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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수돗물의 자충수
2014-02-05 15:42:20 2014-02-05 16:00:53
[뉴스토마토 이보라기자] 설 연휴 마지막날 정수기 물에서 기준치 이상의 일반세균이 검출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각 가정이 발칵 뒤집혀졌다.
 
'못 믿을 정수기', '염소냐, 세균이냐', '사 먹는 생수가 최고다' 등 각종 의견이 쏟아졌고, 정수기 제조사들은 유해성을 묻는 소비자들 문의로 몸살을 앓았다. 불러온 반향에 비해 이번 조사는 허술하고 미흡한 구석이 너무도 많다.
 
대개 시민단체가 비교조사를 통한 제품 성능 결과치 등을 배포할 경우 한 두장 이내의 간략한 보도자료 외에 조사 개요와 자세한 결과치를 담은 보고서도 함께 내놓는다. 주장하는 내용의 신뢰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보도자료가 전해진 뒤 기자는 최우선적으로 해당 시민단체에 자료를 요청했고 한참이 지나서야 이번 조사를 주관한 한국상하수도협회로부터 엑셀파일 하나를 전해받았다. 전국 수돗물 사랑 시범마을 아파트 10여곳의 목록과 수돗물과 정수기 물의 적합·부적합 여부를 표로 정리한 한 장의 표가 전부였다.
 
조사가 언제부터 언제까지 진행됐는지, 대상은 어떻게 선정됐는지, 어떠한 기준을 적용했는지, 일반세균이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됐다는데 그 기준치는 얼마이며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상하수도협회는 심지어 조사를 진행한 수질검사 기관을 밝히는 것도 거부했다. 수돗물과 비교대상이 된 정수기 업체에 조사결과 통보 및 의견 청취 과정도 없었다.
 
조사개요를 명확히 밝히는 일은 주장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대전제다. 이러한 기본적인 사항조차 이번 조사에서는 찾기 힘들었다. 인체 유해성이 밝혀지지 않았고, 보통 음식에서도 얼마든지 발견되는 일반세균이라는 잣대 하나만으로 수돗물을 강조하려는 것이었다면 좀 더 치밀하고 합리적이며 납득할 만한 자료와 근거를 제시했어야 옳다.
 
조사 발표 후 한국상하수도협회는 수돗물에 대한 관심보다 오히려 정수기 물이 안전한지에 대한 문의를 받으며 진땀을 뺐다는 후문이다. 자충수를 둔 꼴이 되고 말았다. 협회 측은 "수돗물이 안전하다는 인식을 알리기 위해 조사를 진행한 것일 뿐 정수기를 비방하려는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조사 과정 및 발표 이후의 대응이 미흡했다고 자인했다.
 
이번 조사로 인해 수돗물 음용 인구가 늘어날 지 의문이다. 수돗물과 정수기 모두 못 믿겠다는 소비자만 늘고 있다. 생수 업체만 소리 없이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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