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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증거 위조'수사, 국정원 과장 2명 '작품'으로 마무리
부국장-국장 결제라인 찾았으면서도 수사 안해
전문내용 확인 않고 결재..변명만 듣고 수사 종결
2014-04-14 20:59:28 2014-04-14 21:03:53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진상조사 38일 만에 '서울시 공무원 간첩증거 위조 의혹 사건' 수사가 막을 내렸다. 검찰 수사팀은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 이 모 처장과 이인철 주선양 한국영사관 영사 등을 불구속 기소하는 등 국정원 직원 3명과 협력자 김모씨를 기소했다.
 
소환조사를 받은 뒤 자살을 시도한 권 모 과장은 기억상실증 등의 후유증 때문에 완쾌될 때까지 기소중치 처분을 내렸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권 과장(4급)과 지난달 31일 구속 기소된 김 모 과장(4급)이 실무자로 증거 위조를 주도했고 이 처장이 총지휘를 했다. 그 윗선은 없었다는 게 검찰 수사의 결론이다.
 
검찰과 국정원은 물론 외교적 갈등의 위기까지 몰고 간 이번 사건이 국정원 4급 공무원 2명의 소행이라는 것이다. 3급인 이 처장이 지휘를 했다고 하지만 그 역시 깊게 개입된 정황을 검찰은 찾지 못했다.
 
◇"이 처장이 총책임자지만 주범은 과장이하"
 
검찰 관계자는 "수사 처장이 이 사건에서 공소유지와 관련된 총책임자인 건 사실이지만 주도적으로 범행하고 행위한 것은 과장 이하"라고 발표했다.
 
또 "구체적인 방법 제안도 처장 지시가 아니라 밑에서 고안해서 보고하면 결제하는 수준이었고 일부 사안에 대해 논의하는 정도"라고 밝혔다. 김 과장과 권 과장이 결정하면 처장은 그냥 따랐다는 말이다. 처장의 역할에 대해 검찰이 깊게 들어가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 처장을 불구속 기소한 것에 대해서도 검찰은 "총책임자로서 책임져야 하는 것은 맞지만 범행을 구체적으로 실행한 것이 아니고 범행 가담 정도에서 봤을 때 범죄사실과 많은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검찰의 말 대로 이 처장은 구체적인 범죄행위를 지시하거나 직접 범행을 저지른 것은 아닐지는 몰라도 김 과장이나 권 과장의 위조 범죄를 방조 내지는 묵인한 지휘자다. 형법적인 공모관계에서는 범행의 지시자에 해당한다는 것이 법조계의 대체적인 해석이다.
 
앞서 발생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서 검찰은 지휘관계에 있는 원세훈 전 원장만 기소하고 나머지 휘하의 간부들은 최초 기소 유예했다.
 
이 모 전 차장 등 당시 국정원 간부들이 국정원의 상명하복 관계에 따라 원 전 원장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어 전원 기소 유예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때는 지휘자만 기소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는 직접적으로 움직인 김 과장과 권 과장만 구속기소하고 이 처장은 불구속 기소했다. 앞의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비춰볼 때 일관되지 않는 법적용이다.
 
검찰은 이 전 처장의 불구속 기소 사유에 대해 "27년간 대공수사 업무에 있었던 점을 참작했다"고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을 내놨다.
 
이번 사건에서 이 처장은 기소된 국정원 직원들 중 가장 상급자다. 그 위로 올라가면 단장과 부국장과 국장, 차장 그리고 남재준 원장이 나온다.
 
검찰은 김 과장과 권 과장 등을 조사한 결과 이 처장까지가 실질적인 결제선이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전문결제자 중에는 부국장과 국장이 결제한 내용 또한 확인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한 부국장과 국장의 전문결제를 확인했지만 김 과장, 권 과장, 이처장이 구체적인 내용을 보고하지 않았다는 진술에 따라 직접적인 조사는 하지 않았다. 서면조사만 했을 뿐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 처장 윗선을 불러 조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처장급 이하에서 위에 보고한 사항 중 범죄사실과 관련된 것이 없다고 해서 부를 것이 없었다"며 "서류추적 확인해서 부국장과 국장이 결제한 것을 확인해서 수사했다. 충분히 조사했고 조사한 결과로는 혐의를 인정할 만한 추가증거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전자결제로 변환, 전문내용 확인 안해..혐의 없어"
 
이 관계자는 또 "(국장, 부국장)이 전문 결제에 대해 본인들이 결제선의 변화가 온지 얼마 안됐고 전자결제가 이뤄지다 보니 전문내용을 확인 안 하고 (그냥) 클릭해서 결제했다고 변명했다"면서 "혐의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검찰은 이 사건의 주범인 국정원 과장들의 변명만 듣고 더 이상 혐의를 확인할 수 없었다며 수사를 더 이상 진행하지 않았다.
 
검찰 수사팀은 국정원을 상대로 사실상 어려운 수사를 해왔다는 것이 검찰 뿐만 아니라 법조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국정원의 특수성으로 인한 강제수사의 제한과 대공수사에 대한 의존성으로 일반적인 사안과는 매우 다른 수사였기 때문이다. 수사팀 관계자들도 ‘수사가 쉽지 않다’는 푸념을 알게 모르게 해왔다.
 
그러나 그런 점 들을 감안하더라도 38일 동안 진행해 온 수사에 비해 그 성적표는 초라하다. 검찰이 수사하지 않은 서천호 2차장은 이날 지휘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검찰은 노정환 외사부장을 주임 검사로 공판팀을 꾸려 공소유지에 만전을 기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국정원의 간첩 증거 위조'라는 사상 초유의 사건을 수사하면서 검찰이 국정원이라는 한계 앞에 다시 무릎을 꿇었다는 비판은 두고두고 계속 될 전망이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위조 의혹' 사건을 수사해 온 윤갑근 수사팀장(검사장)이 14일 서울고검에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사진=조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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