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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했던 현대차의 10조 베팅..'승자의 저주' 우려
2014-09-18 16:18:12 2014-09-18 16:22:40
ⓒNews1
 
[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간절함이 현실을 도외시했다. 서울 강남의 마지막 금싸라기땅 한국전력 본사 부지의 주인이 됐지만 출혈이 적지 않다. 자본력의 삼성이 뛰어들면서 오히려 현대차그룹의 베팅액만 커졌다는 분석이다. 당장 시장은 '무리수'였다는 지적과 함께 승자의 저주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증시는 이번 입찰전에 참여한 현대차그룹 3인방의 동반추락을 부르며 충격을 안겼다.    
 
18일 한국전력이 서울 삼성동 본사 부지 입찰을 마감한 결과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가 함께한 현대차그룹 컨소시엄이 최종 낙찰자로 선정됐다. 앞서 입찰가격을 놓고 재계 1, 2위인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이 치열한 물밑 신경전을 벌였던 것에 비하면 낙찰자는 너무 싱겁게 결정됐다. 현대차가 예상 입찰가액을 훨씬 뛰어넘는 가격을 써냈기 때문이다.
 
한국자산관리공사 온비드에 접수된 입찰정보를 취합한 결과, 현대차는 무려 10조5500억원을 써내 한전 부지를 낙찰받았다. 한전 측이 감정가격과 동일한 3조3346억원을 예정가액으로 써낸 것을 감안하면 기대치의 3배가 넘는 베팅액이다. 한전부지 면적이 7만9342㎡인 점을 감안하면 3.3㎡(평)당 4억3879만원의 돈뭉치를 들이부은 격이다.
 
시장에서 예상했던 낙찰가 4조원 안팎은 물론 삼성이 써낸 것으로 알려진 5조원 중후반대와 비교해도 두 배 수준이다. 현대차가 너무 무리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한전의 낙찰자 발표 직후 삼성 측에서는 예상치 못한 현대차의 입찰가에 "눈과 귀를 의심했다"는 말까지 흘러나왔다.
 
시장이 4조원 안팎을 예상했던 것은 수익성 때문이다. 개발비용이 5조원 수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땅값으로만 5조원을 넘게 투입하게 되면 수지 타산을 맞추기 어렵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삼성 역시 이를 걱정했다. 
 
현대차는 그러나 한전부지는 수익성 부동산 개발을 위한 것이 아니라 30여개 그룹사가 입주해 영구적으로 사용할 통합사옥을 짓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입찰가격이 결코 높은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룹의 통합사옥은 정몽구 회장의 숙원이었으며, 그의 의지가 투영되면서 입찰가격 또한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현대차 관계자는 "통합사옥 건립이라는 현실적인 필요성과 글로벌 경영계획, 미래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통합사옥에 제2 도약의 꿈과 비전을 심겠다"며 "백년 앞을 내다본 글로벌 컨트롤타워로서의 그룹 미래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자신에 찬 발언만큼이나 현대차는 이번 입찰에 전사적인 역량을 집결시켰다. 서울에만 30개 계열사와 1만80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는 현대차의 양재동 사옥은 5000명 수용규모에 불과하다. '그룹타운' 확보라는 그룹의 오랜 숙원을 이번에야말로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강했다. 앞서 인허가 문제로 무산되긴 했지만 서울 성수동 뚝섬에 사옥 겸 110층 규모의 글로벌비즈니스센터를 건립하려 했던 계획을 세운적 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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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회장(사진)이 이번 한전부지 입찰과정에서 직접 사안 하나하나를 챙기면서 진두지휘한 것은 현대차의 한전 부지에 대한 간절함을 잘 보여준다.
 
재계는 현대차그룹의 과거 실패 사례도 초고액 베팅에 적잖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10년 11월 현대건설 인수전에서 현대그룹에 1차 베팅가격에서 크게 밀렸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현대건설 인수가로 현대차그룹보다 4000억원이 더 많은 5조5000억원을 제시했다.
 
당시 채권단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던 현대그룹 조달자금의 성격을 문제삼아 일방적으로 양해각서를 해지하면서 결국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손에 넣긴 했지만, '시숙의 난'으로 비춰질 정도로 후폭풍이 만만치 않았다. 특히 현대가(家) 적통성 싸움에 현대건설 출신인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개입설까지 제기되는 등 후유증에 시달렸다.
 
한전부지 입찰전 막판에 등장한 삼성은 이런 '트라우마'가 있는 현대차에게 최대의 걸림돌이었다. 막강한 자금력과 정보력을 가진 삼성이 현대차보다 높은 가격을 써낼 것에 대한 두려움이 과도한 베팅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 현대차그룹은 모든 채널을 동원해 삼성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했다. 
 
현대차가 깜짝 고액베팅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나섰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환율 급락으로 비상경영체제로 전환한 가운데 내수시장에서는 수입차의 파상공세에 기존 과점 체제가 사실상 무너졌다. 무엇보다 글로벌 시장에서 제자리 걸음을 보이면서 이전의 고성장을 유지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의문이 강해졌다. 일본이 예전 명성을 되찾으면서 한정된 수요를 쫓는 경쟁도 격화됐다. 
 
이날 증시에서는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한전부지 인수 주체로 나선 현대차그룹 3인방의 주가가 동반 급락했다. 현대차는 전거래일보다 9.17%(2만원) 빠진 19만8000원, 기아차는 7.80%(4600원) 빠진 5만4400원, 현대모비스는 7.89%(2만2000원) 빠진 25만7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모두 기관이 대규모 순매도하며 10조원이 넘는 예상치 못한 입찰가격에 대한 '승자의 저주'를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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