀은 노후생활 보장을 강화하기 위해 사적연금을 내실화할 필요가 있다며 퇴직연금 도입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사적연금 활성화 방안을 내놨다.
 
이에 따르면 2016년부터 300인 이상 기업은 퇴직연금 도입을 의무화해야 하고 확정급여(DB)형 연금은 확정기여(DC)형 연금으로 개편된다. 정부는 또 DC형 연금의 위험자산 투자한도를 현행 40%에서 최대 70%까지 늘리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하지만 당시 정부의 발표에는 이상한 데가 많았다. 무엇보다 국민의 노후생활을 보장하겠다는 퇴직연금 도입이 민생안정 대책이나 기초연금 지급방안 등과 연계된 게 아니라 오히려 금융업계 신시장 창출을 위한 투자활성화 대책의 하나로 나왔다는 점이다.
 
공무원들이 공무원 연금개혁안에 분노한 부분도 여기에 있다. 연금개혁의 목적이 공적연금을 축소해 금융업계가 중심이 된 사적연금시장을 키우려는 꼼수라는 주장이다.
 
공무원노조 관계자는 "정부 용역을 받아 연금개혁안을 제시한 연금학회 자체가 민간 금융회사들이 회원으로 소속된 단체"라며 "이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으로 공무원을 비롯한 국민의 노후생계를 금융자본의 손아귀로 내모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여연대 등도 "공무원 연금개혁안은 사적연금을 키우고 금융시장을 먹여 살리려는 의도"라며 "연금개혁안에는 연금제도의 목적인 안정적인 노후소득 보장은 배제됐고, 정부가 국민의 노후소득을 대기업의 이윤추구 수단으로 넘겼다"고 정부의 꼼수를 지적했다.
 
문제는 정부의 이런 태도가 다른 신시장·산업 창출 사례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는 점이다. 이미 올해 초 의사협회의 파업을 불러온 보건·의료산업 활성화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연초에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의료 민영화 우려에도 의료법인의 부대사업을 허용하고 원격의료와 의료관광을 육성하는 보건·의료산업 활성화 대책을 발표했고, 8월에는 투자개방형 병원 유치 등 보건·의료 규제를 대폭 낮추는 투자활성화 대책을 또 내놨다.
 
더구나 보건복지부는 이미 의사협회의 반발로 한차례 무산됐던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복지부 단독으로 강행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원격의료에 대한 안정성 검증이 필요하다는 이유였지만 의료계가 반대하는 이 사업을 굳이 강행해야 하느냐는 지적이 잇따랐다.
 
◇8월27일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부 서울대병원분회(서울대병원 노조) 조합원들이 서울대병원에서 의료민영화 저지를 위한 파업 투쟁 기자회견을 열었다.ⓒNews1
 
친환경차 인프라 구축과 신재생에너지 보급, 전력저장장치(ESS) 시장 육성 등 에너지 신산업은 최근 정부가 가장 큰 관심을 가지는 분야다. 지난 4일 박근혜 대통령은 에너지 신산업 토론회에 참석해 "민간의 자유로운 시장참여를 제한하는 낡은 제도·규정을 개선하고 에너지 신산업 육성을 위한 환경조성에 노력하겠다"고 연설했다. 
 
하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풀면 그간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에너지 공기업이 독점 운영한 에너지시장을 민간에 대거 개방한다는 뜻이므로 에너지시장 민영화 논란이 생겨난다.
 
실제로 업계는 에너지시장이 한국전력과 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의 독점으로 방만운영됐다며 시장을 민간에 개방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요구했다. 이에 MB정부 이후 에너지시장을 민간에 열기 시작했고 현재 화력발전 등을 중심으로 민간 비중은 10%까지 늘었다.
 
문제는 앞으로 시장에서 민간발전사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는 경우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결국 자본력이 큰 대기업 중심으로 에너지시장 구조가 재편되면 한전 등을 잇는 또 다른 독점기업이 생기는 꼴이고 각종 에너지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박근혜정부가 출범 2년차를 맞아 신시장·사업을 창출하는데 중점을 두면서 각종 논란과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정부는 이런 것을 주의 깊게 살피지 않는 듯 하다.
 
아울러 공무원 연금개혁 등 신산업·산업 활성화 대책 모두 구체적 액션플랜이 없고 인프라 구축도 미흡한 상황에서 이해관계자·업계의 의견수렴까지 소홀히 한 흔적이 역력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국가미래연구원 등 복수 관계자는 "박근혜정부가 신시장·산업 활성화 구호만 남발하고 있어 정부와 이해관계자의 갈등만 더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2000년대 초반 카드사태나 최근까지 사회적 문제가 된 부실 대형 부동산·개발사업 등은 정부가 단기적인 경기부양을 위해 신시장을 만든다며 내놨던 정책들이 곪고 곪아 터진 것"이라며 "단기 투자·고용 창출만 노린 경기부양책은 절대 경제살리기의 해답이 될 수 없고 부작용만 누적시켜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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